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할리우드 대작 시나리오 작가] 테드 엘리엇, 테리 로시오
2007-05-31
글 : 김민경
비틀기와 뒤집기를 즐기는 만담 짝패

<슈렉> <캐리비안의 해적>시리즈의 테드 엘리엇과 테리 로시오

HeSTORY

디즈니랜드 근처에 살던 두 고등학생이 훗날 그곳의 놀이기구를 ‘원작’으로 세계적 히트 영화를 만들 줄 누가 알았으랴.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시나리오 콤비인 테드 엘리엇과 테리 로시오의 파트너십이 시작된 건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동네 뒷산에서 자칭 R등급(‘한심한’을 뜻하는 Ridiculous의 R) 영화를 찍으며 놀던 두 악동은 1978년 고교 졸업과 함께 프로 각본가의 꿈을 키운다. ‘어떤 일이든 10년만 버텨내면 그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믿음 하나로 테니스 강사, 비디오 촬영기사 등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각본을 쓴 두 사람은 판타지 코미디 <리틀몬스터>(1989)로 어렵사리 메이저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데뷔한다. 콤비의 재능이 꽃핀 것은 1992년 개봉한 <알라딘>부터다. 2001년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 오른 <슈렉>과 2002년 안정적인 흥행 능력을 증명한 <보물성>에 이어, 2003년 포문을 연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콤비는 전세계에서 천문학적 박스오피스를 기록했다. 오렌지카운티의 악동들은 결국 처음 예상했던 10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할리우드의 대표 각본가로 자리잡았고, 지금은 올 여름 극장가의 가장 파괴적인 흥행작으로 예상되는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을 막 전세계에 소개할 참이다.

TALENT

이들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해적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해적영화에 대한 영화다”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슈렉> 역시 전통적인 동화 코드를 뒤집은 ‘동화에 대한 동화’라 할 법하다. <캐리비안…>에서 두 작가는 법도 도덕도 없이 사는 우스꽝스런 기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배짱, 그리고 이 추하고 너절한 주인공을 지극히 매력적인 신세기의 아이돌로 그려낸 솜씨로 세계의 관객을 흥분시켰다. 동화 텍스트의 암묵적 약속을 거침없이 전복한 <슈렉>의 쾌감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 엘리엇과 로시오가 증명한 것은 이제 블록버스터의 미덕은 화려한 볼거리뿐 아니라 캐릭터와 세계관을 직조하는 신선한 시각을 갖춰야 성립한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화려해지는 ‘대사’도 이들의 주무기다. <알라딘>의 지니 대사로 로빈 윌리엄스와 디즈니 스탭을 포복절도시켰던 현란한 만담 실력은 <슈렉>의 동키를 거쳐 <캐리비안…>의 잭 스패로우에서 만개했다. <캐리비안…> 속편 제작이 결정될 때 디즈니와 제리 브룩하이머가 가장 우선시했던 것도 엘리엇-로시오 콤비의 재영입이었다니, 이 시리즈로 둘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진 건 틀림없다. 조니 뎁도 이들 각본가 콤비가 속편을 맡지 않으면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20억달러가 투입된 클라이맥스 액션신도 촬영 당일 점심시간에 급하게 고쳐 쓰는 대담한 이들에게 그만큼 전폭적인 신뢰가 쏟아진다는 건 사실 놀라운 일이다. “각본가로서 우리의 포부는…적어도 촬영 당일까진 시나리오 초안을 넘기는 거다.” 어쩌면 이 배짱이야말로 가장 쿨한 동화 속 괴물과 가장 쿨한 해적 선장을 창조한 원동력인지도.

MEMORABLE LINES

티아 달마: 그러다 (데비 존스는) 모든 남성의 적을 만났지.
윌 터너: 모든 남성의 적이라니?
티아 달마: 글쎄, 뭘까.
깁스: 바다 말인가?
핀텔: 덧셈?!
라게티: 선악의 흑백논리…?
잭 스패로우: 여자.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중에서

애벌레를 눌러짜서 치약으로 삼고 귀지를 파내서 식탁 위 양초로 삼던 초록 괴물을 기억하는가. 늘 취한 양 비틀거리는 이 해적 선장의 행동거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엽기성을 자랑한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썩소를 날리고, 향수 대신 향신료를 겨드랑이에 뿌리고, 관 속에 숨어 바다로 탈출해선 시체의 다리뼈를 뜯어내 노 삼아 저어 간다. 멋있고 폼나는 모든 클리셰에서 멀리멀리 도망가는 잭 스패로우에게서 관객은 이 시대 ‘쿨’의 정수를 본다. 그런데 조니 뎁의 매력이 스크린을 장악하면 할수록 테드 엘리엇과 테리 로시오는 초조해진단다. 그들이 작품세계에 깔아놓은 복잡다단한 장치들을 관객과 평단이 다 쫓아와주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다들 조니 뎁의 근사함을 입을 모아 칭송하지만, 유머와 시각효과, 소품 장치, 조연들의 연기에 대해선 별로 얘기하지 않는다.” 2편부터 엘리엇과 로시오는 캐리비안의 세계를 좀더 복잡하게 꾸몄다. 네명의 새로운 캐릭터가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확장되고, 인물 관계와 사건은 설명된 것 이상의 여운을 드러낸다. 엘리엇-로시오 콤비는 관객이 지나치기 쉬운 작은 유머와 배경 설정들도 챙기며 영화를 꼼꼼히 즐겨주길 바란다. 깁스, 핀텔, 라게티가 한마디씩 끼어드는 사소한 대화 장면에도 조연들의 극단적인 개성이 수줍게 드러나 있다. “영화의 진짜 매력은 풍부한 정보에 있다.” 대사, 미술, 슬랩스틱에 담긴 촘촘한 디테일의 잔재미들, 꼭꼭 씹어 음미해달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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