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이제는 겸손해지고 싶지 않다, 정지훈
2006-12-01
글 : 박혜명
사진 : 오계옥

-첫 영화라 당연히 긴장할 거라 예상했는데 4년의 경험과 경력 때문에라도 노련할 수 있다는 걸 잠시 잊었다.
=얘기한 게 거의 맞다. 왜냐하면 누구나 하는 말처럼 (겸손한 말투로 바꾸어) 첫 영화라 긴장됐고요,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 신인의 자세로 봐주세요, 그런 것보다는 (본래의 말투로) 굉장히 열심히 했고, 이제는 감히 배우라는 이름을 쓰면서 첫 계단을 밟을 수 있게 돼서 행복하고, 촬영하면서도 행복했다. 드라마를 세 작품 했지만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와 시선이 있지 않나. 그런 게 많이 바뀌었고 이 영화를 통해서도 많이 바뀔 거다. 아, 저 사람이 저런 능력과 저런 욕심이 있구나, 연기에 대한 배우에 대한. 그런 것들이 보일 것 같다.

-연기자로서의 준비는 어떻게 해온 건가. 드라마 세편의 연기는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엄청난 노력과 준비의 결과일 것이다.
=실은 연기자로 데뷔했을 가능성이 더 컸다. 운이 좋아서 가수로 성공하고 배우의 길도 가려고 하는데, 글쎄 나는 아직도 성공이란 단어가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물론 대외적으로, 아니면 가수로서 광고를 많이 찍는다거나 음반을 많이 판다거나 해외에서 많은 걸 한다거나 드라마가 해외로 많이 팔려나간다거나 그런 것들도 있겠지만, 인기는 거품과도 같다. 언제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결국 실력이라고 본다. 운이 좋아서, 작품을 잘 만나서, 노래를 잘 만나서 잘될 수는 있다. 근데 그 이후에는 자기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렸다.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잘 밟아서 올라갔을 때 산 정상에 서면 요령을 얻는다. 그러면 그 다음엔 더 큰 산을 넘어갈 수 있는 거다. 가수로서는 한 산을 올라왔지만 더 큰 산을 노려보고 있는 거고, 연기에 대해서 지금 한 계단을 성공리에 밟고 있는 기분이다. 그걸 박찬욱 감독님과 함께한다는 게 의미가 크다.

-처음 드라마 시작할 때 많이 긴장했었나.
=아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전공이 연극영화과였다. 지금도 다시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고, 연기에 대한 욕심은 굉장히 많았다. 어릴 때부터. 알 파치노와 한석규 선배님의 연기를 좋아했다.

-주위의 시선과 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내 자존심한테만은, 내가 내 자신을 평가했을 때만큼은 잘할 수 있겠다 못하겠다 여부를 놓고 봤을 때 될 것 같으면 그냥 한다. 안 될 것 같으면 도전하지도 않는다.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시작한 것이고 그에 맞게 최종회를 할 때까지도 부끄러움 없게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내가 내 자신을 평가할 때는 굉장히 성공했다. (겸손투로 바꿔서) 아, 세편의 드라마를 하고 나니까 이제 조금은 연기에 대해 아는 것 같아요, 하고 겸손해지고 싶은 맘은 없다. 이제는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나는 진실되게 연기했고 자신있게 연기했다. 드라마 몇편 해본 놈이 뭘 알아? 안다. 왜 모르나. 드라마 16부작을 하나 끝내놓으면 그만큼의 내공이 쌓인다.

-굉장한 워커홀릭으로 알려져 있다. 욕심, 오기, 근성도 많고 집중력 강하고 완벽주의의 기질도 가졌다.
=맞다.

-근데 그런 면을 가진 사람들이 목표를 하나만 세우면 그것에 몰입하기가 쉬운데, 두개 이상이 될 때는 본인에게도 다른 식의 접근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가수와 배우, 어느 쪽에서도 최고가 되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을 테니까.
=당연히 사람의 욕심으로, 둘 다 성공하고 싶다. 그런데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둘 다 놓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머리를 잘 짜서 길 앞뒤를 잘 막아 그물을 쳐놓으면 두 마리를 다 잡을 수 있다. 난 언제나 준비를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이 24시간 중에 12시간은 일하고 12시간은 잔다 쳤을 때 나는 24시간 중 10시간은 음반쪽 일, 10시간은 배우로서의 준비, 그리고 4시간을 잔다. 잠을 줄이면서 다른 일에 투자를 하는 거다. 그런 건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걸 어긴 적이 있나.
=당연히 어긴다. 사람이라는 게 늘 로봇처럼 움직일 순 없으니까. 어느 때엔 음반에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어느 때엔 연기에 더 신경을 많이 쓴다.

-평소 수면 시간은 어떻게 되나.
=요즘에는 2∼3시간 정도 된다.

-그럼 그 시간을 쪼개서 무엇을 하나.
=4집도 나와 있고, 미국 진출에 앞서 준비도 해야 하고, 월드 투어 준비도 해야 하고, 영화 홍보도 해야 하고, 또 얼마 전까지는 ADR을 했었다.

-박일순이란 캐릭터가 본인의 코드와 잘 맞았나.
=그렇다. 재미있었다. 우선 내가 그렇게 밝은 모습을 더 가졌다는 걸 처음 알았고 잠재되어 있는 능력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아, 내가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그건 감독님이 많이 끄집어내주셨다.

-어떻게 끄집어내주셨나.
=그냥 나도 모르게. 감독님은 그냥, 해봐, 해봐, 하셨다. 어차피 HD니까. 하드 용량이 1시간이다. 1시간 내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이런 분위기였다. 스무 테이크, 서른 테이크, 계속 가는 거다.

-유난히 많이 갔던 테이크는 얼마나 됐는지.
=내가 성이 안 차서 서른두 테이크까지 간 적이 있다.

-감독님은 몇 번째 테이크에서 오케이하셨나.
=열서너 번째였던 것 같다.

-그걸 본인이 20테이크나 더 갔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래서 만족할 만한 걸 얻었나.
=만족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전에 분명 다른 시나리오들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왜 기다렸고,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데뷔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가.
=사실 이 작품을 하기 전에 좋은 시나리오가 두개 있었다. 물론 그것들이 다 개봉해서 둘 다 되게 잘됐다. 노선을 바꾼 이유는, 그냥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었고 신뢰였다. 처음에는 영화를 하면, 굉장히 좋은 선배님이 주연이라면 내가 조연으로 한번 시작해봐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게 뭐랄까, 충무로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고 내가 첫 단추를 끼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박찬욱 감독님에게 제의를 받고 다른 얘기들도 듣고 보니, 박 감독님 영화와의 연이라면 오히려 나에게 많은 플러스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선택하게 됐다. 흥행을 하고 싶어서라면 차라리 노래를 부르는 게 더 낫다. 돈도 많이 벌고, 외국 가서 활동하면서 명예도 더 얻고. 하지만 이걸 하는 이유는 나만의 욕심 때문이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래, 나는 연기도 꽤 했고 노래도 꽤 했던 한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되고 싶은 거다.

의상협찬 KOON, Ralph Lauren, 셀렉트·스타일리스트 박우현·헤어 및 메이크업 최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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