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로봇 만화로 대표되는 일본의 소년만화지만 1960년대 이후 소년만화는 인기를 바탕으로 이야기의 범위를 넓혀갔다.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한 만화뿐 아니라 액션, 게임이 등장하는 마니아적인 작품과 여성과 20대 이상 독자들에게도 수용될 수 있는 로맨틱코미디와 개그 만화까지. <바벨 2세>로 유명한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만화가 원작인 <철인 28호>, 액션과 장대한 스케일이 특징인 와다 신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스케반 형사 코드네임=아사미야 사키> <별책 소년챔프>에 연재된 지바 아키오의 동명만화를 영화로 옮긴 <캡틴>의 실사판과 애니메이션, 모지쓰키 미네타로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엉덩이 여자> 등 소년만화가 가진 모험과 도전이란 요소를 바탕으로 영화제 상영작 5편을 모아봤다.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엉덩이 여자 鮫肌男と桃尻女
원작 모치즈키 미네타로 | 감독 이시이 가즈히토 | 1999년 | 107분
국내에선 <녹차의 맛> <나이스의 숲> 등으로 유명한 이시이 가즈히토의 작품. 독특한 연출과 주인공들의 행동이 원작이 갖고 있는 꼬이고 꼬이는 상황 설정과 잘 들어맞는다. 은행 강도로 턴 돈을 갖고 도망을 간 쿠로오는 우연히 한 여자 모모지리를 만난다. 시골의 작은 호텔에서 삼촌과 함께 살고 있던 모모지리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삼촌을 피해 역시 도망을 친 것. 삼촌은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해 모모지리를 찾아나서고, 돈을 빼앗긴 야쿠자 조직은 쿠로오를 뒤쫓는다. 네 무리의 길이 서로 얽히고 엉키며, 우연에서 시작돼 난장판으로 치닫는 사건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이시이 가즈히토 감독은 원작에 새로운 인물들을 추가해 원작을 영화적으로 변형했는데 특히 독특한 의상과 세트는 원작이 가진 시공간을 좀더 팝하고 경쾌하게 변주한다. 모치즈키의 또 다른 만화 <물장구치는 금붕어>의 영화 작품으로 데뷔했던 아사노 다다노부가 쿠로오를 연기했으며, <스키야키 웨스턴장고>의 다나카 요지의 모습도 볼수 있다.
스케반형사 코드네임=아사미야 사키 スケバン刑事 コ-ドネ-ム=麻宮サキ
원작 와다 신지 | 감독 후카사쿠 겐타 | 2006년 | 99분
불량 소녀가 학교에 잠입해 불량 학생들을 처리한다. 2000만부 이상이 팔린 와다 신지의 만화 <스케반 형사>를 원작으로 하는 <스케반형사 코드네임=야마미야 사키>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TV시리즈와 영화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누렸다. 제목 중 아사미야 사키는 영화 속 주인공의 역할로 사이토 유키, 미나미노 요코 등 당시의 인기 아이돌이 대대로 맡아 연기했다. 이번 영화에선 마쓰우라 아야가 4대 아사미야 사키로 출연한다. 영화는 엄마가 FBI에 체포되며 뉴욕에서 일본으로 강제 입국된 소녀 아사미야 사키가 엄마의 석방을 조건으로 학교에 잠입해 미성년 특명수사관으로 일한다는 이야기. 스케반은 매우 불량적인 청소년 그룹의 두목을 일컫는 속어로 아사미야 사키는 학교의 왕따, 폭탄 테러, 인터넷 범죄와 얽힌 사건에 맞서 싸운다. 세일러복과 빨간 요요로 대표되는 캐릭터의 특징과 거침없이 질주하는 액션의 스피드가 여고생의 몸을 빌려 표현되는 쾌감이 인상적이다.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아들이자 <배틀로얄2 레퀴엠>의 감독 후카사쿠 겐타가 연출을 맡았다.
캡틴 キャプテン
원작 지바 아키오 | 감독 무로가 아쓰시 | 2007 | 98분
캡틴 극장판 キャプテン
원작 치바 아키오 | 감독 데자키 사토시 | 1981년 | 95분
가지와라 이키의 <거인의 별>, 아다치 미쓰루의 <터치>, 그리고 지바 아키오의 <캡틴>까지. 일본 만화에서 야구는 인기가 많은 스포츠다. 긴장과 이완이 지속되는 경기 흐름은 이야기에 탄력을 주고 고교야구의 배경에서 등장하는 청춘의 요소는 스포츠 만화에 성장 스토리를 덧붙인다. 지바 아키오의 <캡틴>은 중학교 야구를 소재로 1972년 <별책 소년점프>에 연재된 작품. 단행본 발행부수가 1900만부에 이르며, 주인공 다니구치의 고교 진학 이후를 그린 스핀오프 <플레이 볼>까지 합하면 발행부수는 3200만부가 넘는다. 야구의 명문에서 전학왔다는 이유로 야구부 주장이 된 다니구치가 연습과 훈련을 통해 진정한 주장이 된다는 이야기가 경쾌하고 씩씩한 리듬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1981년에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진 <캡틴 극장판>은 군대와 전쟁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강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장의 말에 굴복하고,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미화되며, 고민과 과정보단 승리와 결과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특히 경기 이후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을 잡는 장면은 마치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온 군인들의 얼굴을 담는 카메라처럼 느껴진다. 1980년대 2차 세계대전 패배에 대한 일본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 반면 2007년에 제작된 실사영화 <캡틴>은 주인공 다니구치의 고민에 집중한다. 학교 신문부의 여자 기자와 여선생님이 새롭게 등장하며 이들과 갖는 주인공의 관계가 새로운 이야기의 축을 만든다. 가장 큰 차이는 패배 뒤 또 한번의 경기를 통해 끝내 승리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캡틴 극장판>과 달리 실사판 <캡틴>은 그냥 패배로 결말을 맺는다는 것. 마지막 결승 경기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 모두 흥미진진하게 연출됐다.
철인 28호 鐵人28號
원작 요코야마 미쓰테루 | 감독 도가시 신 | 2005년 | 113분
소년의 일상에 나타난 로봇. <요술공주 새리> <바벨 2세> 등으로 유명한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동명만화를 영화로 옮긴 <철인 28호>는 ‘소년과 로봇’이라는 소년만화의 매우 정형화된 틀에서 시작한다. 엄마의 전근으로 학교를 옮기게 된 쇼타로는 죽은 아버지가 남긴 철인 28호를 조종하며 도쿄를 급습하는 악당 로봇 블랙 옥스에 맞선다. 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과학 발전에 주력했던 일본사회가 전쟁의 아픔을 만화의 틀을 빌려 치유하려는 시도가 다분한 작품. 반전으로 포장된 이야기의 진심이 의심스럽지만 소년의 모험과 정교하게 연출된 전투신은 오락영화로 즐기기에 충분하다. 아오이 유우와 쓰마부키 사토시, 아베 히로시, 가가와 데루유키 등이 출연하며 <오프 밸런스> <천사의 알>을 연출한 도가시 감독이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