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중국 대작영화의 욕망] 개봉을 앞둔 중국 대작영화 프리뷰
2008-04-08
글 : 김도훈

<적벽>

오우삼이 재현하는 적벽대전의 위용

감독 오우삼 출연 양조위, 장첸, 금성무, 조미, 장풍의, 나카무라 시도 수입·배급 쇼박스 개봉예정 1편(7월), 2편(12월)

적벽대전(赤壁大戰). <삼국지>를 좋아하거나 고대 서사극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불타오르리라. 적벽대전은 후한말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양쯔강의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친 전설적인 전투다. 당시 위세를 떨치던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촉나라의 유비는 위나라 손권과 동맹을 맺고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조조군은 모두 20만명. 이에 맞서는 위와 촉의 군사는 겨우 5만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제갈량과 황개가 펼친 화공전(火攻戰)에 밀리고 전염병과 피로에 지친 조조군은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이게 사실이냐고? 아마도 아닐 것이다.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은 사실 나관중의 거대한 허풍으로 만들어진 허구 아니던가.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적벽대전이라는 거대한 전투는 모든 중국 감독들이 가슴에 품고 있으나 아무나 손댈 수 없는 로망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지친 오우삼이 귀환의 북소리를 울리기 위해 선택할 만한 로망.

그러나 대전에는 그만한 피가 따르는 법이다. 제작비가 중국 역사상 최고 기록이던 <황후花>의 450억원을 뛰어넘는 750억원 수준에다 현장 엑스트라만 2천명이 넘는 대작이니 제작과정이 부드러웠을 리는 없다. 특히 잘 알려진 문제는 캐스팅이다. 주유 역을 맡은 주윤발은 “수정된 시나리오를 일주일 전에 받아서 준비하는 게 힘들다”며 하차했고, 제갈량 역을 맡은 양조위 역시 베이징어 준비기간이 짧다고 거절했다. 조조 역에 낙점된 와타나베 겐은 “일본인이 중국 영웅을 연기해서는 안 된다”는 중국인들의 민족주의적 항의에 밀려 하차했다. 고작 몇주 만에 진행된 재난이었다. 그러나 양조위가 주유 역으로 프로젝트에 귀환하고 제갈량과 조조 역을 금성무와 장풍의가 채우면서 <적벽>은 제자리를 찾았다. “<적벽>은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가장 오랫동안 준비한, 그리고 내 생애 가장 고된 작업이다”는 오우삼의 고통어린 토로는 적벽대전을 준비하던 조조의 속내처럼 들릴 지경이다.

<적벽>의 제작진은 지난 몇년간 줄기차게 제작되어온 중국 대작 무협영화들과 웬만하면 좀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눈치다. 사실 장이모의 <연인>과 <황후花>, 황금 첸카이거의 <무극>, 펑샤오강의 <야연>으로 이어지는 중국 다피엔다피엔(大片/대작) 영화들은 장사꾼적 예술품으로서 자기 복제의 정점에 도달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적벽>이 무협판타지가 아니라 좀더 사실적인 역사극이라는 걸 누누이 강조한다. 특히 오우삼은 “<삼국지>보다는 <삼국사기>를 주로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극적으로 왜곡된 캐릭터와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좀더 적확하게 고증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우삼은 최근 다피엔 영화들이 보여준 덜컹거리는 CG는 절대로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물론 그 같은 호언장담은 <매트릭스>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 특수효과 슈퍼바이저로 일한 크레이그 헤이즈의 마술 같은 손길을 믿는 덕이다. <적벽>은 아시아 최대의 블록버스터답게 총러닝타임도 4시간여에 이른다. 다만 중간 휴식시간은 충분하니 화장실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염두에 두자. 올림픽 전에 개봉하라는 중국 정부의 부탁으로 오우삼은 영화를 둘로 쪼개어 올 여름과 겨울에 각각 개봉할 예정이다.

UP 역사상 최대의 전투를 그린 아시아 역사상 최대 규모 블록버스터다. 규모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DOWN 오우삼이 거대한 서사극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던가?

<연의 황후>

정소동의 우아한 춘추전국시대

감독 정소동 출연 진혜림, 여명, 견자단 수입 K&엔터테인먼트 배급 CJ엔터테인먼트 개봉 4월9일

춘추전국시대의 피비린내 나는 전장터. 연나라 황제가 야욕으로 가득한 조카 우바에게 암살당하자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던 대장군 설호(견자단)는 황녀 연비아(진혜림)를 왕으로 추대한다. 그러나 황제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우바에 의해 숲속에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연비야는 의원 난천(여명)에게 구조되고, 정쟁과는 상관없는 무릉도원에서 둘은 사랑에 빠진다. 몸을 회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연비아는 우바를 몰아내고 평화로운 국가를 선포한 뒤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난천과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우바가 역모를 일으키자 연비아는 설호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다시 연나라로 돌아간다.

정소동의 신작 <연의 황후>가 쇼브러더스 시절 이한상 감독의 <강산미인>(江山美人)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14인의 여걸>의 정강 감독이 아버지인 정소동에게 쇼브러더스는 핏속에 흐르는 전통이며 그의 출세작 <천녀유혼> 역시 쇼브러더스 걸작의 새로운 환기였다. 그러니 정소동이 <연의 황후>를 통해 또다시 연출 의자에 앉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90년대 새로운 홍콩 무협영화의 전성기를 창조했던 그로서는 대중화권 다피엔 영화 전성시대가 제 몫을 찾을 호기이기 때문이다. 그간 장이모의 다피엔 영화들(<영웅> <연인> <황후花>)에서 무술감독을 맡으며 호기를 노리던 그는 <연의 황후>에서 자신이 잘해내는 모든 것을 총체화한다. 호금전의 <협녀>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액션. 거대한 중국 대륙을 무대로 한 전쟁과 권력암투. 그리고 할리우드영화를 연상시키는 찬란한 로맨스. 전자에 있어서라면 정소동은 분명히 이름값을 한다. 오랜 동업자 견자단과 함께 창조한 개별적 무술액션은 딱 정소동의 이름이 떠오를 만큼 시적으로 우아하다. 특히 견자단과 여명의 결투를 먼발치에서 잡는 정중한 대결장면은 고전적인 무협영화의 아름다움을 연상시킨다.

조금 덜컹거리는 건 후자다. 진혜림과 여명이 극락도원에서 나누는 로맨스 부분은 지나치게 급작스러운데다가 도에 넘게 달콤할 때도 종종 있다(달짝지근한 할리우드식 스코어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둘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창조한 듯한 숲속의 보금자리에서 사랑을 나누고 거대한 기구를 타고 하늘을 올라 숲을 내려다본다. 신화적 사랑을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식으로 해석해낸 <무극>의 난국에 비길 정도는 아니겠지만 장이모가 <연인>이나 <황후花>를 통해 능구렁이처럼 빚어낸 남녀상열지사에 비하면 조금 순박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150억원이라는 자본과 일급의 대륙 스탭들을 투여한 <연의 황후>의 기술적인 완성도는 섬세하고 완벽하다. <황후花>로 오스카 의상상 후보에 올랐던 해중문의 의상은 극적인 과장과 신화적인 아름다움을 하나로 엮어 조각처럼 빚어낸 듯하고 <연인>으로 오스카 촬영상 후보에 올랐던 자오샤오딩의 카메라 움직임은 명장의 솜씨다. 이 모든 기술적 부드러움은 곱지 않은 이야기의 결을 감추고 <연의 황후>의 판타지적 쾌락을 위해 곱게 봉사한다.

UP 액션장면에 있어서라면 정소동은 결코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DOWN 그러나 로맨스에 있어서라면 정소동은 그리 부드러운 연출가가 아니다.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성룡과 이연결의 조우

감독 롭 민코프 출연 성룡, 이연걸, 마이클 안가라노 수입 마스엔터테인먼트 배급 시네마서비스 개봉 4월24일

차이나타운의 전당포로 들어설 땐 조심하는 게 좋다. 조 단테의 <그렘린>이 가장 좋은 경고다.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의 주인공인 17살 무술영화광 제이슨은 그걸 몰랐던 모양이다. 차이나타운 전당포에서 골동품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손오공의 물건인 여의봉을 만지자마자 고대 중국의 금지된 왕국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취권의 달인 루얀(성룡)과 지나치게 진지한 무술가 란(이연걸)을 스승으로 모시고 봉인된 원숭이왕을 깨우기 위한 모험길에 나선다.

<포비든 킹덤…>은 <서유기>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지만 그다지 원전과 가까워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우리가 <포비든 킹덤…>을 기다리는 이유, 그리고 웨인스타인 컴퍼니와 라이온스 게이트가 7천만달러를 들고 뛰어든 이유는 오직 하나다. 우리 시대 최강의 무술꾼인 성룡과 이연걸의 호흡(및 대결)을 보는 것. “같이 영화 한번 해보자는 말을 지난 15년간 줄기차게 해왔던” 두 사람에게도 <포비든 킹덤…>은 꿈의 프로젝트다. 성룡은 “이연걸에게 자신의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전통적으로 직접 해오던 액션 감독직도 마다”하며 뛰어들었고, 이연걸은 “이 작품은 신성한 경험”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촬영감독 포덕희(<와호장룡>)에 따르면 양보와 견제를 거친 두 거성은 무술 스타일이 대단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절정의 호흡을 보여줬다고 한다. “알다시피 성룡은 주먹에 강하고 이연걸은 발에 강하다. 둘의 액션은 매우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매우 빠르다는 거다.”

엄밀하게 따지자면야 <포비든 킹덤…>은 다피엔 영화는 아니다. 중국의 가장 거대한 스타들이 출연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스탭과 자본은 할리우드산이다. 하지만 이연걸과 성룡은 <포비든 킹덤…> 역시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중화영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영화는 <서유기>가 아니라 <동유기>다. 중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동방으로 향한 미국 제작자와 감독과 배우들의 여정.” 이연걸, 성룡이라는 두 무술영화계의 거성이 할리우드의 화력과 만난 결과가 어떻게 피어올랐는지는 오는 4월24일 국내개봉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UP 성룡과 이연걸이 대결을 벌인다. 두 이연걸(<더 원>)이나 두 성룡(<미스터 나이스 가이>)보다야 훨씬 매력적이 아닌가.
DOWN 감독은 <라이온 킹>과 <스튜어트 리틀>의 롭 민코프 감독. 결과물이 디즈니풍 가족영화라면 좀 난감한 일.

그외 제작 중인 중국 블록버스터들

첸카이거의 <매란방>, 두기봉의 <귀취등>, 루추안의 <난징! 난징!>

<패왕별희>를 유심히 본 경극팬이라면 극중 장국영의 모습이 누구를 닮았는지 금세 눈치챘을 것이다. 찰리 채플린 같은 서구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경극을 전세계에 알린 경극계의 전설 매란방(1894∼1961)이다. 첸카이거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전기영화 <매란방>은 이미 완성되어 현재 후반작업을 진행 중이며 오는 8월 올림픽에 맞춰서 중국 개봉할 예정이다. 주인공 매란방은 여명이 연기하고 장쯔이와 안도 마사노부 등 국제적인 아시아 스타들이 조연으로 출연한다. 두기봉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중화판 <인디아나 존스>다. 액션영화의 거성 자리에 올라선 그는 지난 2006년부터 중국 인터넷과 출판계를 휩쓸어온 베스트셀러 <귀취등>(鬼吹燈)을 영화화한다. 소설 <귀취등>은 중국 인터넷 소설 사이트에서 연재가 시작되자마자 1천만명 이상의 네티즌을 열광시킨 뒤 만화와 게임으로도 만들어진 작품. 풍수지리 관련 책을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굴꾼 호팔일이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숨겨진 보물을 찾는다는 내용의 이 방대한 모험소설은 모두 3부작으로 영화화될 예정이며 두기봉은 그중 한편을 직접 연출할 계획이다. 한편 <커커시리>로 단연 6세대 감독군의 상업적 희망으로 떠오른 루추안은 난징학살사건을 다룬 전쟁영화 <난징! 난징!>을 영화화하는 중이다. 1937년 당시 30만명 이상의 중국인이 일본군에 학살당한 ‘난징대학살’을 정면으로 다루는 이 작품에는 총제작비 2500만달러가 투여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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