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선댄스영화제 관객상 수상한 올해의 인디영화, <원스>의 매력
2007-09-26
글 : 오정연

수많은 오해가 겹겹이 쌓이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아픔만 남겼지.
난 이해하지 못했어, 네가 왜 내 손을 잡으려 했는지.
내게 할 말이 있다면 지금 말해줘.
-<Say It to Me> 글렌 한사드 노래


한 남자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분주했던 그 골목에 어둠이 깔린 지 오래.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이들 중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정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래서 가슴이 미어지는 독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카메라가 그에게로 걸어간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선 거리가 다소 부담스러울 무렵, 카메라가 살짝 물러서면, 소녀의 등이 보인다. 카메라가 곧 그녀의 시선이었던 것. 진심이 담긴 노래를 알아본 소녀가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10센트짜리가 2유로짜리라도 되는 듯 기타 케이스에 집어넣는 소녀에게 남자는 투덜대고, 동그란 눈의 소녀는 남자가 직접 만들었다는 그 노래의 주인공을 아직도 사랑하냐고 묻는다. 계속해서 핀트가 어긋나는 둘의 대화는 직전 5분의 열창이 쌓아올린 교감을 한순간에 무너트릴 기세다. 그러나 안심하자. 투덜쟁이 거리의 악사와 무례한 참견꾼의 만남은,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올해 선댄스영화제 관객상 수상작으로 미국 전역에서 여름시장 내내 개봉하여 ‘올해의 인디영화’로 등극한 <원스>(9월20일 국내개봉)의 성공비결은 평범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솔직함에 있다.

선댄스와 미국 관객을 사로잡은 인디영화

“카니 감독은 많은 인디영화들의 짜증나는 방법을 반복했다. 주인공들을 그와 소녀라고 부르며 이름을 붙이지 않았고, 핸드헬드로 촬영했으며, 클라이맥스를 지닌 전통적인 플롯을 따르지 않았다.” <원스>에 대한 호의어린 기사의 한 부분이다. 짜증스런 혹평처럼 보이는 것은, <원스>가 지닌 매력의 상당부분이 실제 음악가인 두명의 비전문배우가 선보인 음악적 교감에 있음을 말하기 위한 기사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영화위원회로부터 지원받은 15만달러의 제작비로, 17일 동안 DV로 촬영한 아일랜드영화 <원스>는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100만달러에 폭스 서치라이트에 팔렸고, 지난 5월 미국 내 2개관에서 개봉한 뒤 서서히 개봉관을 늘려간 끝에 8월 말 현재 760만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1972년생 존 카니 감독은 브라이언 싱어, 케빈 스미스, 폴 토머스 앤더슨 등 비관적인 재기발랄함으로 무장한 선댄스 키드가 아닌, 소박하고 어눌한 유럽형 작가에 가깝다. 20대 초반부터 몇편의 단편과 한두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고, 방송사에서 TV시리즈를 연출한 바 있는 카니 감독은, 잼 세션을 이끄는 밴드 리더처럼 <원스>를 만들었다. 최적의 연주자를 맞춤한 포지션에 위치시키고, 그들이 기꺼이 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난 당신을 몰라. 그러기에 더욱더 난 당신을 원해.
이해 못할 말들이 날 바보로 만들기에 난 대꾸할 수가 없어.
서로를 속이는 의미없는 게임은 우릴 지치게 할 뿐이야.
침몰하는 이 배를 붙잡아줘, 우린 아직 늦지 않았어.
-<Falling Slowly> 글랜 한사드, 마르게타 이글로바 노래

청소기 수리가 본업인 더블린 거리의 악사가 데모 음반을 녹음하고 런던으로 떠나기까지, 어머니와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체코의 이민자 소녀가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까지, 두 주인공이 영감을 주고받는 과정을 86분의 러닝타임에 담아낸 <원스>의 마법은 음악에서 비롯된다. 만남이 두 번째에 이르고, 점심식사까지 함께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함은 여전하다. 고향인 체코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소녀가 점심시간이면 들러서 피아노를 연습하곤 한다는 악기점에 들르고, 남자가 직접 만든 노래를 둘이 함께 연주한다. 한 소절마다 코드와 가사를 알려주는 남자의 기타, 서툰 반주와 수줍은 화음으로 그를 따라가는 소녀의 피아노, 그리고 이들의 솔직한 목소리가 섞여드는 과정은 사실적이고도 섹시하다. 몇 시간의 대화로도 불가능했던, ‘존재의 교감’이라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진 느낌. 노래가 끝나고 일상이 시작되면 그것이 결국 착각으로 밝혀지더라도 교감의 훌륭함은 지속이 아닌, 경험 그 자체에 있다. <원스>에서 흘러나오는 8곡의 노래 중 예닐곱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삽입된 게 아니라 연주된다. 8번의 교감과 그로 인한 마법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매료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가씨와 건달들> 같은 위대한 뮤지컬영화는, 좋은 노래를 훌륭한 화면과 함께 감상하기 위해 틀어놓는 경우가 있다. 일종의 비주얼 앨범과 같은 느낌의 현대적인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댄서들의 군무나 천연덕스럽게 흘러나오는 밴드 연주 등 비현실적인 요소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단 한곡을 제외하면 모든 노래가 실제 등장인물이 각각의 상황 속에서 부르는 설정으로, 소박한 기타와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등장하는 이 영화는 뮤지컬이라기보다는 MTV 이후 세대를 위한 새로운 뮤직비디오-영화에 가깝다. 고전 뮤지컬의 노래의 빈구석을 채우는 것은 춤이었다. 단 한곡을 제외한 영화 속 모든 음악을 화면 내 사운드로, 실제 현장에서 녹음한 그대로의 버전으로 들려주는 <원스>에서는 전체적인 이야기와 조우하는 이미지의 몽타주가 춤을 대신한다. 단순하고 단조로운 각 시퀀스의 8번의 노래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쯤 되면 관객은 이야기의 진행을 기다리는 것인지, 더 좋은 노래를 다시 한번 듣고 싶어서 귀를 기울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음악이 이 영화의 힘

영화 속 남자와 소녀, 그리고 그들을 도와준 밴드 친구들이 1주일에 걸친 데모 음반 녹음을 마친 어느 새벽. 지쳐 널브러진 이들에게 프로듀서가 제안한다. “이제 카 테스트를 해보자고. 허접한 차 스피커로 소릴 들어봐야 제대로 녹음됐나 알 수 있지.” 프로듀서의 소형차의 트렁크에까지 몸을 구겨넣은 일행이 고생한 결과물을 들으며 더블린 근교의 바다로 향하는 장면. 존 카니 감독이 10대 후반, 록밴드 ‘더 프레임스’(The Frames)의 베이시스트로 합류했던 경험이 녹아든, 업계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대목이다. 아일랜드에선 제법 이름을 알린 ‘더 프레임스’는 남자주인공 글렌 한사드가 이끌어왔고, <원스>의 노래 중 상당수는 이미 ‘더 프레임스’에서 만들어 연주한 바 있는 것들이다. “90페이지에 달하는 시나리오를 써내려가는 일에 싫증을 느낀” 카니 감독은 대강의 줄거리를 구상한 채로 한사드에게 “이런 식의 테마가 있는 곡이면 좋겠다”고 제안하고, 이에 한사드는 새로 노래를 만들거나 예전에 만들었던 노래를 들려주곤 했다. 노래에 맞는 장면이 새로 생기기도 했고, 각각의 노래와 장면을 이야기의 골격 안에 넣어보기도 했다. 남자가 작곡한 노래에 가사를 붙이기 위해 소녀가 길거리에서 CD를 듣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처럼 “이 장면은 뭔가 뮤지컬 같은 느낌이 나야 하니까 좀 강렬하고 비트가 있었으면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거리의 악사와 이민자가 등장하는 뮤지컬이라는 아이디어는 두 남자가 3, 4일을 함께 빈둥거리면서 피아노를 뚱땅거린 끝에 소박한 시나리오로 완성됐다.

컷 사인도 슬레이트도 없이 리허설이 촬영이고 촬영이 리허설인 현장. 더블린 한복판에서 촬영을 진행하다 경찰이 이를 제지하면 자리를 옮기는, 한마디로 거리의 악사 같은 날들이었다. 크리스마스부터 신년에 걸친, 밥차도, 간식도, 커피도, 메이크업도 없는 촬영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뒤, 감독과 두 배우는 기타를 집어들고 노래를 만들고 이를 연습하곤 했다. 카니에게 있어 한사드는, 음악적 성향을 공유한 완벽한 음악감독이자 어떤 순간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 파악하고 있어 완벽에 가까운 통제가 가능한 솔직한 배우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카니에게 소녀 역할을 맡을 만한 인물로 마르게타 이글로바를 추천한 인물이 바로 한사드로, 그는 출중한 캐스팅 디렉터 역할까지 해냈다. 한사드와 이글로바는 ‘더 프레임스’의 체코 공연 당시 스탭이었던 이글로바의 아버지가 집에서 열었던 파티에서 처음 만났고, 이글로바의 피아노 연주 및 노래 실력을 알아본 한사드는 이글로바와 함께 2006년 생애 첫 솔로 앨범을 냈다. <원스>에서도 많은 노래의 작사, 작곡, 노래를 함께 한 두 사람은 가족적인 분위기의 영화 촬영 이후 실제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1970년생 글렌 한사드와 영화 촬영 당시 17살이었고 영화의 홍보 투어 기간 중에도 학교 성적을 걱정해야 했던 1988년생 마르게타 이글로바의 나이 차이가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음악의 힘은 무한함을 증명하는 계기로 남은 셈이다.

난 정말 노력했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당신을 기쁘게 해주려고.
왜냐하면 당신은 나의 전부이니까.
당신이 하라는 건 난 뭐든 할 거예요.
진정 날 원한다면 내 맘을 알아줘요.
-<If you want me> 마르게타 이글로바, 글렌 한사드 노래

한사드는 <원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 “더블린의 진짜 모습을 따뜻하게 담아낸 것”이라고 말한다. 카니의 카메라는,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소녀의 집과 더블린 근교의 풍광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감독과 배우가 실제 더블린 토박이들에, 늘 세대의 DV카메라를 동원하여 소규모로 촬영을 진행해 행인들의 눈에 띄지 않고 그들을 엑스트라로 화면에 담을 수 있었던 것도 큰 몫을 했다. 영화의 첫 장면, 돈가방을 들고 튀는 부랑자와 그를 쫓는 남자의 추격전을 찍을 때는, 카메라의 존재를 모르는 행인이 부랑자에게 달려들었을 정도다. 한밤중의 더블린 뒷골목에서 소녀가 CD를 들으며 <If you want me>를 흥얼거릴 때는 카메라를 바라보는 주민의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다. 희미한 가로등과 간간이 거리를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화면 속 조명의 전부인 탓에 이글로바의 얼굴은 자주 어둠에 잠긴다. 그러나 귀에 꽂은 이어폰 하나로도 일상적인 공간이 순식간에 영화적으로 변하는 법. 그 과정을 있는 대로 치장하지 않고 재현한 것만으로도 훌륭한 뮤직비디오가 완성될 수 있다.

더블린을 그대로 담아낸 소박한 뮤직비디오-영화

미국에서 개봉하는 지난 몇달간, 미국 전역을 버스로 이동하며 개봉관에서 관객을 만난 <원스>의 감독과 두 배우의 프로모션 방식은 조금 독특했다. 시사 뒤 관객과의 대화를 가진 다음, 두 배우가 본업으로 돌아가 영화 속 노래를 들려주는 공연을 진행했다. 뮤지션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영화의 홍보 일정으로는 다소 낯선 그 기간 동안 영화와 음악이, 존 카니 감독과 밴드 ‘더 프레임스’가, 서로를 도우면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원스>의 의미심장한 마지막도 그와 같았다. 미래를 내팽개친 순간의 충동에 굴복하지 않고, 비루한 현실에 쉽게 절망하지 않은 두 주인공이 그에 합당한 보답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담긴 따뜻한 결말은, 존 카니 감독의 연출적 재능이 엿보이는 몇 장면 중 하나다. 핸드헬드로 가득한 영화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크레인숏인 마지막 장면은 소녀의 집에서 시작하여 해질녘 더블린의 주택가의 꾸밈없는 얼굴을 비추며 끝난다.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대로 열심히 살아보는 것도 꽤나 근사한 일처럼 여겨진다. 극장 밖을 나선 우리로 하여금 질척거리는 현실을 사랑하게 만드는 뮤지컬영화가 과연 있었던가. 풋풋하고 우직한 속내를 지닌 영화 <원스>는 그걸 해낸다. 이유없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이 무렵 가을 햇살과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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