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할리우드 대작 시나리오 작가] 윌리엄 모나한
2007-05-31
글 : 오정연
시대와 장소를 묘사하는 정확한 눈

<킹덤 오브 헤븐> <디파티드>의 윌리엄 모나한

HeSTORY

윌리엄 모나한이 각본가로 크레딧을 올린 영화는 단 두편. 그중 한편은 12세기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포스트 9·11 시대를 은유한 기이한 역사활극 <킹덤 오브 헤븐>으로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아카데미 각색상과 골든글로브 각본상 등 10여개의 트로피를 안겨준 <디파티드>는 홍콩 누아르의 화려한 부활을 선포한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결과물이다. 그의 독창성을 보여줄 만한 필모그래피는 아니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2007년 현재 모나한이 관여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프로젝트는 <쥬라기 공원4>를 포함하여 모두 다섯개. 19세기 초 버버리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트리폴리>를 비롯하여 한때 스탠리 큐브릭의 차기작이었던 영화, 마르코 폴로의 전기영화, 요르단에서 활동하는 CIA 요원에 대한 리들리 스콧의 차기작 등이 포함된 리스트는 모나한이 바로 지금,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 작가임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한때 “더이상 직업으로 존재하지 않는” 학자 지식인을 꿈꾸던 영문학도였음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뉴욕 포스트> <맥심> 등의 매체에 글을 쓰던 모나한은 자신의 소설 <라이트 하우스: 트라이플>을 고어 버빈스키를 위해 각색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TALENT

비중있는 조연이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사라지고, 주인공은 항전이 아닌 항복을 택하며(<킹덤 오브 헤븐>), 마지막까지 불완전한 주인공 모두는 급작스러운 최후를 맞이한다(<디파티드>). 매력적인 주인공의 영웅적인 여정과 성장을 묘사하는 할리우드 대작의 법칙으로 본다면 빵점짜리 시나리오. 널리 알려진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서 냉소를 표하는 모나한의, 자타가 공인하는 장점은 “역사에 대한 강한 관심, 배경이 되는 시대와 장소에 접근할 때, 중요한 요소를 뽑아내는 능력”이다. 정치적으로 모범적이고 영화적으로 지루한 <킹덤 오브 헤븐>의 극장판 러닝타임은 137분. 그러나 많은 이들은 DVD에 수록된 182분짜리 감독판에서 모나한의 장기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킹덤 오브 헤븐>의 탄생 비화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트리폴리>를 위해 그를 만났던 리들리 스콧이 중세 기사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모나한이 십자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제안했던 것. 스콧은 그 자리에서 설복되어 <킹덤 오브 헤븐>의 시나리오를 부탁했다. 그의 또 다른 장점은, 더이상 분업화할 수 없는 할리우드에서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는 영화적 전통을 고집하는 뚝심이다. 좀처럼 공동작업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공동작가 크레딧을 허용한 영화는 <쥬라기 공원4>. 마지막 순간까지 막강한 권력을 지닌 감독과 뛰어난 배우를 위해 시나리오를 고쳐 써야 한다고 믿는 그가 <킹덤 오브 헤븐>의 촬영현장에 합류하기 위해, 시나리오의 마무리를 존 세일즈에게 맡겨야 했던 것이다.

MEMORABLE LINES

빌리: 나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내 결론은 이거예요. 아무렴 어떠냐. 날 한번 모욕하면 참을 겁니다. 두번 모욕하면 때려칠 거고. 하지만 날 협박하면 당신 머리통에 총구멍을 내주겠소.
코스텔로: 혹시 나한테 물어볼 거 있나?
빌리: 당신은 일흔살이에요. 돈도 많은데 마약 거래하면서 위험을 자초하는 이유가 뭐지?
코스텔로: 난 초등학교 때부터 삥 뜯으면서 늘 풍족했어. 솔직히 이젠 섹스도 꼭 필요하지 않아. 하지만 즐기지. 내 말은, 첩자가 있다는 거야.

윌리엄 모나한은 제작자와의 첫 만남에서 <디파티드>의 배경이 보스턴이어야 함을 직감했다. 아일랜드계인 모나한의 고향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보수적인 청교도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보스턴. “이탈리아 갱은 수명이 다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보스턴의 아일랜드계 갱단을 다뤄야 했다. 언제나 화가 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보스턴 글로브>를 비롯한 숱한 지역 언론들은 <디파티드> 개봉 당시, 보스턴에서 살아가는 아일랜드계 하층민들의 말과 행동, 가치관을 정확히 반영한 시나리오에 극찬했다. 조직에 잠입한 경찰 빌리와, 빌리를 떠보는 두목 코스텔로의 대화.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주어지는, 흥미로운 정보들이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죽음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빌리의 자포자기한 발악에서는 보스턴 토박이들의 운명론이 엿보이고, 코스텔로의 대사는 그가 실은 성적 능력을 상실한 노인임을 암시하면서 유래없는 악의 화신이 지닌 이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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