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메가박스일본영화제 가이드] 소녀만화(少女漫畵) 원작
2007-11-13
글 : 정재혁
꿈꾸는 소녀시대 속으로

소녀만화에 깊이 빠져 살았다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고백처럼 일본의 소녀만화는 독특한 화법을 갖고 있다. 사랑의 감정을 재고, 사소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며, 15도쯤 틀어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녀들. 재기발랄하며 예쁘지만 때로는 시큼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차가움도 느껴진다. 소마이 신지 감독의 데뷔작 <꿈꾸는 열다섯>, 소녀만화의 대표적인 작가 히무로 사에코와 오시마 유미코의 만화를 각각 영화로 옮긴 <사랑에 빠진 여자들>과 <매일 매일 여름방학>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의 나나난 기리코의 또 다른 만화가 원작인 <블루> 등 소녀들의 감성이 느껴지는 상영작 4편을 모았다.

꿈꾸는 열다섯 翔んだカップル
원작 야나기사와 기미오 | 감독 소마이 신지 | 1980년 | 120분

1개월의 계약연예, 그리고 동거. <주간 소년 매거진>에 연재된 야나기사와 기미오의 동명 만화가 원작인 <꿈꾸는 열다섯>은 두 소년, 소녀가 한집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변호사를 꿈꾸며 규슈에서 도쿄로 올라온 고교생 유스케는 삼촌 집에서 살게 된다. 삼촌은 남는 방 한칸을 세놓는데 그곳에 부동산 중개인의 실수로 여학생 케이가 들어온다. 단 1개월을 조건으로 함께 살게 된 소년과 소녀. 영화는 이후 또 다른 남녀 스기무라와 나카야마를 등장시키며 네명의 10대가 겪는 감정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간다. 특히 1개월이란 조건과 엇갈리는 감정의 방향, 고백 앞에서 주저하는 남녀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소마이 신지 감독의 촬영은 영화 전체를 힘있게 끌고 간다. <숀벤 라이더> <아, 봄> 등에서 보였던 롱테이크가 데뷔작인 <꿈꾸는 열다섯>에선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하는 것도 흥미롭다.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동시에 공개돼 10대 관객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여자주인공인 케이는 당시 최고의 인기 아이돌이었던 야쿠시마루 히로코가 연기했다.

사랑에 빠진 여자들 戀する女たち
원작 히무로 사에코 | 감독 오모리 가즈키 | 1986년 | 93분

“고등학교 때 친구는 평생 친구다.” 친구의 장례를 네번이나 치러주니 <사랑의 빠진 여자들>의 그들이라면 평생 친구가 맞다. 문학적인 형식의 화법을 만화에 도입해 인기를 얻었던 히무로 사에코의 동명 만화가 원작인 <사랑에 빠진 여자들>은 남자와 헤어질 때마다 장례를 치르는 여자와 그녀의 친구들 이야기다. 온천마을에 살고 있는 여고생 다카코는 구츠카케를 바라본다. 교실 창밖 너머로 운동장을 지나가는 뒷모습을 매일같이 쳐다보지만 그에 대한 감정을 사랑이라 정의하진 않는다. 누군가를 바라보느냐, 바라봐지느냐, 누군가를 사랑하느냐, 사랑받느냐. 영화는 사랑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소녀들의 대화로 그려내며 아픔과 성장을 유머있게 담아낸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투르게네프의 소설, 영화 <나인 하프 위크> 등은 1980년대 소녀들의 텍스트를 풍부하게 하는 요소. 장례를 치러도, 실연을 해도 사랑의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네번의 장례를 지나온 소녀들의 아픔과 상처가 깊은 울림을 갖는다.

매일 매일 여름방학 每日が夏休み
원작 오시마 유미코 | 감독 가네코 슈스케 | 1994년 | 94분

여고생 린카이지는 자신의 가족을 ‘스크랩’(Scrap)이라 부른다. 이혼한 남자와 이혼한 여자가 뭉쳐 조각으로 구성된 집합. 등교를 거부하고 근처 공원에서 도시락을 까먹지만 새아버지나 가족, 학교에 대한 불만은 없다. 영화는 이후 린카이지가 새아버지 나리유키와 함께 심부름센터를 차리고 함께 일하는 기의한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린카이지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거부하고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는 나리유키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사표를 내고 이집 저집을 돌며 청소하기로 마음먹는다. 특히 영화 속 부녀는 남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데 이는 “남의 마음을 알면 힘들어지니까 10년을 모른 척해왔다”는 나리유키의 대사에서 드러나듯 일종의 모른 척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른 척이 영화를 시종일관 경쾌하게 이끌어간다. 사회질서에 대한 피곤함과 분열된 가족에 대한 회의가 유머러스하지만 힘있게 전해진다. 소녀만화의 대표적인 작가 오시마 유미코의 동명 만화가 원작으로 국내에선 <데스노트: 라스트 네임>으로 알려진 가네코 슈스케 감독이 연출했다.

블루 Blue
원작 나나난 기리코 | 감독 안도 히로시 | 2003년 | 116분

옥상에 모여 도시락을 먹는 여고생들과 수업 중 교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운동장. <호박과 마요네즈>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나나난 기리코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블루>는 여자 고등학교의 공간을 묘사하며 여고생들의 미묘한 감정 흐름을 담아낸 영화다.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여고생 기리시마 카야코는 같은 반 친구 엔도 마사미를 항상 주의깊게 바라본다. 2학년 때 낙태한 사실이 드러나 정학 처분을 받았던 마사미는 친구들과 잘 섞이지 않는 소녀. 카야코는 우연한 기회에 마사미와 친해지게 되고 그가 듣고 보던 음악과 그림을 접하면서 점점 마사미에게 빠져든다. 꿈과 목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는 카야코는 나나난 만화가 그려내는 여자들의 대표적인 모습.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과 바다를 뒤로 서로의 위치를 고민하는 두 여고생의 고민이 진부하지만 절실하게 다가온다. 특히 두 여고생이 교복을 입은 채 바닷가와 들판을 걸어가는 장면의 불안감은 아찔할 정도다. 카야코 역의 이치카와 미카코는 이 영화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여배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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