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메가박스일본영화제 가이드] 거장순례(巨匠巡禮)
2007-11-13
글 : 정재혁
아니메의 원류를 만나다

1984년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있어 무척 중요한 해다. 지금은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시끌별 녀석들2 뷰티풀 드리머>가 나와 주목받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도 같은 해 공개됐다. 이로부터 4년 뒤인 1988년엔 일본 SF애니메이션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의 <아키라>가 나왔다. 1980년대는 그야말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약동하던 때라 할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통이자 원류, 그중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거장들의 초기작을 모아 소개한다.

시끌별 녀석들2 뷰티풀 드리머 うる星やつら2 ビュ-ティフル·ドリ-マ-
원작 다카하시 루미코 | 감독 오시이 마모루 | 1984년 | 98분

축제를 하루 앞둔 학교. 도모비키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밤을 새우며 축제준비를 한다. 조용한 밖과 달리 시끌벅적한 교실 안. 하지만 이 활기는 이상한 기운을 타고 조금씩 변한다. 학교의 시계탑은 고장나고, 주인공 아타루는 데자뷰를 경험한다. 시간이 흘러도 무언가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이 학교 전체를 뒤덮는다. 아타루는 주변의 일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고, 끝내 요괴인 무자키가 여자주인공 라무의 꿈을 이용해 현실을 꿈으로 뒤바꾸려 한다는 음모를 알게 된다. 현실에서 뒤틀린 꿈의 세계와 그 안에 갇힌 아타루 일행이 끝없는 추격과 탈주를 통해 시간을 방황한다. 1978년부터 9년에 걸쳐 <주간 소년선데이>에 연재됐던 다카하시 루미코의 만화가 원작이지만 영화는 기본적인 줄거리만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준다. 특히 용궁을 찾아 떠난 거북이의 일화로 은유되는 인간과 시간의 문제는 진보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절묘하게 꼬집는다. 활기차게 시작해 진중한 울림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전체적인 만듦새도 전혀 흠잡을 데가 없다.

은하철도의 밤 銀河鐵道の夜
원작 미야자와 겐지 | 감독 스기이 기사부로 | 1985년 | 107분

배달되지 않은 우유를 가지러 집을 나선 죠반니는 하늘에 뿌려진 우유, 은하수를 만난다. 병에 걸린 어머니는 저녁을 차린 채 집에서 기다리고, 고기를 잡으러 밖으로 나간 아버지는 소리소문 없이 돌아오지 않는다. 죠반니를 따돌리던 아이들은 별 축제를 구경한다며 마을로 나갔다. 마스무라 히로시가 일본의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을 만화로 옮기고, TV시리즈 <우주소년 아톰> <터치> 등을 연출했던 스기이 기사부로가 그 만화를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이 작품은 한 소년이 은하수를 여행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우연히 타게 된 은하수의 열차에서 죠반니는 친구인 캄파넬라, 새를 잡는 사람, 맹인 무선기사 등 다양한 사람과 만나며 자신의 정체, 행복의 의미를 찾아간다. 망원경의 프레임에서 시작해 추상적인 우주로 확장되는 영화의 공간이 유려하게 이어지며, 국내에선 <메종 드 히미코>의 영화음악으로 알려진 호소노 하루오미가 음악을 맡아 죠반니의 여정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그려낸다. 원작 만화와 마찬가지로 고양이로 의인화된 주인공들이 좀더 우화적인 느낌을 살려낸다.

아키라 AKIRA
원작·감독 오토모 가쓰히로 | 1988년 | 124분

3차 세계대전이 끝난 2019년. 도쿄만 위에 건설된 신도시 네오도쿄는 늘어나는 실업자와 군정부의 횡포 정치로 하루하루가 어지럽다. 시위에 나선 사람들과 경찰이 충돌하고, 과학자와 군인은 도시의 운영을 두고 설전을 벌인다. 오토모 가쓰히로가 쓴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이 영화는 직업훈련학교에 다니는 테츠오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자신에게 숨겨진 초능력을 발견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과거 도쿄를 파괴했고, 지금은 캡슐에서 잠자고 있는 아키라가 군정부에 의해 깨어나면서 테츠오의 도시 파괴는 더욱 심해진다. 당시 일본 역대 최고의 제작비가 투입된 애니메이션으로 오토모 감독은 15만장이 넘는 셀화와 320여색이 넘는 색상을 사용하며 셀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비주얼을 완성했다. 특히 원작 만화가 가지고 있는 무정부주의와 미래 인류에 대한 불안감이 치밀한 이미지의 연결로 표현된다. 국내에선 1991년 홍콩영화 <폭풍 소년>이란 제목으로 둔갑한 채 개봉됐지만 일본영화란 사실이 알려지며 개봉 1주일 만에 막을 내렸고, 2005년 DVD로 출시됐다. 20여년이 다 된 영화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사이버펑크적인 메시지는 여전히 흥미롭다.

애니메이션 탄생 100주년 기념, 애니메이션 <도쿄 루프>

도쿄를 주제로 한 5분짜리 영상 16편

일본의 애니메이션 작가, 현대미술가, 실험영화 감독, 웹아티스트 등 16명의 예술가가 모여 만든 영화 <도쿄 루프>는 애니메이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애니메이션이다. 1906년 4월6일 미국의 제임스 스튜어트 블랙턴이 선보인 <재미있는 얼굴의 익살스런 양상>을 기준으로 2006년 애니메이션은 100주년을 맞았고, <도쿄 루프>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일본의 이미지포럼이 제작한 작품. 도쿄를 주제로 완성된 5분여의 영상 16편이 묶여 있다. 점과 선을 바탕으로 도쿄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TOKYO STRUT>나 인간을 모방하는 개의 모습을 희화적으로 묘사한 <개와 뼈>는 도쿄의 삶을 은유하며, 벌레에 대한 인간의 무심함을 가족의 일상으로 가져온 <유키짱>은 일상에 숨겨진 공포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점과 선, 흰색과 검정 등 제한된 색과 표현을 CG, 드로잉 기법 등으로 응용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2006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플레이포워드 부문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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