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 [1]
2006-10-30
글 : 이다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20일 폐막식을 끝으로 9일간의 항해에 마침표를 찍었다. 올해 영화제에는 개막작 <가을로>와 폐막작 <크레이지 스톤>을 포함해 63개국에서 총 264편의 영화가 초청됐다. 초청작 중 월드프리미어가 역대 최다인 64편을 이루며 한층 높아진 부산영화제의 위상을 증명했고, 부산프로모션플랜(PPP)과 부산영상산업박람회(BIFCOM)를 통합해 첫발을 내디딘 아시안필름마켓(AFM)은 40개국 3500명의 참가자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리기도 했다. 새로운 10년의 시작을 여는 올해의 영화제를 결산하며, 남다른 작품으로 부산을 찾은 작가 9명을 꼽았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플랑드르>의 감독이자 뉴커런츠 심사위원 자격으로 내한한 브루노 뒤몽과 시대극 <하나>로 스타일의 변화를 선언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각각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로 현대 중국사회의 이면을 조명한 닝하오와 두하이빈, 여배우에서 감독으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무화과의 얼굴>의 모모이 가오리, 5년간 준비한 신작 <아주 특별한 축제>로 찾아온 비주 비스와나스 등 6명의 외국 감독들과 프랑스의 통일운동가 이희세씨의 삶을 조명한 <코리안 돈키호테, 이희세>의 최현정, 장편 데뷔작 <사과>로 삶의 조각들을 세밀하게 담아낸 강이관, 타국에서 방황하는 10대들의 초상을 그려낸 <방황의 날들>의 김소영 등 3명의 한국 감독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부산의 영화 축제를 한층 더 빛나게 한 이들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와 감독 인터뷰를 통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안겨준 근사한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고자 한다.

인간이 가진 선악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대가의 시선

월드 시네마·동시대 프랑스 작가들 상영작 <플랑드르>

“왜 감독님에게 인간이 혐오스러운 존재라고 각인되었는지, 또 그런 인간들과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아가려면 힘들 텐데 어떻게 버티는지 궁금합니다.” 부산영화제에서 <플랑드르> 상영을 마치고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온 질문은 브루노 뒤몽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본 뒤 떠오르는 질문 열 가지 중 하나에 들어가는 게 사실이다. <플랑드르>가 그의 영화 중 가장 해피엔딩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영화 내내 시선을 잡아끄는 혹독할 정도의 건조함은 그가 세상을, 인간을 보는 관점에 대해 두려운 궁금증을 갖게 한다. 사막을 비추기 때문에 건조하다고 느껴지는 것만은 아니다. 사막의 전쟁터에 주인공을 방치하다시피 놓아두고 관찰하는 뷰파인더 뒤의 시선에 일말의 동정조차 서려 있지 않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다. “영화를 찍을 때 배우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를 꺼려한다. 나는 인간 안에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니체나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들은 인간 안의 악함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내부의 악을 털어내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영화를 만든다. 영화는 폭력성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적 서사를 추구하는 대신 이미지와 사운드가 영화의 중심에서 감성을 발산하는 방식 때문에 극과 극의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는 일은 다반사다. 게다가 이미지와 사운드를 사용하는 방법 역시 사람들이 ‘대중적’이라고 말하는 그것과 타협하지 않는다. “나는 지성보다는 감성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극중 인물의 대사보다 배우의 목소리를 중시한다. 대본을 쓰기 전에 내가 원하는 영화 속 장소를 먼저 찾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그 느낌을 중시한다. 영화적 진실은 우리가 겪는 사회의 모습을 베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새로 표현해내는 데, 나의 방식으로 재현하는 데 있다. 가끔 바람소리에 묻혀 대사를 알아듣기 힘들 때도 있는데, 빈곤한 모노사운드야말로 이미지의 심도를 깊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비전문 배우를 기용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우는 규격화된, 폐쇄적인 이미지를 영화에 불어넣기 때문이다. 숏과 숏을 연결하는 게 아니라 숏들을 단절시켜 낯섦을 배가시키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브루노 뒤몽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지적이라고 ‘보도’되는 데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한다. “상업적이고 상업적이지 않은 것, 지적이고 지적인 것은 영화적인 문제라기보다 언론의 태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즘의 영화들과 그들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햄버거만 먹게 해 건강을 상하게 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 전세계적으로 취향과 감성이 편협해지는 동시에 동일해진다. 영화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필요한데 문화가 파괴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는 영화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런 상황을 전복시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서려면 독창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

<플랑드르>의 브루노 뒤몽 감독

-플랑드르의 풍요로움을 강조하기 위해 주인공을 사막의 전쟁터로 보냈다.
=철학적인 이야기, 여기서 철학적이라는 말은 인간적이라는 뜻인데, 이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나는 단절을 선택했다. 주인공이 플랑드르에서 떠나면서 플랑드르의 부재가 시작되는데, 그 효과는 역으로 전쟁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가 플랑드르로 돌아오면서 인물들의 생생함이 더해진다.

-비전문 배우를 기용했을 뿐 아니라 연기 역시 엄격하게 자제하게 했다. 배우에게 무표정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배우들의 표정에 과장 연출이 없는 이유는 내가 추구하는 조화와 관련이 있다. 나는 영화가 조화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영화의 공간, 풍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표정이 아닌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분명하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뤄야한다.

-<플랑드르>가 전쟁을 다루는 방식, 이미지를 설명하는 방식은 할리우드적인 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낯설 수밖에 없다.
=다르게 하기야말로 감독이 할 일이다. 동일한 이미지 반복은 의미가 없다. 고유하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폐쇄적인, 주어진 이미지에 젖은 사람들 눈에 내 영화가 낯설어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보짓이다. 나는 단순한 이야기를 나만의 연출법으로 영화화했을 뿐이다.

사진 씨네21 PIFF 데일리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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