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는 흔히 나쁘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바람둥이의 원조로 알려진 카사노바는 미모와 재능의 소유자였다. 17살 때 박사 학위를 받고 추기경의 비서, 바이올리니스트, 승려, 비서, 군인, 탐험가, 철학가, 스파이,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그는 <나의 인생 이야기>라는 유명한 자서전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여성을 위해 태어났다고 자각한 나는 늘 사랑하였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내 전부를 걸었다.” 결국 그들의 잘못은 단순히 바람기가 아니라, 풍부한 재능을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올인한 데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카사노바가 영화 속 바람둥이에게 묻는다.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바람둥이로 잘살 수 있는 방법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든 건 다 바람 탓이었어
카사노바: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한 모든 일들이 설령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자유인으로서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살아왔음을 고백했습니다. 당신도 자유인인가요?
폴: 그런 셈이죠. 저는 28살의 책 판매상이고 뉴욕에 사는 프랑스인이죠. 제게 정착은 어울리지 않아요.
카사노바: 28살에 죽다니 너무 안타까운 죽음이군요! 당신처럼 젊고 잘생긴 청년이 왜 결혼 10년차 유부녀에게 접근했죠? 그녀는 8살 난 아들과 뉴욕 교외에서 행복하게 사는 평범한 중산층 주부였는데요.
폴: 원조 바람둥이께서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 꽤 당황스럽군요.
카사노바: 그럼 질문을 다시 하겠습니다. 코니와의 첫 만남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폴: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습니다.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흥얼거리면서 책을 잔뜩 들고 걸어가는데 그녀와 딱 부딪쳤습니다. 덕분에 코니가 넘어져 무릎이 깨졌지요. 근데 왠일인지 깨진 무릎을 본 순간 그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커피나 한잔하고 가라고 권유했죠.
카사노바: 작업이었죠?
폴: 에이, 다 아시면서.
카사노바: 계속하시죠.
폴: 처음엔 좀 당황한 눈치더군요. 하지만 제가 호의를 베푸니까 제게 호감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카사노바: 어떻게요?
폴: 반창고도 발라주고 책도 선물했죠. 하루하루 판에 박힌 생활을 하는 주부들에겐 자연스러우면서도 스릴과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게 중요하죠. <밀애>의 김윤진을 보세요. 남자가 섹스는 하되, 절대로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게임을 하자니까 바로 응낙하잖아요?
카사노바: 그럼 혹시 책에 뭔가 씌어 있었나요?
폴: “이 순간을 즐겨라. 이 순간이 바로 인생이다.”
카사노바: 후훗. 뻔하지만 강렬하네요. 물론 스킨십도 했겠죠?
폴: 물론이죠. 그녀에게 코트를 받아들면서 은근히 그녀의 목을 어루만졌는데 무척 부드러웠죠. 그리고 브라이유 점자책을 보여주면서 손도 잡고요. 느낌이 왔어요. 아, 이 여자가 긴장하고 있구나. 하지만 처음엔 그냥 보내줬어요.
카사노바: 밀당이군요?
폴: 네?
카사노바: 밀고 당기기요.
폴: 네. 기본이죠. 그녀는 죄책감을 느끼는지 바로 집으로 가버렸어요. 하지만 바로 며칠 뒤에 전화가 왔죠.
카사노바: 미끼에 걸려들었군요?
폴: 예. 저는 다시 커피를 권유했죠. 그녀도 망설이는 듯하다가 결국 제 낡고 허름한 아파트로 다시 오더군요. 그래서 끈적끈적한 뮤직을 미리 틀어놓았죠.
카사노바: 에이그, 이런 능청꾸러기!
폴: 헤헤헤. 우린 같이 춤을 췄습니다. 눈이 예쁘니까 밤에도 눈뜨고 자라는 둥 뻐꾸기도 좀 날려주고요. 헤헤. 우린 금세 가까워졌고 너무도 쉽게 침대로 갔죠.
카사노바: 여기까진 작업의 정석에 가까운 이야기네요. 데이트는 어떻게 했습니까?
폴: 전 대담한 편이에요. 남들 눈 의식하느라 인생을 낭비하진 말자, 주의죠. 그래서 낮에 카페에 가거나 거리를 돌아다녔죠.
카사노바: 여자가 불안해하지 않았습니까? 코니의 죄책감이 말이 아니었겠네요?
폴: 그렇죠. 전 싱글이고- 참, 저는 별거 중인 부인이 있죠- 그녀에겐 가정이 있으니까. 제가 만나는 여자들은 대체로 그래요. 초반엔. 하지만 곧 마음을 풀고 말죠. 코니도 처음엔 남편과 아들 걱정을 하느라 줄곧 불안해했지만, 이내 정신을 놔버리더군요. 제게 완전히 빠진 거죠. 하루는 소파에 벌거벗고 누워 있다가 아들을 데리러 가는 걸 깜빡한 적도 있다구요!
카사노바: 남편이 알아차렸나요?
폴: 네. 에드워드는 상당히 주도면밀한 인간이더군요. 질투심도 있고. 하루는 내 집까지 찾아왔어요. 코니를 아느냐면서.
카사노바: 뭐라던가요?
폴: 만난 지 얼마나 됐냐, 뭐하고 놀았냐. 사설탐정이라도 기용했는지 다 알고 온 눈치였어요. 저와 코니가 뒹굴었던 침대 위에 한참을 앉아서 절망적인 얼굴을 하고 있더군요.
카사노바: 뭐라고 변명했습니까?
폴: 변명할 게 뭐 있겠습니까? 술을 권하고 그냥 묻는 대로 다 가르쳐줬죠. 코니가 내게 준 수정구슬에 대해 이야기하자 분노한 것 같았어요. 그건 자기가 코니에게 준 선물이었다고 하더군요. 나 같아도 열받을 것 같아요.
카사노바: 생각보다 뻔뻔하시군요.
폴: 피부가 삼중 바이오세라믹입니다.
카사노바: 농담하지 마시구요.
폴: 진짜예요! 진정한 바람둥이가 되려면 얼굴에 철판 까는 게 중요하다구요. 돈, 학벌, 외모 이런 건 중요치 않아요. 문제는 자신감이죠. 이 여자를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
카사노바: 자신감이 있어도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바람둥이로 잘살아남을 수 있죠?
폴: 글쎄요. 전 살아남은 경우가 아니라서. (웃음)
카사노바: 바람둥이 꿈나무들을 위해 몇 가지 팁만 공개해주세요.
폴: 흠… 일단 악천후를 노리란 말씀을 해주고 싶네요. 바람 부는 날 저처럼 멋진 남자와 부딪칠 확률이 높으니까. 만일 비극으로 끝나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모든 건 다 바람 탓이었어.’
카사노바: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는 얘기 같군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게 릴레이 인터뷰거든요? 혹시 다음 인터뷰이로 누굴 추천하고 싶으십니까?
폴: 저 같은 연하남을 만난 여자 입장을 들어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