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세 가지>의 정병길 감독
2006-12-06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다큐멘터리와 농담 사이, 기이한 코미디

“당신은 왜 선글라스를 안 벗나요?”라는 질문에 “내 얼굴이 노출되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답하는 이 사람은 누군가.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가 늑대이기 때문에 나는 4분의 1이 늑대다”라고 말하는 이 자는 도대체 누구냔 말이다. 정병길 감독의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세 가지>는 이처럼 해괴한 발언을 상습적으로 일삼는 세이지가 속한 일본 인디밴드 ‘기타 울프’의 한국 체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여기서 잠깐. 방금 ‘다큐멘터리다’라고 말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락큰롤에…>는 다큐멘터리와 농담의 중간 정도에 서 있는 영화다.

<락큰롤에…>의 도입부, 내레이터는 무덤덤하게 말한다. “드러머 도루는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도장을 하나하나 깨려고 시도했으나 깨지는 도장이 없었다. 두드려다 두들겨 맞은 그는 자신이 두드릴 게 드럼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드러머의 길을 선택했다…. 기타리스트 세이지의 우상은 이소룡이었고 초등학교 시절 도루와 합동공연할 때 부른 노래 제목은 ‘엄마, 이소룡처럼 살고 싶어요’였다.” 농담 같은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베이시스트 유지는 건방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입됐다. 그는 기타 울프에 들어온 지 11개월 됐지만 베이스 경력은 10개월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의 설명 또한 우스갯소리처럼 들린다. “기타 울프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 농촌마을을 들렀는데, 그때 산업시찰을 나온 박정희 대통령의 선글라스 쓴 모습을 보고 라이방 안경을 사서 일본으로 돌아가 밴드를 만들었다.”

요절복통을 감수하며 웃다가도 이쯤 되니 슬슬 의심이 생긴다. 혹시 기타 울프라는 밴드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락큰롤에…>는 이 가상의 밴드를 소재로 한 페이크다큐가 아닐까, 라고. 하지만 기타 울프가 올해로 활동 19년째를 맞는 일본 인디록계의 거물 밴드라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다. 영화 <와일드 제로>(2000)에서는 주연을 맡아 외계인, 좀비 등을 물리치는 연기를 했던 이들은 올해 4월 한국을 찾아 전주영화제 등에서 3차례 공연을 갖기도 했다. <락큰롤에…>는 바로 이때 기타 울프가 한국에서 지낸 4박5일의 여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처음부터 픽션과 논픽션을 섞으려 했다. 허황되지만 좀 웃겨보자는 생각이었다.” 기타 울프를 한국에 초청한 공연기획사의 제의를 받았던 정병길 감독은 밴드의 홍보성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재미있는 다큐’에 대한 생각을 굳힌 것은 기타 울프가 공공연하게 스스로를 늑대인간이라거나 외계인과 맞서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리고 기타 울프를 근접 거리에서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기행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촬영 도중 메모를 하며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그러나 <락큰롤에…>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 영화가 그저 한번 웃어보자고 만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영화 초반 이 밴드의 구성원들은 실없이 겉멋만 든 듯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진정성을 드러낸다. 기타 울프는 전주영화제 야외상영 직전 한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치른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기타줄이 끊어지지만 이들은 ‘순수한 에너지 덩어리’ 그 자체를 토해놓는다. 열정적인 공연 직후, 세이지는 에너지를 모두 분출하지 못한 게 아쉬웠는지 다시 무대로 뛰쳐올라가 비장하게 기타를 붙들기도 한다. “로큰롤에 있어 중요한 세 가지는 ‘가오’, 근성 그리고 액션”이라고 말하는 기타 울프는 정말로 로큰롤 정신으로 똘똘 뭉친 듯했다고 정병길 감독은 말한다. “이들은 일행 8명의 비행기 값도 안 되는 200만원을 받으면서도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숙소가 불편하고 개런티가 적어서 어쩌냐’는 우리의 걱정에 대한 기타 울프의 답은 한마디였다. ‘로큰롤!’이라고.”

무모한 듯 보이지만 열정으로 가득한 기타 울프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중요한 뭔가를 일깨워주는 <락큰롤에…>는 정병길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다. 그가 <락큰롤에…>를 만들게 된 것은 어쩌면 그들 못지않은 열정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애초 그의 꿈은 화가였다. 미대 진학에 실패한 뒤 재능을 살려 장희선 감독의 <화기애애> 등 독립영화계에서 콘티를 그리면서 그의 꿈은 영화 연출로 바뀌어갔다. 나이가 차 입대를 하게 됐지만 그는 군대 시절 구상한 액션영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제대한 지 석달 만에 서울액션스쿨에 들어갔고, 수료작품인 <칼날 위에 서다>는 지난해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올해 <락큰롤에…> 외에도 친형인 정병식의 만화를 바탕으로 블랙코미디 단편영화 <가난해서 죄송합니다>를 만들었던 그는 지금도 <아버지란 이름으로>라는 단편 극영화와 몸무게가 135kg인 스물한살 남성의 살빼기 과정을 담는 다큐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영화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스물일곱 나이에도 올해 중앙대 영화과에 입학한 그에게 ‘대학 입학이 너무 늦은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는 분명 이렇게 답할 것이다. “로큰롤!”

장소협찬 클럽 스컹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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