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메가박스일본영화제 가이드] 서민만화(庶民漫畵) 원작
2007-11-13
글 : 정재혁
우린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주인공 캐릭터보다 무대가 되는 지역이, 특정한 사건보다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더 드러나는 만화가 있다. 야마사키 주조의 <못말리는 낚시광>, 사이간 료헤이의 <가마쿠라 이야기>와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하루키 예쓰미의 <히노데 식당의 청춘> <꼬마숙녀 치에> 등 일명 서민만화라 불리는 작품들은 인물보다 마을의 분위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진행한다. 함께 살아가는 푸근함과 인정이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작품들. 일본의 전통적인 요괴 갓파와 인간의 생활을 그린 개막작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을 포함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 4편을 모았다.

못말리는 낚시광 15 하마짱에게 내일은 없다!? 釣りバカ日誌15
원작 야마사키 주조 | 감독 아사하라 유조 | 2004년 | 106분

1988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20편이 제작된 쇼치쿠의 인기 시리즈 중 17번째 작품. 1979년부터 <빅 코믹 오리지널>에 연재 중인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동북 아키타 지역을 무대로 스즈키건설의 사장 스우상과 회사원 하마짱이 벌이는 좌충우돌 소동 이야기로 인정 넘치는 아키타 지역의 정서가 따뜻하게 묻어난다. 불황의 영향으로 스즈키 건설은 대규모 인사개편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 편한 하마짱은 낚시 여행을 계획하고 사장인 스우상을 꼬여 함께 길을 떠난다. 회사에서의 서열과 달리 낚시에서만은 선배인 하마짱은 스우상, 회사의 경영 컨설턴트인 카오루, 카오루의 친구인 테츠오 등과 함께 지내며 삶의 재미를 느낀다. 야마다 요지 감독이 각본을 썼으며, 최근까지 <못말리는 낚시광> 시리즈를 연출하고 있는 아사하라 유조 감독의 첫 시리즈 연출작이다. 아사하라 감독은 영화 후반부에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을 삽입하며 쇼치쿠가 대표하는 서민드라마 시리즈로서의 본 작품의 의도를 명백히 한다.

꼬마숙녀 치에 じゃりン子チエ
원작 하루키 에쓰미 |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 | 1981년 | 110분

“일본에서 가장 불행한, 상처받기 쉬운 소녀” 치에는 집 나간 엄마를 대신해 살림을 꾸린다. 항상 혼잣말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치에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씩씩하기 그지없다.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아빠를 타이르듯 마주하고, 가게에 찾아온 야쿠자 일행은 곱창을 판 뒤 돌려보낸다. 1978년부터 19년에 걸쳐 연재된 하루키 에쓰미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이웃집 야마다군> <추억은 방울방울>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1981년 작품. 치에가 마을 사람들과 갖는 관계와 거기서 묻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할 만큼 유머있고 따뜻하다. 특히 고양이의 싸움으로 인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이야기 구조는 미비하지만 다카하다 감독의 세계를 엿볼수 있는 부분. 고양이 고테츠가 “인간을 상대하는 건 괴롭다”고 말하는 대사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배경이 된 오사카의 지역색을 살리기 위해 관서 지역의 코미디언들이 목소리 출연했고, 전 국회의원 나카야마 지나쓰가 주인공 치에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 河童のクゥと夏休み
원작 고구레 마사오 | 감독 하라 게이지 | 2007년 | 136분

지금은 사라진 존재를 통해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반성하는 작품. 고구레 마사오의 <갓파 대소동> <갓파 깜짝여행>을 원작으로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의 하라 게이지 감독이 5년에 걸쳐 완성했다. 여름방학을 앞둔 초등학생 코이치는 귀갓길에 우연히 돌 하나를 발견한다. 특이한 모양이 마음에 들어 집에 들고 왔지만 물속에 담그자 돌 안에서 이상한 생물체가 나온다. 일본 전래동화에 자주 등장해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요괴 갓파가 그 주인공. 영화는 코이치가 갓파와 함께 여름방학을 보내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그동안 저지른 과오를 되짚어본다. 특히 코이치 집에 몰려든 취재진의 갓파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반영 그대로다. “거짓말을 하는 건 인간뿐”이라는 갓파의 대사와 결국 인간의 형상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생물체들의 모습은 씁쓸하게 다가온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가 이미 수차례 해온 이야기지만 영화의 만듦새는 나쁘지 않다. 특히 정교하게 완성된 그림은 일본의 2D애니메이션이 가진 고유의 힘을 보여준다. 이번 영화제 개막작이다.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속편 ALLWAYS 続·三丁目の夕日
원작 사이간 료헤이 | 감독 야마자키 다카시 | 2007년 | 146분

흥행은 물론 2006년 일본 아카데미영화상에서 14개 부문을 수상한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의 속편. 전편과 마찬가지로 유히 3번가에 사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전편의 시점에서 4개월이 흐른 1959년 봄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을 쓰는 류노스케는 아쿠타가와상 수상을 목표로 더욱 힘을 내고, 류노스케의 곁을 떠났던 여자 히로미는 꿈을 잠시 접고 술집 무대에 선다. 이 밖에 카센타를 경영하는 스즈키 집에는 전편에 이어 또 한명의 소녀가 찾아와 신세를 진다. 영화는 전편의 이야기를 이어, 없어도 나누며 살고 슬퍼도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에피소드를 하나씩 쌓아간다. 하지만 인물들의 사연이 자연스레 어울렸던 전편과 달리 속편의 이야기는 억지로 짜여진 느낌이다. 후반부에 서둘러 정리되는 사건은 조급해 보이고, 믿음과 사랑에 매달리는 영화의 결말은 지나치게 착하다. 다만 류노스케의 소설을 영상화한 초반부 고질라의 도쿄 습격장면이나 일본교 너머로 태양이 지는 장면은 영화가 전하는 정서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전편에 출연했던 요시오카 히데타카, 쓰쓰미 신이치, 고유키, 호리키타 마키 등이 그대로 출연한다. 이번 영화제 폐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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