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의 삶을 즐기고 있는 작가 알레그라(엘리자베스 리저)는 정착에 대한 기피가 극심한 수준이다.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 믿는 그녀는 여자친구 사만다(줄리언 니콜슨)를 사랑하지만 관계가 심각해질 여지가 보일 때면 황급히 그것을 차단하곤 한다. 알레그라의 방식에 진이 빠진 사만다는 “난 레즈비언이 아니야!”라는 선언과 함께 떠나고, 상심한 알레그라는 방황하던 중 철학 교수 필립(저스틴 커크)에게 끌린다. 남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찜찜함에 두통을 앓던 중 그녀는 남자친구와 권태기에 빠져 있다는 그레이스(그레첸 몰)와도 관계를 맺게 되고, 필립과 그레이스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양다리를 유지한다. 관계의 곡예가 극에 달할 즈음, 알레그라는 필립과 그레이스가 오래된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고 혼비백산한다.
<푸치니 초급과정>은 미국 TV시리즈 <FBI 실종수사대>의 각본가로 더욱 잘 알려진 마리아 매겐티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95년 레즈비언 소녀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데뷔작 <두 소녀의 놀라운 모험> 이후 10년여 만에 신작을 내놓은 매겐티 감독은 이번에도 레즈비언의 로맨스라는 틀을 취하되 바이섹슈얼 러브스토리에 가깝게 애정의 곡선을 확장했다. 등장인물들은 성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한 고뇌를 짊어지는 대신 동성애와 이성애 진영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얽히고설킨 사랑의 화살표들은 스크루볼코미디의 난장 속에서 경쾌하게 어우러진다. 총 3막으로 구성된 <푸치니 초급과정>은 제목처럼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영화에서 오페라는 배경음악 이상의 무게감을 갖지는 않는다. 그보다 영화가 빚지고 있는 것은 우디 앨런 코미디와 <섹스 & 시티>의 감수성이다. 뉴욕의 레스토랑과 서점, 극장을 무대로 속사포 같은 입담을 주고받는 지식인형 주인공들은 우디 앨런의 숱한 분신들과 겹치고, 독백형의 여주인공과 친구들이 빚어내는 앙상블은 캐리와 3명의 여성 동지들을 쏙 빼닮았다. 실수와 우연으로 점철된 해프닝을 경유해 관계 맺음에 대한 소박한 교훈을 던지는 <푸치니 초급과정>은 사실상 새롭지 않지만, 적절하게 조율된 유머감각은 관객을 영화에 붙들어놓기에 아쉬움이 없다.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것은 강박적인 독백과 쌉싸름한 냉소로 버무려진 알레그라 캐릭터다. 낯선 행인들에게 조언을 듣고 지하철 안내방송으로부터 야단을 맞는 등 순식간에 현실을 자아의 경연장으로 바꿔놓는 그녀의 머릿속은 그 자체로 만끽할 만한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