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 내 이름은 소단, 성소단(김꽃비)이야. 삼거리극장의 매표원 겸 이번 극장 투어의 가이드지.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투잡족이냐고? 근래에는 주로 가이드 일만 하고 있으니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지도. 극장에서 일한 경험을 내세워 운좋게 가이드로 발탁돼 입에 풀칠은 하고 있지만 말야. 그럼 먼저 이번 투어의 코스를 소개할게. 알다시피 이 투어는 2박3일 코스로 삼거리극장, 로즈극장, 피츠제럴드극장, 송단평이 설계한 이름 없는 극장, 물랑루즈를 차례로 방문하게 돼. 하나같이 마음을 뒤흔드는 사연을 지닌 유서 깊고 흥미로운 장소들이지. 먼저 삼거리극장엔 오후 6시에 도착해 극장의 요모조모를 구경할 거야. 해가 완전히 질 무렵 환상의 혼령 쇼가 여러분들 앞에 펼쳐질 거고. 둘째 날 오전 10시 무렵엔 로즈극장에서 셰익스피어에게 연애담을 들은 뒤 사인을 받는 자리가 마련돼 있어. 물론 극장 구경은 필수겠지? 오후 7시엔 허물어지기 직전의 피츠제럴드극장을 방문해 퀴즈쇼를 즐길 거고. 자유시간이 없어 피곤할 것 같다고? 걱정마. 셋째 날 오전엔 특별한 일정이 없는 대신 느긋하게 극장거리를 구경할 수 있으니. 그렇게 휴식을 취한 뒤 오후 4시엔 오페라 연출자 겸 배우 송단평이 직접 만든 오페라극장을 구경할 거야. 밤 9시엔 섹시하고 화려한 물랑루즈에 갈 거고. 물 좋기로 소문난 곳이니까 옷차림에 신경쓰는 게 좋겠지? 그럼 첫 번째 코스인 삼거리극장을 향해 슬슬 출발해볼까?
COUSRSE 1. <삼거리극장>의 삼거리극장
환상적인 혼령 쇼로 스타트
여기가 삼거리극장이야.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발을 들이게 됐냐고? 첨엔 가출한 할머니 때문이었어. 닭똥 같은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던 밤, 할머니는 삼거리극장에서 뭔지 모를 활동사진이 보고 싶다며 집을 나섰거든. 그때 할머니를 붙잡지 않은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지. 우산을 펼쳐들고 쫓아 나섰는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셨는지 찾을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다 삼거리극장에서 매표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봤지. 옳거니, 할머니가 삼거리극장 운운하셨으니 그곳으로 가면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극장에 취직하게 됐는데 일이 쉽게 풀리지 않더군. 할머니를 찾긴커녕 극장에 둥지를 튼 네명의 혼령들에게 덜미를 잡혔으니 말이지. 그들이 무섭진 않았냐고? 일단 말문을 트게 되면 알겠지만 얼마나 귀엽고 싹싹한지 몰라. 내가 미친 건 아니냐고? 자, 저기 당신들에게 손 흔드는 에리사 공주(박준면)랑 완다(한애리), 모스키토(박영수), 히로시(조희봉), 우기남 사장님(천호진)이 보이지 않아? 안 보인다고? 거짓말.
자자, 여러분, 동요하지 말고 극장 안으로 들어갑시다. 짜잔, 바둑판 무늬의 바닥이 정말 멋지지 않니? 이 구불구불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영사실이랑 사장실, 에리사 공주의 식당 등을 구경할 수 있어. 혹시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픈 사람들은 저기 매점에서 몇 가지 군것질거리를 사도 괜찮아. 얼굴에 심술이 가득한 매점 언니가 쬐끔 무서워 보이겠지만 사귀어보면 상냥한 사람이니 겁내지 않아도 돼. 여기가 바로 영사실이야. 영사실에 들어온 건 난생 처음이라고? 신기한 기계가 많지? 저기 있는 물건이 영사긴데 구경하는 건 좋지만 손은 대지 않았으면 좋겠어. 고장나면 고칠 수 없는 골동품이거든. 다 둘러봤으면 사장실로 가볼까? 이 복도를 따라가면 돼. 뭔지 모를 끔찍한 냄새가 난다고? 이곳에서 우기남 사장님이 몇번이나 자살을 기도했거든. 우기남 사장님은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의 감독이자 이 극장의 주인이야. 그런데 지금 어디에 계시냐고? 저기 당신 뒤에서 화사하게 웃고 계시잖아. 왜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니? 아까부터 따라오고 계시더만. 쉿! 조용히 하고 이쪽으로 와. 이제 비밀계단을 통해 에리사 공주의 식당으로 갈 거야. 자꾸 음식을 토해내던 완다 언니가 멋진 노래를 불러준 곳이지. 비위 약한 사람은 밥도 못 먹게 <똥싸는 소리>란 노래를 불러 뜨악하긴 했지만 정말 카리스마 있는 무대였어.
겁낼 필요 없다니까. 그만 숨을 가다듬고 차례차례 안으로 입장하자고. 자, 어때? 조금 촌스럽긴 해도 향수를 자극하는 아주 멋진 곳이지? 이곳에서 삼거리극장의 몰락을 부추긴 기괴한 사건이 발생했지.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이란 영화가 가장 큰 힌트랄까. 나중에 보니 우리 할머니도 이 영화에 출연하셨더라고. 머리는 소지만 몸은 인간인 괴물 미노수의 사랑, 아랫네 역할이었대.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섭섭하겠지? 막간을 이용해 혼령들의 노래를 잠깐 들어볼까? 붉은 옷을 입은 뚱뚱한 여자가 목청 좋은 에리사 공주, 생머리를 늘어뜨린 말라깽이 여자가 기생 출신 완다 언니, 줄무늬 쫄바지를 입은 입 큰 남자가 전직 광대 모스키토, 군복을 입은 일본 남자가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히로시야. 춤추고 싶은 사람들은 무대로 올라와 함께 즐겨도 돼. 정말 즐거운 밤이지?
즐길 거리_유령의 집에 버금가는 삼거리극장 안팎.
포함된 옵션_에리사 공주, 완다, 모스키토, 히로시, 우기남 사장이 함께 펼치는 혼령 쇼.
선택 옵션_<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 관람.
관람시 주의사항_혼비백산 무서운 공포물이라 어린이, 노약자, 임신부 등은 선택 옵션 이용 불가. 혼령들에게 홀딱 반해 평생 삼거리극장을 떠돌 수 있음.
COURSE 2.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로즈극장
연애의 고수, 셰익스피어와 조우하세요
생각보다 자그마해 놀랍다고? 옛날 극장이 다 그렇지 뭐. 목조건물이긴 하지만 로마식 극장과 비슷하지 않아? 이렇게 동그란 구조 때문에 음향효과 하나는 끝내준다고. 이 작은 무대 위에서 최초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속삭였어.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자신을 토마스 켄트라고 속인 바이올라(기네스 팰트로)가 셰익스피어(조셉 파인즈)의 비밀스러운 연인이자 뮤즈였지. 연기 연습을 하는 와중에도 둘은 시시때때로 손을 맞잡거나 키스를 나눴단다. 그러고 보면 주변의 반대 혹은 신분 차이 등 갖가지 방애물야말로 사랑을 불타오르게 하는데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것 같아. 셰익스피어가 가난한 시인이자 연극배우, 시나리오작가에 불과했다면 바이올라는 웨식스 경(콜린 퍼스)과의 정략 결혼을 앞둔 부유한 상인 집안의 여식이었거든. 게다가 셰익스피어는 유부남이기도 했으니 우리나라였다면 불륜으로 몰려 감옥에 갇혔을지도 모르지. 바이올라와 만나서 밤을 함께 보내는 일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달까. 다행히 엘리자베스 여왕의 중재로 갑작스레 문제가 해결되지만 말이야. 셰익스피어는 바이올라의 미모에 빠져 무도회장에서 그녀를 뒤쫓고 나무덩굴을 타고 그녀의 방에 기어올라가 사랑을 속삭이기도 했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은 이들은 모두 알 만한 내용들이지?
사실 셰익스피어는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입담을 자랑하는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게 내 솔직한 의견이야.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너무하다고? 하지만 생각해봐. 그가 쓴 아름다운 소네트와 시나리오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수많은 여인을 울린 대가는커녕 여왕에게까지 재능을 인정받다니, 세상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니? 어쨌거나 이곳에선 셰익스피어를 만나 그의 연애담을 들어보는 자리가 마련돼 있으니 잠시 극장을 둘러보며 기다리시길. 이번 투어 아니면 절대 만나볼 수 없는 사람이니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맘껏 질문을 퍼부어도 좋아. 그럼 셰익스피어와의 시간, 재밌게 즐기시길.
즐길 거리_아담한 로즈극장, 셰익스피어의 잘생긴 얼굴과 대단한 입담.
포함된 옵션_셰익스피어의 연애담 듣고 사인 받기.
선택 옵션_셰익스피어의 도움을 받아 <로미오와 줄리엣> 직접 실연하기.
관람시 주의사항_여자 킬러 셰익스피어에게 농락당하는 관광객이 속출하고 있으니 자기 맘은 스스로 단속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