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중국 대작영화의 욕망] <삼국지: 용의 부활>의 유덕화 인터뷰
2008-04-08
글 : 주성철
사진 : 이혜정

<삼국지: 용의 부활>은 원작의 수많은 영웅호걸들 중 조자룡에게 집중한 영화지만, 묘하게도 유덕화 개인의 자전적 흥망성쇠와도 겹치는 느낌을 줘 흥미롭다. 마치 그가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 같은 인생무상의 드라마인 것이다. 하지만 40대 중반을 넘긴 그는 여전히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멜로와 액션/누아르 장르 모두를 오가며 홍콩 영화계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변함없는 전성기라 할 정도로 그 스펙트럼은 정말 넓다. <연인>(2004), <묵공>(2006), <명장>(2007) 같은 화려한 무협 대작들도 있지만 <동몽기연>(2005) 같은 소프트한 멜로드라마도 있고, 이동승 감독의 <문도>(2007) 같은 영화에서는 어느덧 삼합회의 나이 든 보스가 된 그의 가슴 절절한 연기를 볼 수도 있다. ‘<무간도>의 유덕화’라는 수식어도 이제는 한참 옛날 얘기가 됐다.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이름이다.

-역시 이번 영화에서도 당신은 죽는다. 홍콩 영화계에서 죽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배우다.
=지금껏 1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중 반 이상에서 죽었던 것 같다. (웃음) 이전에 이인항 감독과 함께했던 <파이터 블루>(2000)에서도 죽었으니까, 이 감독 역시도 나를 죽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당신은 장철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한 적 있다. 그 역시 남자들의 비장한 죽음을 즐겨 묘사했던 감독이다.
=장철 감독의 <상하이13인>(1984)이 나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영화였다. 당시에는 그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언제나 남자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그렸고, 마지막에 이르러 비장하게 죽는 남자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여년간 거의 모든 홍콩 누아르 영화들이 그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죽음의 이미지에서 그의 영화를 떠올려준다면 정말 감사하다. 홍콩에서 내 또래 배우들 중 그와 작업해본 사람은 내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큰 자부심 중 하나다.

-<복성> 시리즈 등 당신은 과거 홍금보, 성룡, 원표가 주축이 된 ‘가화삼보’ 영화들에도 꽤 출연했다. 홍금보와 남다른 인연이 있을 것 같다.
=홍금보는 내 인생의 스승이나 다름없다. 1980년대 초반 방송사를 떠나 영화배우로서 확고한 입지를 굳히고 싶었지만 사실 미래는 불투명했다. 그때까지 액션은 해본 적도 없었는데 그가 나를 눈여겨보고는 무조건 내가 액션을 해야 한다고 우겼다. 그래서 그의 영화사에 들어가 하나씩 차근차근 배우면서 <하일복성>(1985), <최가복성>(1986) 같은 영화들에 출연하며 내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온 거나 마찬가지인데 <삼국지: 용의 부활> 역시 힘들었다. 지난 몇년간 내가 와이어를 사용하지 않은 유일한 영화다.

-<명장>도 좋았지만 최근작 중에서는 백발로 출연한 <문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무협블록버스터 외에 그런 작품들이 국내에 수입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
=<문도>를 얘기해줘서 고맙다. 개인적으로도 지난 몇년간 출연한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난 예나 지금이나 1년에 서너편씩 다양한 영화들에 출연하고 있는데 대작들만 기억해주는 게 아쉽다. 난 지금도 배우는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다작을 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몽기연>에서는 90대 분장까지 해봤는데 난 여전히 조연이라도 안 해본 역할들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20대부터 60대까지 연기한 유국창 감독의 <뇌락전>(1991) 2부작이 내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뇌락전>으로 난생처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봤다. 돌이켜보면 배우로서 쓸모없는 기다림은 아니었던 셈이다.

-조자룡 외에도 혹시 한번 연기해보고 싶은 실존 인물이나 유명 원작의 캐릭터가 있나.
=장쉐량이다. 중국 역사에서 보면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의 교량 역할을 했던 사람인데, 본인은 공산당에 가까웠지만 장제스와 친분이 있어 그를 대만으로 호송해주는 일을 했었다. 하지만 대만에 도착해서는 체포됐고 90년대까지 감옥에서 보냈다. 그러다 그가 풀려났을 때 전세계의 매체가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건의 내막은 뭔지 묻기 위해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홀연히 하와이로 갔고 의리 때문이었는지 자신과 친구 장제스 사이의 일을 평생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게다가 부인이 여러 명이었는데 대만에 함께 간 부인이 병에 걸리자, 중국 본토에 남아 있던 옛 부인이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겠다며 내보내달라고 한 일도 있었다. 근대 중국의 가장 어린 장군이자, 멋있고 호방한 남자였다. 실제로 <취권2>(1994)의 기차장면에서 내가 우정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내 신분증을 보면 장쉐량이라고 돼 있다. (웃음)

-현재 주목하고 있는 홍콩 영화계의 신예 감독들이 있다면 누군가.
=단연 엽위신 감독이다. 스타일이나 감각, 이야기의 구성 등 모든 면이 뛰어나며 가장 주목하고 있는 감독이다. <살파랑>(2005)에서는 홍금보와도 함께 작업했는데 홍금보가 칭찬을 많이 했다. 최근 홍콩이라는 공간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젊은 감독이 드물다는 게 가장 안타까운 점 중 하나였는데, 그의 영화에는 홍콩의 이미지가 물씬 묻어난다. 현재 그와 시나리오 한편을 논의 중인데 내가 마술사로 나오는 영화다. 지난해 <근종>으로 데뷔한 유내해 감독도 주목하고 있다. 지금 홍콩에 무협블록버스터들만 있는 건 아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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