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도 추워도, 나는 안 울어~ 노래하고 춤추지, 울긴 왜 울어~. 기대하시라. 사상 최고의 가수, 지구 최고의 댄서, 펭귄 군단이 몰려온다. 오는 12월21일 국내 개봉을 앞둔 <해피피트>의 주인공은 날지 못하는 거대한 조류, 위풍당당한 풍채의 황제펭귄이다. 팝뮤지컬애니메이션을 표방하는 <해피피트>는 능청스러운 몸짓, 뒤뚱거리는 행동으로 일찍이 숱한 애니메이션 속 조연으로 활약했던 이들에게 멍석을 깔아줬다. 사실 이들을 스크린에서 만나기 전 필요한 것은 기꺼이 들썩일 어깨, 장단을 맞추기 위한 두발뿐이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 그 이상으로 기록될 <해피피트>를 200% 즐기기 위한 그 무엇 역시 존재한다. 황제펭귄은 어떻게 생존에 대한 근심을 멈추고 리듬에 몸을 맡기게 되었는가. 그에 대한 대답과 함께 이를 가능하게 한 막강 캐릭터, 그들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들의 면모를 소개한다. 절묘하게 삽입된 뮤지컬 장면, 영화 속에 적절하게 차용된 실제 황제펭귄의 생태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철 지난 홍보 문구가 아니다. <해피피트>를 말함에 있어 이보다 적당한 소개말은 없다.
007을 한방 먹이고, 교회의 힘을 누른 펭귄들. 지난 11월17일, 추수감사절을 공략하며 북미지역에서 개봉한 <해피피트>는 <007 카지노 로얄>을 뒤로한 채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했고, 크리스마스와 가장 관계가 깊은 인물, 예수의 탄생을 그린 <네티비티 스토리: 위대한 탄생>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겨냥하고 지난 12월1일 개봉했으나 펭귄 군단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12월3일 현재 미국에서 1억2150만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거둔 <해피피트>가 애니메이션으로는 올해 최고 흥행을 기록한 <아이스 에이지2>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집에서 가까이 두고 키울 수 없고, 날지도 못하며, 뒤뚱거리는 거대한 새들이 이토록 열렬한 애정공세를 받게 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쟤, 우연찮게 멋진데?”(Accidentally Cool) 발을 헛디뎌 얼떨결에 스릴 만점에 눈썰매를 즐기게 된 주인공 멈블을 향해 유쾌한 친구 라몬이 던지는 대사다. 노래하고 춤추는 펭귄들의 깜찍한 재롱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성인 관객 역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 대사를 중얼거리지 않을까. 짝짓기를 위해 모여든 수만 마리의 무리 속에서 ‘하트송’(Heart Song)을 불러 서로를 알아보고 가정을 이루는 황제펭귄 사회. <해피피트>는 저마다 노래실력을 뽐내는 곳에서 최악의 음치로 태어나 자신의 하트송은 입이 아니라 발을 통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펭귄계 최초의 탭댄서 멈블의 여정을 따라간다. 춤과 노래 혹은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구조는 명백하고, 새처럼 바다를 가르는 펭귄의 집단 유영부터 괭이갈매기, 범고래 등 천적과 벌이는 흥미진진한 추격전 등 아이맥스 개봉을 염두한 것이 분명한 몇몇 액션 시퀀스는 통쾌하다. 요즘 관객이 3D애니메이션에 기대하는 기본적인 미덕은 갖춘 셈이다. 그러나 <해피피트>는 잘 만든 애니메이션을 넘어 진심으로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될 만하다. <해피피트>가 걸작이 된, 절반의 우연과 절반의 필연이 어우러진 사연은 다음과 같다.
어쩌다보니 팝뮤지컬?
<매드 맥스> 시리즈와 <로렌조 오일>을 연출한 조지 밀러 감독은 이후 <꼬마돼지 베이브> 시리즈를 통해 자신이 동물영화에 숨겨진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해피피트> 역시 실사영화로 만들까 생각했지만 펭귄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어려운 일 같았다”는 그의 말은, 물론 농담이다. 그러나 20세기의 아이콘이라 할 만한 온갖 종류의 히트 팝송으로 채워진 <해피피트>가 이토록 흥겨운 리듬을 갖게 된 것은 어느 정도 우연에 기댔다고 보는 편이 맞다. 노래로 구애하는 황제펭귄의 생태에서 착안한 애니메이션을 발전시키면서 노래와 춤이 중요한 설정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각종 TV시리즈에 출연한 배우이면서 <베이브2>의 공동각본으로 밀러 감독과 연을 맺게 된 주디 모리스는 공동각본은 물론 공동감독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비슷한 외모를 지닌 펭귄들을 구분하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20세기의 대표적인 팝송을 각각의 펭귄에게 부여하기로 했다”는 밀러 감독은 모리스를 “걸어다니는 아이팟”으로 부른다. “특정 순간에 특정한 멜로디나 가사가 필요할 때마다 그녀는 정확하게 어떤 노래의 어떤 부분을 연결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유명 팝송을 적절히 변형하여 몇 소절씩 끼워넣는 <해피피트>의 전략은, 포스트모던 뮤지컬이라 불렸던 <물랑루즈>를 떠올리게 한다. 직접 노래가 가능한 배우를 성우로 캐스팅한 것도 마찬가지. 호주 출신 감독을 위해 기꺼이 달려와 멈블의 부모, 멤피스와 노마 진을 연기한 호주 출신 배우 휴 잭맨과 니콜 키드먼은 마돈나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냈다. 영화 속에서는 한번도 노래를 부른 적이 없던 브리트니 머피가 최악의 음치를 사랑하게 된 최고의 가수, 글로리아로 실력을 발휘했다. 그렇다면 멈블을 연기한 엘리야 우드의 실제 노래 실력은? “엘리야 우드에겐 노래 실력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니 그가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나도 모르지. 하지만 노래를 못 부르라고 주문했더니, 그건 완벽하게 해내더라.” 밀러 감독의 말이다.
어쩌다보니 펭귄?
턱시도를 연상시키는 몸빛을 지닌 펭귄은 단체로 뒤를 돌아보기만 해도 기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고개를 쳐들고 짧은 날개를 퍼덕이며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는 능청스럽다 못해 음흉해 보일 정도. <월레스와 그로밋: 전자바지 소동> <마다가스카> 등의 애니메이션에서 어딘지 모자라 보이는 악당 조연으로 펭귄이 출연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펭귄과 동물 중 가장 큰 풍채의 황제펭귄이 극영화의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된 것은 아마도 최초가 아닐까. 몸길이 1.2m, 몸무게 35kg, 갑옷을 연상시키는 매끈한 질감의 털과 왠지 무시무시해 보이는 커다란 발. 아델리 펭귄 등 일반적으로 동물원 등에서 인기를 끄는 작은 종들에 비해 아무래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지난 여름 전세계가 황제펭귄을 응원하게 만든 다큐멘터리 <펭귄: 위대한 모험>이다. 감독 자신은 <해피피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10년 전 TV에서 접한 펭귄다큐멘터리 <냉동고 안에서의 인생>이라며 <펭귄…>과의 무관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가혹한 삶을 묵묵히 버티는 이들의 숭고한 모습을 4년 동안 따라잡은 다큐멘터리 <펭귄…>이 지난 여름 전세계를 조용히 강타한 것이, 황제펭귄을 향한 일반 관객의 우호적인 시선에 도움이 되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황제펭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들과 대비되는 성향을 지닌 아델리 펭귄이 사랑스러운 감초로 부상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추운 극지방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황제펭귄이 우아하지만 다소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따뜻한 해변에서 살아가는 아델리 펭귄은 실제로도 낙천적이다. 제작진은 이러한 종별 특징에 착안해 황제펭귄 우두머리 노아에게는 깐깐한 스코틀랜드 억양을 부여하고, 로빈 윌리엄스와 라티노 배우 4인방이 특유의 왁자지껄한 연기를 선보인 아델리 펭귄 무리는 인간으로 치면 멕시칸으로 설정했다. 멈블의 탭댄스를 한결같이 응원하는 이들의 열정적인 수다 속 화려한 애드리브는 절대 놓칠 수 없는 백미. 모두가 바쁜 일정에 시달리는 배우들임에도 아델리 펭귄 무리에 한해서는 반드시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더빙을 진행한 결과다.
어쩌다보니 대서사시?
“이야기가 제일 중요하다.” <해피피트>든 <매드 맥스>든 <베이브>든 이야기를 가장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말하는 조지 밀러 감독의 말은 <해피피트> 속 가장 의미심장한 반전에 대한 힌트다. 황제펭귄 지도자 노아는 먹이가 줄어들고 천적의 횡포가 심해지는 것을 ‘펭귄답지 않은’ 멈블의 춤 때문이라며 그에게 추방을 명령하고, 자신의 춤은 남과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님을 믿는 멈블은 그 모든 것이 바깥세계에 살고 있는 ‘외계인’ 탓임을 증명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불가능에 도전하던 것에 반지원정대의 고난을 능가할 만큼 비장한 모험을 겪은 끝에 멈블이 도착한 곳은 “커다랗고 못생겼고 눈은 가운데 모여 있는” 인간세계. 별것 아닌 안락을 위해 이미 1천여종의 동물을 멸종시켰거나 멸종 위기에 처하도록 만든 무심한 우리의 모습이 그처럼 소름끼치게 보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손을 뻗어 털을 만져보고 싶게끔 만드는 새끼 펭귄과 그 가족이 등장하여 노래와 춤 실력을 뽐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가족 뮤지컬영화는 환경문제, 그리고 더불어 사는 법을 근심하는 대서사시로 변모한다.
<토이 스토리> 덕에 폐기처분 일보직전의 무수한 장난감들이 구원받은 바 있고, <니모를 찾아서>가 개봉한 뒤에는 변기에 금붕어를 내려보내는 아이들이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탄탄한 이야기를 앞세워 웬만한 성인영화도 담지 못할 철학을 담은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뭔가 행동(?)하게 만든다. 남과 다른 자신의 개성을 받아들이고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도록 설득하는 <해피피트>는 개인적인 성장담을 넘어 전 지구적인 조화의 삶까지 이야기한다. 지구상의 총체적인 재난 상황이 어쩌면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일갈을 남긴다. 이 정도면 디즈니 만화의 위험한 순진무구함을 꼬집고 외모지상주의를 비웃은 <슈렉>이 꾀한, 애니메이션으로서는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에 비할 만한 수준이다.
영화의 마지막. 갑작스럽게 황제펭귄의 삶을 근심하게 된 인간들이 말한다. “펭귄없는 삶은 싫소!” 개그프로그램 속 썰렁한 농담 같다고? 우습게 보지 말 일이다. 단언컨대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 역시 진심으로 “옳소!”를 외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