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식코> 논쟁 ② 늑대가 무서워 호랑이를 불러들일텐가
2008-04-24
의료는 블루오션이 아니라 인권이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를 소재로 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가 지난 4월3일 전국에서 동시 개봉했다. 이미 <화씨 9/11>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무어 감독은 심각한 사회적 이슈를 그만의 독특한 풍자와 직설화법을 이용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풀어냄으로써 영화의 사회적 역할과 다큐멘터리의 상업적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그의 독설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로부터 비판의 근거가 불명확하거나 상황설정이 작위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개봉된 지 1주일이 됐지만 국내에서 <식코>의 흥행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영화의 상업적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영화를 본 관객의 반응은 뜨겁다. 바로 영화의 소재가 된 미국의 의료현실이 관객 자신의 의료경험과 맞물리면서 <식코>가 단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현실적 위기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감이 의료정책을 입안하는 정치가들이나 보험회사와 제약회사로 상징되는 자본에 대한 비판에서 비켜나 의료행위의 실질적 주체인 의사들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짐은 안타까운 일이다. 의사들이 개과천선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의사들로서는 단지 병원자본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 처지이거나, 개원을 했다 하더라도 더이상 고수익을 보장받던 과거의 기득권층이 아님을 강변하고 싶겠지만, 환자들에게 의사란 아플 때 만날 수 있는 의료의 실체인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 의사들이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나 병원 영리법인 허용으로 대표되는 의료산업화론을 지지한다. 심지어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와 함께 미약하나마 의료의 공공성을 유지시켜온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찬성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왕 서방의 이윤만 보장해줄 정책들에 대해 스스로 재주넘는 곰이 되기를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현실에 대한 불만족과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경제가 어려우니 환자는 줄고, 수가인상률은 물가인상률에도 못 미치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는 갈수록 서슬이 퍼렇다. 애써 처방한 약을 삭감당하면서 부당청구라는 오명까지 쓰다보면 어찌됐건 현실을 바꿔보고 싶어진다. 그것이 무엇이건 지금보다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지수가 틀렸다. 늑대가 무서워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인 것이다.

나라마다 차이를 보이는 의료제도는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그 사회의 인식을 반영한다. 같은 자본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의료를 인간이 건강하게 살 권리의 기본조건으로 인식하는 사회와 이윤창출의 블루오션으로 인식하는 사회가 같은 사회일 수는 없다.

의료는 공공재이다. 의학지식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 쌓여온 인류의 공공자산이며, 그 안에는 교과서에 실린 천재들의 땀만이 아니라, 부족한 의학기술의 오류를 온몸으로 밝혀내며 죽어간 환자들의 피 또한 녹아 있다. 따라서 의료는 이윤추구를 위한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인류의 공공자산을 이용한 후속연구의 성과물을 지적재산권 운운하며 독점할 수는 없다. 제약회사로서는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누가 자본을 투자하여 신약을 개발하겠느냐고 항변하겠지만, 자본은 단지 이윤만 좇을 뿐 연구는 자본이 하는 것이 아니며 이윤은 연구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필요한 영역에서는 제약자본의 역할을 국가가 대신함이 마땅하다. 국가에서 투자하고 연구자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공기업이 생산한다면 의약품의 공공성이 확보되지 않겠는가.

같은 이유로 의료 인력의 사회적 육성도 필요하다. 교육의 공공성을 위해 교대나 사대를 지원하고 육성하듯이, 의대생도 국비로 공부시켜 의료의 공공성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흘러가고 있으니, 의학전문대학원의 등장이 그것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억대의 투자가 필요한 사회에서 의료의 공공성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어 감독은 인터뷰에서 좋은 영화, 볼 가치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런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되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송관욱/ 대전충남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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