[스페셜1]
최동훈의 <타짜> [3]
2006-10-02
글 : 이영진
최동훈 감독이 들려주는 조승우·김혜수·백윤식·유해진의 진면목

타짜1: 고니-조승우

“무조건 고니는 조승우였다. 물론 시나리오 완성할 때까지 말은 못했다. 다 쓰기 전까지 당신이랑 하고 싶다 말하는 편도 아니고. 그냥 <헤드윅> 공연 보러 가서 눈도장 찍었을 뿐이다. 슬쩍 흘리긴 했다. 쉴 때 집에서 뭐 하냐고 했더니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서 그럼 만화나 봐라, <타짜> 되게 재밌다고, 했다. 고니를 승우가 했으면 했던 건 원작 표현대로라면 ‘탈이 좋아서’였다. 저 순한 얼굴이 돌변해서 기를 뿜으면 어떨까. 그런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다 썼다. 또 하나는 <말아톤>의 조승우를 바꿔보고 싶었다. <후아유>의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를 깨보고 싶었다. 첫 촬영하는데 승우는 자기는 화투도 못 친다면서 미스 캐스팅이라고 놀렸지만, 금방 적응하더라. 나중엔 뭘 특별히 주문할 것도 없었다. 그냥 여기선 인상 한번 써줘, 뭐 그런 식이었으니까. 촬영 끝나고 나서 백(윤식) 선생님이 그랬다. 아직도 승우 곁에 가면 수컷 냄새가 풀풀 난다고.”

타짜2: 정 마담-김혜수

“첫날 저녁 6시에 만나서 새벽 1시까지 수다를 떨고 집에 돌아오는데 정 마담이라는 인물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더라. 고사하던 날은 술 먹고 몽롱하게 취해 있는데 정색하고 정 마담이 ‘그냥 세요, 아니면 말랑말랑한데 세요’, 묻더라. 아이고, 내가 아는 한의사는 술 마시고는 진맥 안 한다고 합디다, 라고 일단 자리를 피했는데. 그때 이미 감 잡은 거지. 마지막 배에서 불 내는 설정은 원래는 없었다가 현장에서 갑자기 만들었다. 서울에서 특효팀이 갑자기 내려오는 등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 불꽃이 튀기다 보니 사고 위험이 많아서 혜수씨에게 못할 것 같으면 도중에 알아서 ‘컷’ 하라고 했는데도, 한번도 안 부르고 몇번씩 테이크를 가더라. 아, 그리고 목욕탕 장면. 오케이해놓고 보면 기막힌 표정을 짓고 있어서 다시 카메라를 돌리고. 다시 오케이했다가 더 좋은 표정 보고서 다시 카메라 들고. 보물을 하나씩 슬쩍슬쩍 꺼내서 보여주는데, 정말이지 농락당하는 기분이었다.”

타짜3: 평경장-백윤식

“가끔 착각에 빠진다. 내가 대사를 잘 쓰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백 선생님 때문이다. ‘뚝’ 하고 쓴 대사인데도 ‘쩝’ 소리 나도록 맛있게 뱉으신다. 자기 캐릭터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시다. 북한 사투리에, 콧수염에, 중절모에, 이번엔 장 가뱅이네, 하시더라. 선생님의 놀라운 몰입은 그런 자긍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현장에서 연배는 가장 높지만, 자신의 경험을 강요하거나 군기를 잡지 않는다. 여기 이 대목에선 내가 따먹을 거야, 하는 욕심도 부리시지 않는다. 그런 점이 긴장을 만들고, 동시에 존경을 만든다. 본인의 친구분들이 ‘아니, 그 감독은 왜 너를 만날 죽이냐’고 하신다고 농을 하셨는데, 걱정이다. 너무 빨리 돌아가시게 한 것 같아서. 고니에게 화투를 가르쳐주는 장면에서 읊는 아수라 주문은 직접 만들어오셨다. 애드리브는 거의 안 하시는데, 그게 필요한 것 같다면서 리허설 때 한 차례 하셨는데 뒤집어졌다. 이 장면에서 1땡을 만드는 손놀림은 CG나 대역이 아니라 선생님이 30테이크 만에 기어코 만들어낸 거다. 뭔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항상 보여주신다.”

타짜4: 고광렬-유해진

“<왕의 남자> 때문에 한 거 아니다. <범죄의 재구성>의 얼매 역할을 맡기고 싶었는데 못했다. 그래서 (이)문식 선배랑 하게 됐고, 너무 좋아서 <타짜> 때도 하자고 했는데, 이번엔 문식 선배 스케줄이 안 맞아서 해진씨에게 부탁했다. 영화든, 배역이든 다 자기 운이라는 게 있는 거구나 싶더라. 해진씨의 코미디 연기가 강도가 높은 건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조절해서다. 고니 어머니와 대화하는 장면도 지금처럼 길지 않았다. 3분의 1 수준이었고, 편집에서 빼려고도 했다.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다. 신나서 현장에서 늘리면서 지금처럼 불어났다. 써준 것도 아니고 그냥 말로 한 건데 워낙 감이 좋아서 자기 걸 뚝딱 만들어낸다. 긴 숏인데도 지속 시간이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편집실에서 가장 난감한 배우다. 어디서 잘라야 하지. 요즘엔 조그셔틀이 없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돌려보라. 대사 하나 치는데 표정이 변화무쌍하다. 감독님 왜 폴 매카트니가 폴 매카트니인 줄 아세요. 폴이라는 스크립터가 있는데 하루는 감독이 이랬대요. ‘어이 폴, 매(몇) 카트(컷)니?’ 이런 농담 들으면 피곤이 가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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