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1세기 쇼비즈니스의 새로운 모델 패리스 힐튼, 그녀는 누구인가? [1]
2007-11-20
글 : 박혜명

지난 여름, 미국 LA에 사는 패리스 힐튼이 면허 정지기간 중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어 23일간의 징역을 살고 나왔을 때, 그의 입·출소 표정을 비교한 게시물이 우리나라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입소 때 패리스 힐튼은 10살 먹은 어린애처럼 질질 울고 있었고 출소 때 그는 역시 10살 된 아이처럼 좋아라 웃고 있었다. 모두 파파라치에게 찍힌 이 두장의 사진은 단지 ‘패리스 힐튼은 울고 있다/웃고 있다’의 사실밖에 담고 있지 않았는데 나란히 놓았다는 것만으로 유머가 됐다. 유머의 의도는 분명해 보였다. ‘패리스 힐튼은 역시 멍청하다.’

패리스 힐튼 재수감 당시
패리스 힐튼 출소 뒤

‘멍청함’으로 유지되는 기이한 스타덤

일반적으로 공인에게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고 판단되는 이 이미지는 패리스 힐튼에게 붙으면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먼 나라 대한민국의 대중까지 알고 있는 ‘멍청한 패리스 힐튼’은 그의 스타덤을 유지시키는 핵심 이미지, 결정적인 상품가치다. 그리고 패리스 힐튼은 이 이미지를 스스로 이용한다. 어릴 때부터 자선 파티와 같은 외부 행사에 얼굴을 비치는 아역‘모델’로 활동했던 패리스 힐튼은 19살 때 에이전시와 정식 계약을 맺고 CF 및 잡지 모델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당시에도 힐튼은 이미 호텔 가문의 엄청난 유산 상속이 예정된 현대판 귀족 출신답지 않게 별별 가십들로 뉴욕 타블로이드에 오르락내리락했다. 그가 뉴욕을 넘어 전미와 세계로 뻗어나가는 가십메이커가 된 시초는 2003년 인터넷에 유포된 섹스 비디오다. 단짝 친구 니콜 리치와 함께 찍은 리얼리티쇼 <심플 라이프>의 첫 시즌 프리미어를 1주일 앞두고, 남자친구 릭 살로몬과 수위 높은 섹스 행위를 즐긴 비디오가 어디선가 거짓말처럼 튀어나와 웹상에 퍼져나간 것이다. <심플 라이프>는 예정대로 방영했고 두명의 생각없는 부자 아가씨들이 월마트니 시골 농장에 가서 ‘검소한 삶’(simple life)을 호기심과 감격으로 체험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쇼는 대히트를 쳤다. 힐튼은 토크쇼에 출연해 섹스 비디오 유출 관련 질문을 받고 “제가 철이 없었어요. 반성하고 있습니다”라며 흐느꼈는데 1년 뒤 그와 릭 살로몬이 다시 ‘의기투합한’ 에로물 <파리에서의 하룻밤>(2004)은 전미 비디오숍에서 대여순위 1위를 휩쓸었다.

패리스 힐튼은 <심플 라이프>에서 “월마트(WalMart)라는 데를 난생처음 와봤어요. 난 여태껏 여기가 벽지(wallpaper) 파는 덴 줄 알았죠. 모든 물건이 여기 다 모여 있는 줄은 몰랐어. 여러분, 여기에서는 모든 물건을 정말, 정말 싸게 구할 수 있어요!”라고 호들갑을 떨고, 그가 이사하고 떠난 집에서 그녀의 물건들이 발견됐는데 그중 남자친구가 힐튼의 가슴을 비키니 밖으로 노출시킨 사진들이 인터넷 옥션 사이트에 올라오는 일을 ‘당했다’(그녀가 일부러 남겼다는 추측이 많다). 패리스 힐튼은 금발에 어울리는 푸른 눈을 갖지 못해 1년 365일 내내 새파란 렌즈를 끼고 더 풍성한 금발을 만들기 위해 인조 머리카락을 붙이면서 미디어로부터 가슴성형의혹을 받으면 “얼굴이 아름다우면 굳이 가슴을 돋보이게 해서 시선을 끌 필요는 없죠”라며 자신은 자연미인이라고 이야기한다. 대선을 앞두고 젊은 층의 선거 참여를 유도하는 캠페인에 홍보대사로 적극 나섰던 힐튼은 그 선거에 투표자 등록도 하지 않았다. 아예 투표해본 적이 없다는 게 탄로났을 때 힐튼은 “나는 선거한다”고 말했다.

소비 욕구와 취재 열기, 광풍으로 이어져

패리스 힐튼의 유명세는 이렇게 쌓였다. 패리스 힐튼이 여기저기 흘리고 다닌 어이없는 사생활들은 처음엔 상류층의 멍청하고 도발적인 이면을 흥미진진하게 엿보게 하는 재미를 주었다가 점차 그것 자체에 중독되는 현상을 만들었다. 뉴스를 위한 뉴스, 가십을 위한 가십. 힐튼은 그것을 만들었고, 미디어는 유포했고 대중은 소비했다. 이제 힐튼에 관한 건 뭐든 뉴스가 됐고 핫뉴스가 됐다. 올 여름 면허정지 중 음주운전으로 인한 복역이 끝났을 때 그에게는 예상한 바대로 수많은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관심의 요지는 과연 그가 <ABC>의 간판 여성앵커 바버라 월터스와 한 전화 인터뷰대로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났을 것이냐’였다. 힐튼은 수감 첫 주말에 월터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앞으로 멍청한 행동(dumb act)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 게 더이상은 귀엽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했고, 이것은 또 뉴스가 되어 “패리스는 너무 사랑스럽다”, “패리스, 웃기지 마라. 네가 한 행동들이 뭔지 이제까지 알고는 있었던 거냐”, “대체 왜 호텔 이름하고 똑같은 여자한테 신경을 쓰는 거냐?” 등등 무수한 네티즌의 온라인 공방을 낳았다.

출소 뒤 의 <래리 킹 라이브 쇼>에 출연한 패리스 힐튼
교도소 수감 이틀 전 MTV시상식에 참석한 패리스 힐튼

공인을 싫어하고 조롱하면서도 사생활을 엿보게 되는 욕망의 카타르시스는 대중의 스타 소비욕을 지속시키는 주된 이유다. 이런 열렬한 소비욕구에 부응해 스타 힐튼은 출소 이튿날인 6월28일 <CNN>의 <래리 킹 라이브 쇼>라는 미디어와 만났다. 촌철살인 토크쇼 진행자와 이뤄진 1시간짜리 대화에서 패리스 힐튼은 “감옥에서 성경을 많이 읽었냐”는 래리 킹의 질문에 “날마다 읽었다. 그것 말고도 감옥에서 많은 책을 읽었다.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답했고, 화제가 전환되었다가 다시 래리 킹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당혹감이 들었는지 눈을 내리깔더니 감옥에서 쓴 거라며 들고 나온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좋아하는 구절은… 없다”고 답했다. 래리 킹은 패리스 힐튼이 옆에 앉아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멍청한 행동이 더이상 귀엽지 않다고 얘기했습니다. 근데 애초부터 그게 뭐가 귀여웠죠?”라고 객석을 향해 물었다. 이 쇼가 나간 뒤 <뉴욕타임스>는 “래리 킹과 1시간이나 대화를 하면서 힐튼은 모두가 예상한 대로 터무니없고 잘난 척 일색에다 뻔한 답만 했다”며 “그녀가 위트나 통찰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긴 인터뷰엔 정말 재주가 없다”고 신랄하게 썼다. 출소 뒤 하나도 달라진 건 없었다. 패리스 힐튼의 멍청한 행동뿐 아니라 그것을 조롱하는 미디어도,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도. “우리는 그녀를 부러워하는 것이다”(<내셔널 리뷰>), “개인의 사생활이 대중에게 소비되는 문화가 생기는 게 불편하다. 왜 그렇게 남의 사생활이 필요한 건가?”(<타임스>) 등등 패리스 힐튼 취재·소비열기를 향한 각국 미디어의 비평들 가운데 회의 섞인 자문도 다시 불거졌다. 우리는 대체 왜 패리스 힐튼에게 관심을 가지는가.

미디어가 창조한 스타 가십 파워

패리스 힐튼의 스타 가십 파워는 한때 그녀와 파티 동무였던 이혼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그것이나 알코올중독으로 커리어에 굴절을 맞은 린제의 로한의 그것과 다르다. 스타의 가십이란 점에서는 같지만, 결정적으로 패리스 힐튼의 스타성엔 ‘배우 린제이 로한’과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같은 본체가 없다. 커신바움 본드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라는 마케팅 회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뉴욕의 한 일간지의 표현처럼 “패리스 힐튼에게 최악의 보도란 그녀를 보도하지 않는 것”뿐이다. 패리스 힐튼은 앨범 발매, 향수 발매, 보석 브랜드 런칭과 같은 각종 사업 뉴스를 포함해 섹스 비디오, 가슴노출사진, 남자친구에게 맞아 퍼렇게 멍든 얼굴, 거짓말, 도로교통법 위반, 징역 선고 등 나쁜 뉴스로도 잃을 게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런 뉴스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다. 대중과 미디어는 왜 패리스 힐튼에게 관심을 갖는가. 그녀가 관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패리스 힐튼은 미디어의 창조물이다. 2007년 기네스북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스타라고 말했고, ‘패리스 힐튼은 미디어가 만든 스타’라고 못 박은 <AP연합>이 일주일간 그녀에 대해 일체 보도하지 않는 ‘실험’을 하기까지 했다.

세계적으로 유력한 미국의 인터넷 음악평론미디어 <올뮤직가이드>(All Music Guide)의 필자 스티븐 토머스 얼윈은 패리스 힐튼의 데뷔앨범 <Paris>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그녀는 영화에서 패션까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모든 분야에 팔을 뻗치고 있는데 이 모든 프로젝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언제나 그것은 패리스 힐튼을 내세운다는 것”이라고 했다. 공포물 <하우스 오브 왁스>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는 여조연이 남기는 건 패리스 힐튼이지 그 캐릭터의 이름이 아니다. 패리스 힐튼은 데뷔앨범뿐 아니라 향수 사업도 본인의 이름을 딴 상품으로 시작했고, 힐튼의 첫 향수 ‘Paris’를 출시한 향수 회사는 이 제품 하나로 전년 대비 47%의 판매고 증진 효과를 봤다. 패리스 힐튼이란 브랜드의 파워를 가장 잘 아는 건 패리스 힐튼 자신이다. 패리스 힐튼은 2006년 말 한 나이트 클럽의 연말 파티에 얼굴을 내미는 조건으로 10만달러를, 올해에는 동생 니키와 함께 등장하는 조건으로 50만달러를 요구했다. 실체가 있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출연료도 25만달러다. 올 한해 패리스 힐튼은 대체 뭘 했기에 몸값이 저렇게 오른 걸까? <래리 킹 라이브 쇼>에서 일부 낭독되었던 패리스 힐튼의 옥중 일기는 18억원의 이익을 남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패리스 힐튼이 표지를 장식한 잡지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