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동을 많이 한다는데, 원래 좋아했나.
=의무감으로 시작했는데 요새는 재미를 붙였다. 헬스 트레이닝을 한다. 되게 고독한 운동이다. 그런데 나랑 맞는다. 내가 나를 이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단순하게 하나를 꾸준히 하는 건 힘들지만, 그 순간을 이길 때의 쾌감이 있다. 끝내고 샤워할 때. 그러면 술도 많이 마실 수 있고. (웃음)
-<조용한 세상>은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다양성에 굶주려 있을 때였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와 비슷한 시기에 결정했는데, 영역 확장을 하고 싶었다. 청춘물을 하고 싶지만 이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그런 아쉬움이 쌓였었나보다.
-어떤 청춘물을 하고 싶었나.
=춤영화를 하고 싶었다. 살이 맞닿을수록 인간은 쾌감을 느끼게 되어 있는데, 춤이 영화 속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원래 춤을 좋아하나.
=매일 나이트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웃음) 대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 친구랑 오후 6시에 만나서 저녁 먹고 컨셉 짜고, 8시쯤 명동 나이트에 가서 맥주 한잔 시켜놓고 지하철 끊기기 전까지 춤추고 집에 왔다. 허슬과 말춤이 유행할 때였다.
-영화를 많이 찍지 않았던 때, 한국영화 보면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었나.
=옛날에는 많았다. 머리가 굵어지고 자기 위치가 확고해질수록 그런 생각이 안 드는데, 나 자신이 정립이 안 되어 있고 치기어릴 때 그랬다. 저런 거 해보고 싶다. 잘할 수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안 맡기를 다행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진심으로.
-스스로에게 가혹한 것 아닌가.
=몇 안 되는 내 장점 중 하나가 나를 객관화한다는 것이다. 좋은 상황이라고 해도 흔들림은 없었던 것 같다. 나쁜 상황에도. 그런데 나쁜 상황이 많았다. 남들은 부정적이라고 말하는데 난 객관적이려고 하는 거다. 가장 큰 소원이 오래가는 건데 그래야 오래간다는 생각이 있다. 지인들 중에도 저격수를 좋아한다. 마냥 잘했다는 사람보다는.
-어떻게 오래 활동했으면 한다는 지향이 있나.
=현실적으로 따지면 안성기 선배가 있겠지만 그 한분만의 얘기는 아니다. 비굴하지 않게 오래가고 싶다. 물리적인 나이와는 상관없다.
-밖에서 보면 배우라는 직업은 ‘자뻑’이 강한 면이 있다. 스스로에 만족하지 않으면 너무 휘둘리니까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야 한다고.
=그래서 한때는 힘들었다. 자뻑에 빠져서 몰입해야 할 때가 있는데 잘 안 되니까. 여러 가지로 모자란 상황이 많았는데 생각까지 많으니 발전이 있었겠나. 게다가 내성적이었고.
-내성적인 성격인데 어떻게 연기할 생각을 했나.
=대학 때 영화연출 전공이었는데, 우연히 아르바이트로 TV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에 출연하게 되었다. 재밌어서 시작했다가 점점 연기에 중독된 경우다.
-<혈의 누> 때 ‘박용우의 발견’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연기를 계속해왔지만 밖에서 보는 기준은 눈에 띄어야 알아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인간 박용우의 전환점은 언제였나.
=<스턴트맨>이라는 영화가 엎어졌을 때, 드라마 <무인시대> 찍을 때. <혈의 누>는 현실적인 전환점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영화를 하는 데 있어서 현실적인 대처방법도 알게 해주었다.
-처세의 문제도 포함되는 건가.
=아주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런 거다. 이전에는 ‘내 안의 것을 잘 표현하면 감독님이 알아서 봐주겠지’ 했다면 <혈의 누> 이후에는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다. 누구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킬 때, 더 좋은 게 있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진실에도 방법이 있다.
-올해 찍거나 개봉한 영화들은 <달콤, 살벌한 연인> 이전에 고른 영화들이다. 그래서 앞으로 찍을 작품들에서 배우 박용우의 색깔을 좀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도 했고.
=현실적으로 그렇다. 비로소.
-영화 한동안 안 찍던 시기에는 뭐했나.
=굉장한 좌절의 순간이었다. (웃음) 그래서 요즘 너무 서둘러서 많이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듣는다. 어떤 면에서 칼을 갈았던 시기고, 그래서 지금 다양성에 대한 욕구가 심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동력은 무엇이었나.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난 이것밖에 할 게 없다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생각만 들더라. 이것밖에 할 게 없다고. 진실되게 원하는 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웃음) 다행히.
-발견이니 뭐니 할 때 어이없고 기찬 면도 있었을 것 같다.
=흥행 잘되어야 기억하고, 역할 세야 기억하고 튀어야 기억한다. 그런데 난 그런 조건만으로 작품을 고르지 않는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을 테고. 하지만 어떻게 매일 센 역만 하나. 그리고 어떻게 매번 튀나. 어떤 때는 물 흘러가듯이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센 걸 했을 때 돋보인다. 매번 흐리멍텅한 것도 안 좋지만 매번 센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도 내게는 소중한 영화지만 <달콤, 살벌한 연인>만큼 기억해주는 건 아니더라.
-오래가는 배우가 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기 관리는.
=오래가는 게 말이 쉽지 굉장히 복합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도 좋아야 하고, 운도 있어야 하고, 연기력도 필요하고, 서두르지도 말아야 한다. 예전에는 신중하고 심각한 게 단점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스스로에게 고맙기도 하다. 그런 것들만 지키면 연기만 오래 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