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명세·김지운·장준환의 신작 [1] - 이명세
2006-10-09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강동원 주연의 준비 중인 이명세 감독

첫사랑의 슬프고 무서운 수수께끼를 찾아서

“내 영화 씹은 사람 중 한명이야.” 인터뷰를 하러 간 기자를 이명세 감독이 장난스럽게 소개한다. 기본적으로 애정을 갖고 있는 감독에게, 그것도 한국영화의 노련한 장인에게 그런 말을 듣고 진땀이 안 날 리가 없다. 순간 난처하다. 그런데 해놓고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분명 여유가 있다. 마음이 좀 놓인다. 여유가 있다는 건 지난 평가에 개의치 않고 지금 자신의 상태에 자신이 있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9월8일 개봉한 <형사 Duelist>는 확연히 반응이 갈렸고 상업적으로는 예상보다 못한 수치에서 멈췄다. 그러나 자칭 21세기 신인감독 이명세는 거기에 붙잡혀 있지 않았고, 거의 정확히 1년 만에 그의 21세기 두 번째 영화를 준비 중이다. 제목은 <M>(<형사…>를 창립작으로 했던 그의 제작사 이름도 M프로덕션이다). 10월 중에 촬영에 들어가, 내년 2∼3월 중에 촬영종료한 뒤 가을에 개봉할 예정이다. 십수년 전 꿈속에 나타난 앨프리드 히치콕에게서 M이라는 글자가 쓰여진 책을 건네받은 뒤 시작된 그의 물음은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드디어 지금 의미를 찾아나섰다.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가 꿈을 모아 <꿈>을 만들었듯, 이명세 감독은 꿈을 좇아 <M>을 만들려고 한다.

이뤄진 인터뷰 형식은 일부분 문답의 ‘추적 편’이라고 할 만하다. 그건 “결정된 것 없다”는 <M> 제작진의 구호에서 비롯된 것이다. 행여 과거의 영화 이야기라도 꺼내려고 하면 “난 지금 벗어나야 하고,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며 비교를 거절한다. 그리고는, “지금 내가 한 말에 답이 들어 있다”며 웃는다. 이명세 감독은 “사랑과 공포가 왜 동의어인 것 같냐”고 인터뷰 도중 불쑥 물었다. 아마 그 질문을 최초로 던지고 받은 대상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을 것이다. <M>에는 그 질문에 대한 이명세식 자답이 담길 예정이다.

-팬들이 열어준 <형사…> 개봉 1주년 잔치 축하한다.
=좋은 팬 문화를 만든다는 의미에서라면 비단 <형사…>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도 그런 사랑을 받았으면 싶다. 몇몇 팬들은 지방 행사 때도 오고, 일본 상영 때도 왔다. 어떤 팬은 책을 두권 묶어서 만들어준 사람도 있다. 이번 영화 자료하라며 사진집 같은 걸 열댓권 보내준 사람도 있고. 그런 팬들 생각하면 참 열심히 영화 찍어야겠다 싶었다. 그 사람들 기사 정보량은 어느 영화사 해외팀보다 뛰어나다. 거의 KGB 수준이다. (웃음)

-얼마 전에 내한했던 올리버 스톤은 자기 영화 시사회에 특별히 이명세 감독을 초청하고 싶다고 했다는데, 시사회 갔었나.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형사…> 좋았다는 얘기도 좀 하고, (하)지원이 얘기도 하고.

-팬들뿐만 아니라 외국 감독까지 그런 식의 반응을 해오면 창작자로서는 뿌듯한 감이 있을 것 같다.
=그렇지 뭐….

-대답이 너무 쿨하다. (웃음)
=쿨이 또 요즘 21세기 문화 아닌가.

-<형사…>에 대한 외국 논평들도 궁금하다.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한국과 거의 비슷한 것 같다. 극단적인 반응이다. <와호장룡>이나 <연인> 같은 무협영화에 관심이 있는 관객은 재미없어하는 것 같고, 영화를 나름대로 다른 쪽으로 보려는 사람들은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재미있는 표현 중에는 “영화사의 UFO 같은 영화다”라는 평이 있었다.

-한국영화적인 어떤 것 혹은 어떤 성격에서 좀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나.
=영화는 영화다. 그 자체로 봐줘야 한다. 나는 영화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사람이고 그걸 지금 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 대신 각 나라의 아이덴티티를 찾는다. 다자이 오사무 글에 보면 “문장은 운명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영화를 만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운명이다.

-<형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대중의 심술궂음’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내 영화가 너무 빨리 온 게 아닐까 혹은 내가 좀더 친절했다면 내 영화에 더 많은 반응을 했을까?’ 가령 이런 뉘앙스의 말이었는데, 영화와 대중 사이의 관계를 좁히는 방법 내지는 대안에 대해서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건 새 영화를 놓고 한번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대중과 영화와의 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인 것 같다. 진심은 통한다는 것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때는 진실이 없었느냐? 그건 또 아니다. 비교를 하자면 이런 건데, 왜 서로 그날 기분이라는 게 있지 않나. 예를 들어, 누군가 오늘 너무 업되어 있다, 근데 상대방은 다운되어 있다. 그래서 그날의 기분이 서로 잘 안 맞는 거다. 그런 정도의 간극인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하고, 항상 그 기분을 봐야 한다. 아직 잘 모르겠다. 그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영원한 숙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오래 계속되는 것도 다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게 아니어서인 것 같다.

-국내 평단의 반응도 극단으로 갈렸다. 어떤 면에서 그건 영화적인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차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감독님이 생각하는 영화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숙명적으로 영화는 대중예술이고… 예술이라는 용어 자체도 정리가 되어야 하는 거다. 예술이라는 단어가 들어오면서 따라 들어오는 고급스럽다, 어렵다, 이런 느낌도 정리되어야 할 것들이다. 영화는 대중매체다. 영화 고유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 않겠나. 이를테면, 팬터마임의 정체성은 말이 아닌 몸으로 뭘 전달하는 거다. 무용도 움직임으로 뭘 전달하는 것이고. 나는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뭔가 생각하는 거다. 움직임, 빛 등을 계속 확장해나가는 중이다. 나는 복잡하게 준비해서 쉬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M>은 한 남자가 다시 만나게 되는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

-그렇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어떤 요소에 끌리나. 새 영화 <M>은 장르가 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요소? 모든 요소. 그리고 장르라는 것도 할리우드 영화 속성이 갖고 있는 영화의 목표 때문에 이야기되는 것이다. 어떤 영화가 장르적인 부분에서 더 강하게 표현될 수는 있겠지만, 내 영화에는 모든 장르가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맨 처음부터 ‘전 장르’라고 했는데, 외국 평론가들도 그게 뭔가 하더라.

-영화 내용은 어떤 것인가.
=이건 시기상 전략적으로 잘 말해야 하는데. (웃음)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참 힘들다. 한 남자가 다시 만나게 되는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지독한 사랑>, 그러면서 정말 괴로운 <남자는 괴로워>이기도 하고, <첫사랑>의 기억에 대한 어떤 끊임없는 추적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기도 하고. 거기서 표현되는 몸이나 움직임은 <형사…>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내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긴 생각을 조금 더 모아서 나아가보려는 영화다.

-20대 베스트셀러 작가 한민우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정도가 지금까지 알려진 전부인데, 시놉시스에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첨부해준다면.
=주인공에게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첫사랑이 오랜 시간을 두고 다시 찾아오면서 삼각관계가 되는 거다. 어느 쪽으로 보면 <첫사랑>이고, 다른 쪽으로 열어놓고 보면 <지독한 사랑>인 거다. 그러면서 형사가 범인을 쫓는 것처럼 주인공이 첫사랑의 흔적을 좇는 이야기다. 오래전에 <첫사랑> 시나리오 쓸 때부터 시작됐던 생각이다. 그때는 <첫사랑>처럼 표현됐던 거지만,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고, 그게 미국 가서 썼던 시나리오 <미리엄>이었다.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공포영화를 찍고 싶었던 거였는데, 이번에는 공포의 개념이 조금 떨어져나가고 멜로의 개념이 좀더 강화될 거다.

-<형사…> 후반부가 <미리엄>과 연관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도 역시 그렇게 보면 되겠는가.
=그렇다(이명세 감독은 지난 인터뷰 때 <형사…> 후반부와 <미리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불현듯 “유령과의 헤어짐, 유령과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어쩌면 공포와 아름다운 사랑이 서로 어우러진다는 <M>에서 이건 중요한 단서일 수 있다).

히치콕이 꿈속에 나타나서 M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책을 줬다.

-어떤 단상이나 구상에서 시작된 것인지 물어도 되나.
=어떤 단상? M!! M에서부터 시작됐다.

-M? 그렇게 듣고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다. (웃음)
=알파벳 M. 내가 오래전에 꿈을 꿨는데 히치콕이 꿈속에 나타나서 M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책을 줬다.

-프리츠 랑이 아니고, 히치콕이?(물론, ‘다이얼 M’과 관계된 것이라면 가능하다)
=맞다, 프리츠 랑이 아니고, 히치콕이 준 거다. 그래서 계속 그 M이 뭔가 생각해본 거다. 그건, 어느 때는 맥거핀이기도 하고, 미스틱이기도 하다. 그 뒤부터 안개(효과)를 쓰기도 하고. 그 M을 찾아가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론 그렇다. 나로서는 이런 것들이 M이 아닐까 드러내보는 것이고, 영화 속의 주인공 입장에서는 첫사랑을 찾아보는 것이고.

-들었는데도, 그 M을 쉽게 추측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 나도 잘 모른다. (웃음)

-마음속 깊이 있다 나온 것이라 그런가.
=그것보다는… 내가 꿈꾼 걸 붙잡고, 찾고, 생각하면서 십몇년 있었던 거니까 그럴 거다. 지금 진행형이다. 그러면서 계속 이어지는 꿈들의 힌트도 있고.

-그 책 안에 쓰여 있던 내용은 뭐 였나.
=유도심문당하는 것 같은데. (웃음) 잘 모르지. 나도 나중에 읽어봐야지 하면서 표지만 봤으니까. M은 알파벳 가장 중간에 있다. M은 정말 너무 많은 걸 갖고 있다. 딱 중간에 있으면서 가장 센 뜻부터 좋은 뜻까지 많다. 메시아도 M으로 시작하지 않나. 그 밖에도 많다. 또 그건 영화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히치콕이 준 것이기도 하니까. 히치콕은 가장 대중적인 감독인데, 그 노인네가 왜 그 책을 줬을까 생각해보는 거다. 이 영화를 규정하지 말자는 생각에서도 M이다(<M>에서 남자주인공의 이름은 민우(M)이며, 그의 첫사랑 이름은 미미(M)다).

-그 M들 중에서도 ‘미스터리, 메모리, 미스틱’, 특히 이 세 가지를 강조했다.
=사랑이란 것이 다 미스터리다. 불가해하고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맥락과 닿아 있다. 메모리는 플롯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고. 일단 미스터리 멜로가 너무 많아서 미스티 멜로로 바꾼 거다. “사랑과 공포는 동의어”라는 말이 있는데, 사랑도, 공포도 다 알 수 없지 않나. 불가시적이고. 뭐가 있는 것 같지만, 또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고, 그래서 늘 불안한 상태에 놓이는 거고. 그런 면에서 동의어라는 거다.

새로운 도시를 보여줄 빛의 액션

-시나리오는 언제 끝나나.
=내일 완고가 나온다. 미국 시절부터 쓴 건 수십고지만, 본격적인 것만 치면 4고라고 해두자.

-남자주인공 역 한민우는 강동원이다.
=동원이 형(이명세 감독은 조카뻘되는 어린 친구들에게도 웬만하면 다 친근하게 형이라고 부른다)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으로 잘되고 있는데, 내 생각에 일상적인 면을 끄집어낼 생각이 좀 있다. 승부사 기질이 있고, 연기자로서 남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전에도 이 얘기를 했고, <형사… > 끝나고 같이 해보자고 얘기도 했었고. 스타면서 한국영화 배우로서 커나갈수 있을 것 같아 좋아한다.

-여주인공 미미의 경우는 캐스팅이 끝났나.
= ***로 거의 결정됐다. 하지만 아직 진행 중이니 발표하면 안 된다. 이번주에 확실하게 결정이 날 것 같다.

-액션영화가 아니라, 영화 액션이라고 <형사…>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런 액션에 대한 추구를 한동안은 더 이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의 경우에는 어떤 컨셉이 있나.
=나도 지금 찾아가고 있는 중이어서 정리된 건 아니지만, 이번 영화는 ‘빛의 액션’ 영화가 될 것 같다. 빛이 가장 중요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다(이명세 감독은 제작진끼리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참조한 몇 가지 이미지 중 클림트의 그림 몇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건 빛나는 어둠”이라고 덧붙였다).

-로케이션 비율은 어떻게 되나. 한편으론 새 영화가 도심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줄 것을 강조했다.
=세트가 80, 로케이션이 20 정도. 여하간 지금까지 도심을 보여준 장면의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찍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어떻게 보여줄지, 그것이 과연 담길 수 있을지는 해봐야 알 것 같다. 방법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이번 영화의 몇 가지 목표 지점 중에 하나가 바로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않은 새로운 도시를 보여주는 거다(이명세 감독은 요즘 명일동 집에서 청담동 사무실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서울이 배경인 이 영화의 도심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관찰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빛의 액션을 위한 광선의 통제를 위해서라도 주로 세트에 들어가야 하지만, 한편으론 한국영화 사상 가장 경제적인 세트의 예를 보여주겠다는 장담도 함께한다).

-아직까지는 새 영화에 대해 말하는 데 조심스러움이 있는 것 같다.
=궁금해야 볼 것 아닌가? 촬영 맡은 홍경표 촬영감독에게도 말하지만 결정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 연출부들 구호가 “결정된 건 없다”이다. 그래서 참조 자료들도 잘 안 보려고 한다. 거기 나도 모르게 자꾸 빠지기 때문에 그걸 털어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걸 잘라내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연기자들에게도 느낌만 갖고 있으라고 말한다. 화두나 개념 몇 가지만 중심으로 갖고 가는 거다.

-마지막으로, 그 몇 가지 중심에 있는 개념이나 화두를 어떻게 표현해낼 계획인가.
=이번 영화에서 나의 목표는 흥행 면에서만 생각하면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같은 거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덕에 살아났듯이 말이다. 21세기 신인감독으로서 첫 작품의 흥행은 좀 부진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이번 영화가 달려가는 진짜 목표는 ‘슬프고, 아름답고, 무서울 것’. 그거다. 어느 면이 커지거나 작아질 수는 있겠지만, 그걸 어떻게 화면 안에 잘 집어넣을 것인지가 관건이다(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싶다. 이명세 감독은 갑자기 사무실 중앙에 놓여 있는 보드판 상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unity of effect: 슬프고 아름답고 무서울 것.” 이게 <M>의 연인들과 그들 사랑에 대한 핵심인 것 같다. 힘들었지만,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수수께끼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