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3] - 장민석
2006-10-19
글 : 이종도
사진 : 오계옥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각색), <가을로>의 장민석 작가

고치고 또 고치면 설득 못할 관객 있으랴

<가을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렇게 단아하면서 섬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낯선 곳에서 남녀가 우연히 계속 마주치게 된다는 미스터리 구조도 흥미롭지만 상처받은 낯선 연인의 이야기를 엮어가며 그 속으로 슬픔이 스며들게 하는 자연스러움이 놀라웠다. 20대 후반, 미지의 여성 작가? 그런데 이름은 씩씩한 ‘석’ 자가 들어가는데!

그는 이미 관록의 작가였다. 1999년 영화진흥공사 주최 상반기 시나리오 우수작에 뽑혔고 여러 작품에서 각색과 시나리오를 맡았다. 다만 오래전 준비했던 작품들이 뒤늦게 얼굴을 내밀고 있을 따름이다. 2000년에 작업한 <청풍명월>은 2003년에, 심지어 2001년에 쓰기 시작한 <가을로>는 이제야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에 각색해 2004년에 개봉한 <효자동 이발사>, 지난해에 작업해 올 가을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각색)은 빠른 셈이다.

장 작가는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영화아카데미(연출 전공)를 13기로 졸업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꾸었던 영화감독의 꿈을 차근차근 밟아왔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꿈대로 살고 싶었다’는 소망을 현재 실현하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꿈은 꿈이고 생활은 생활이어서 아카데미 동기인 조근식, 임찬상, 민규동처럼 연출의 길을 걷지 않고 ‘공모해서 상금도 타고 그게 생활이 될 수도 있는 길’을 찾는다. “오해였다. 생활이 어려우니 무작정 그렇게 먹고살아야지 생각했고 이렇게 흘러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1년 반 동안 무지 고생했다.” 1994년부터 ‘공모전’이 돈이 될 거라고 생각해 습작을 했으나 쉽게 뽑히지 않았다. 숱한 공모전의 추억이 그의 훌륭한 습작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습작시대란 거꾸로 절망의 시대 아니던가. “작업했던 영화들이 미루어지고 엎어지고 하면서 3, 4년은 나처럼 불운한 작가가 또 있을까 했는데 게을러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시작한 이상 이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고 싶었고 그만두면 비겁한 거니까 그만둘 수 없었다.”

무식하게 공모에 도전하는 것 외의 수업방식은 인기있는 비디오를 틀어놓고 공책에 신별로 받아 적으며 복기하는 것, 비디오 대여점에서 미국의 잘 짜인 저예산 드라마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장 작가는 시나리오 쓰기의 비기가 ‘퇴고’에 있다고 말한다.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글을 잘 만질 수 있는 방법이 퇴고다. 그날 쓴 것을 읽고 또 읽고, 시퀀스가 끝나면 또 읽고. 퇴고할수록 자기가 잘 썼다는 환상에 빠져드는 우를 벗어날 수 있고 퇴고야말로 선결해야 할 기술이자 필수의 기술이다.” 장 작가의 퇴고론은 이해와 소통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이해받기를 요구하지 말고 이해되도록 노력하라’는 게 시나리오 쓰기의 십계명이라 할 수 있다. “남들이 이해 안 해준다고 신경질을 부리게 되는데 분명 문제가 있으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남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개연성이다. 모니터를 받을 때도 개연성에 중점을 둔다. 개연성없는 사소한 대목이 결국 전체적인 문제를 만든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힘, 집중도, 뚝심이야말로 시나리오 작가가 갖춰야 할 미덕이라고 믿는다.

아닌 게 아니라 <가을로>를 쓰면서 ‘감수성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여성 작가가 썼다는 오해를 받는 게 작은 목표였다. 매번 작품이 요구하는 대로 해내야 하지 않나.”

막힌 대목, 이렇게 뚫었다!

내 테두리 안에서, 나의 재료를 찾는다

“오래전 작업한 것들이라 생각이 잘 안 난다. 지금 작업하는 것들은 밝히기 어려우니 이해해달라. <가을로>는 미리 영화 속 장소들을 여행하고 취재한 뒤에 써서 에피소드가 많았고 어려운 건 없었다. 막혀도 2, 3일을 넘어서는 일은 없었다. 시간적 제약이 있는 작업이고 기다려주지 않으니 무조건 풀어내야 하니까. 버스 타고 무심히 돌아다니거나 아침에 샤워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혼자 술을 마실 때 풀리는 경우가 많다. 막히는 건 스스로 알고 있는 것 이상을 해내려 하니까 그렇다. 자기 테두리 안에서 재료를 꺼내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잘될 거라는 낙천적인 믿음이 없으면 못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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