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에라곤-제레미 아이언스 인터뷰] 테크놀로지가 인간 정신을 창조할 순 없다
2006-12-20
글 : 김도훈

완성된 영화를 본 기분은 어떤가.
(흥분된 어투로 “당신들은 어떻게 봤나?”라고 기자들에게 물어보고 나서) <에라곤>에는 15살 소년의 이야기다운 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소년다운 약간의 감상주의, 선악구조와 이야기의 간결함 말이다. 나를 위한 영화라기보다는 좀더 젊은 세대를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라.

최근 들어 판타지 장르가 인기를 얻는 까닭은 뭘까.
판타지영화에는 일종의 도피주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건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니까. 그러나 판타지영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캐릭터 사이의 관계다. 조지 루카스의 마지막 <스타워즈> 시리즈를 봐라. 그는 테크놀로지에만 집중하느라 배우의 연기는 모조리 무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사람들은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 배우가 더이상 필요치 않을 거라 내다보지만, 테크놀로지가 인간 정신을 창조할 수는 없다.

액션장면들이 많다. 육체적으로 힘들진 않았나.
액션장면 찍는 걸 매우 좋아한다. 말타는 것도 좋아하고. 나는 매우 육체적인 남자다. (웃음) 다만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하는 장면은 좀 피곤하기도 했다. 검술을 모조리 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땐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 또한 신선하게 유지해야만 한다. 그래도 영화라 시퀀스를 잘라 붙일 수 있으니 검술장면을 모조리 외워서 할 필요는 없었다. 다행이다.

아무래도 당신이 가장 유명한 배우라 현장에서 책임감도 컸을 듯한데.
뭐 그냥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다만, 배우들과 일해본 경험이 없는 새내기 감독과 작업하는 건 위험하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스티븐은 단 한번도 배우들과 일해본 경험이 없는 관계로 내가 가이드를 조금 해주어야 했다. 그런 부분에서는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스타워즈>의 오비완 케노비를 연상케 하는 브룸 역은 쉽게 클리셰가 될 수도 있는 역할이다.
나는 어땠나?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제발 그러지 않았기를 바란다. 나는 클리셰를 피하는 예민한 후각이 없다.

대본을 보고 준비할 땐 그런 본능이 필요한가.
물론 대본을 읽을 때는 본능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다음, 의상을 입고 프로덕션디자이너들이 창조한 세계를 참고해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간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역할을 만드는 것은 내 자신이다. 이번 역할은 캐릭터의 무정부주의적인 면과 드라이한 유머 같은 것들이 실제의 나와 비슷해서 대단한 ‘역할의 확장(stretch)’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거다.

올랜도 블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젊고 재능있는 배우들과 일해왔다. 당신이 그들에게 주는 영향력만큼 그들도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가.
놀라운 건 그들이 (밤샘 촬영을 거치고) 새벽 5시에도 팔팔하다는 사실이다. (웃음) 나는 존 말코비치, 이안 매켈런 혹은 디카프리오,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좋은 배우들로부터 배운다. 다만 젊은 세대와 우리 세대는 역사적인 세부사항에 대한 접근법이 다르다. 이를테면 <아이언 마스크>의 디카프리오는 루이 14세와 전혀 닮은 데가 없다. 하지만 젊은 관객에게 그건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 세대는 시대극을 보면서 실재 인물과 아주 비슷한 배우를 기대하는데 말이지.

혹시 출연작의 박스오피스 결과에도 관심을 갖는가.
언제나 관심을 기울인다. 박스오피스 결과야말로 다음에 얼마나 쉽게 역할을 따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니까. 비싼 출연작이 돈을 잃으면 다음에는 역을 맡기 힘들다. 배우는 그의 출연작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출연작이 얼마나 돈을 버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가. 그런 것들에 완전히 기대지는 않더라도 항상 숨죽여 지켜본다. 흥행이 좋지 않으면 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출연작 중 어떤 영화를 제일 좋아하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어떤 영화는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고, 어떤 영화는 나에게 성공을 가져다주었고. (한참 생각한 뒤) <로리타>다. 내 연기의 여러 가지 범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매우 풀어내기 힘든 주제를 다룬 것이기도 하고.

당신 같은 중견 배우는 앞으로의 커리어에서 무엇을 얻고 싶어할까.
도전이다. 나는 무언가 색다른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나는 뭔가에 쉽게 질리는 인간이다. 그래서 나를 흥분시키거나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것에 도전하는 것이 좋다. 삶은 너무나도 짧다. 도전은 짧은 삶에 색채를 입힌다. 거기에 따르는 위험은 삶의 여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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