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12월7일 개막하는 서울독립영화제2006 가이드
2006-12-06
글 : 이영진
독립영화, 관객 속으로 파고든다

서울독립영화제2006이 12월7일(목)부터 15일(금)까지 서울 CGV용산에서 열린다.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해 관객과의 만남이 좌절되는 외부적 환경을 돌파하고, 독립영화의 정체성을 다시 되물어야 할 내부적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라는 뜻에서 올해는 ‘파고들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8월부터 한달 넘게 진행된 공모를 통해 접수된 602편의 작품 중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은 모두 47편. 영화제가 열리는 9일 동안 초청작까지 포함해 76편이 상영된다. “지난해에 비해 출품작 수가 87편이나 늘었으며 2004년에 비해서는 곱절이다”라는 게 영화제쪽 얘기다.

경쟁부문 47편 포함, 총 76편 상영

최근 몇년 동안의 추세처럼 올해도 프리미어 상영작이 대거 포진됐다. 단편 27편, 중편 10편, 장편 10편 등 경쟁부문 상영작 47편 중 프리미어 상영작은 30%에 달한다. 인디포럼, 미쟝센단편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등에서 상영됐던 작품들 외에 처음으로 관객과 마주하는 작품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개막작으로 초청된 황철민 감독의 장편 HD영화 <우리, 쫑내자!>도 첫선을 보이는 작품이다. 동반 자살을 위해 세 남녀가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로드무비로, 막다른 길의 끝에 다다라서야 단 한번도 품어보지 못한 희망을 떠올리는 인물들을 쫓는다.

이제 영화제 간판이 된 장편부문에서는 다큐멘터리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예심위원들이 “특정 작품을 손에 꼽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고른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1인 제작·연출한 이현정 감독의 <192-339: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는 노숙인들의 생활을 단면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어려움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독특한 형식으로 “범인도 용의자도 없는 사회적 타살”을 되짚는 <파산의 기술>, 가족사를 거슬러 한국 현대사의 고통에 다다르는 <백두산 호랑이를 찾아서>, 야생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출해온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 등도 챙겨볼 일이다.

다큐멘터리에 비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저렴한 DV로 긴 호흡의 상상들을 풀어내는 장편 극영화들에서도 새로운 감각의 기운이 느껴진다. 문명 세계에서 야만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도시무협 <도시락>, 지독한 성장과 상실의 고통기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연속되는 현실의 난타 앞에서 결국 무너지는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나비두더지>, 마약과 폭력에 취한 양아치들의 비극적 파국을 그린 <떨>, 독특한 상상이 돋보이는 가족이야기 <마지막 밥상> 등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5편의 장편 극영화는 소재, 주제 등에선 기발하다고 할 순 없지만 제각각의 형식미로 관객의 미각을 자극할 것이다.

장편부문 다큐멘터리의 약진 돋보여

87편의 출품작 중 10편이 상영되는 중편부문은 예심위원들이 “가장 애먹은” 섹션이다. 이중 일본 록밴드 기타울프의 짧은 여정을 담은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가지>는 폭소를 원하는 관객의 열광적 반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부산,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된 <도둑소년>과 <난년이>는 중·단편 독립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성장과 연애라는 익숙한 소재를 신선한 연출력으로 풀어낸다. 점집을 찾고서 절망하고(<내가 점 본 얘기해줄까?>), 포르노를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유년기의 끝>) 젊은이들도 만나보길. 파격을 원한다면 실험영화 <Cracked Share part 2.3.4>를 추천한다.

무려 486편이 출품된 단편부문 상영작들을 특정 경향으로 추스르는 건 무리다. 다만, 이주노동자를 끌어들여 무기력한 일상을 되돌아보는 영화들이 꽤 많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기러기 아빠와 외국인 노동자의 쓸쓸한 여행을, <바람이 분다> 또한 이주노동자와 데이트하려다 뒤통수 맞는 노총각 이야기를 담았다. <우연한 열정으로 노래 부르다 보면> 또한 낯선 어울림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깨닫는 이야기다. 이 밖에 수중에 가진 것이라곤 이만원밖에 없는 가장이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그린 <이만원>, 공허한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을 주인공 삼은 <살색미래>와 <얼음무지개>에서도 비루한 현실의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진영이> <우리 그만 헤어져>는 남근 중심의 성 관념을 비틀어서 바라보며, <졸업영화>는 독립영화란 뭘까라는 진지한 주제를 명랑하게 풀어내는 재기를 보여준다.

<내 곁에 있어줘>의 에릭 쿠 감독 특별전도 마련

올해 영화제가 마련한 특별전은 에릭 쿠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고 올해 개봉한 <내 곁에 있어줘>를 시작으로 국내 관객에게도 이름을 알린 싱가포르 출신 에릭 쿠 감독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데뷔작 <면로>(1995), 칸영화제에서 상영됐던 <12층>(1997),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였던 <휴일 없는 삶>(2006) 등의 연출작 외에 <사랑에 관한 이야기> <4:30> 등 직접 제작한 작품들도 상영된다. 12월9일 오후 7시에는 에릭 쿠가 직접 관객 앞에 나서 대담을 진행한다. 이번 영화제는 김명준 감독의 <우리 학교> 등 CJIP 지원작 3편을 포함한 독립장편영화 9편,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유명한 김종관 감독의 신작 5편, KT&G 상상마당 초청작 6편 등도 초청했다.

한편,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의 개막식은 CGV압구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12월11일과 12일 오후 2시에는 국내외 독립영화들의 원활한 제작, 배급, 상영 시스템 확보를 위한 세미나를 열어 해결책 마련에 나선다. 47편의 경쟁작들을 앞세운 2006년의 서울독립영화제는 개막작 제목처럼 모든 난관을 ‘쫑’내고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축제 개막에 앞서 <씨네21>은 관객과 시스템 안으로 파고들겠다는 독립영화의 의지를 지지하며, 올해 독립영화 축제에서 관객과 만날 세 감독을 미리 소개한다. 상영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