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출연을 거절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엔 내 역할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두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것이니 더욱 자신없었다. 여러 시나리오들을 놓고 고민하다가 내가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작품이 뭔지를 추려내다보니 이게 딱 나왔다.
-아니/하니 캐릭터는 애초부터 정려원이라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고 하던데.
=황인호 작가님은 내가 하면 딱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하더라. 내 안에 엉뚱한 느낌이나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해주신 것이니 감사한 마음이었다.
-하여간 첫 주연이니 부담감이 있었겠다.
=너무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했다. 안주하려다 보면 발전이 없을 수도 있다고. 사실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가 크다. 왜 집 살 때 보면 약간 무리를 해서 사잖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못 가게 되니까.
-처음 내 집을 마련한 느낌과 같은가.
=그렇다. 많이 뿌듯하다. 후회되는 장면도 많지만, 당시는 최선을 다했던 것이니까. 이제 집을 장만했으니까 가구를 사야지. 더 큰 집은 그 집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 때쯤 욕망이 생길 거다.
-이중인격 캐릭터를 끄집어내면서 스스로도 놀란 점이 있나.
=스스로는 털털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니가 됐을 때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하고 험한 자세로 앉고 이러는데, 막상 해보니까 익숙지 않더라. 욕설도 입에 정말 안 붙더라. 하여간 내가 꽤나 여성적이란 사실은 이번에 알았다.
-개인적으로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 때 인상적이었다. 버릇없는 세침데기 정 간호사 역할이었는데.
=‘후져후져’, ‘아, 짱나’, 이런 대사들? 사실 당시엔 김병욱 감독님에게 아쉬운 감정을 갖고 있었다. 감독님은 실제 연기자의 모습에서 캐릭터를 따온다고 들었는데 나를 너무 모르시는 것 같았다. 왜 나만 가장 싫어하고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시킬까, 하면서 화장실에서 많이 울기도 했다. 막판에는 문을 박차고 나간 적도 있었다.
-낙하산식으로 일약 주연급에 캐스팅되는 다른 가수 출신 연기자와 달리 어렵게 지금 자리에 오른 편이다.
=아침드라마 조연부터 시작했는데 그때 연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작은 역부터 올라온 셈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똑바로 살아라> 같은 경험이 결국 나에게 더 도움이 된 것 같다.
-가수 출신 연기자들은 겸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회가 되면 가수 활동을 하고 싶나.
=전혀 아니다. 가수 활동 시절엔 즐기면서 했던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즐기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영화 안에 100살 노역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100살이 되면 뭘 하고 있을 것 같나.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 굉장히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나는 지지난해보다 지난해가 좋고, 지난해보다 올해가 좋고, 올해보다 내년이 좋을 것 같다. 오래 살수록 더 풍요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금전적인 차원이 아니라 내면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