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강우석] “이걸로 안 되면 나는 끝이다”
2008-06-17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강철중: 공공의 적 1-1>의 감독 강우석 인터뷰

-결과물에 만족하나.
=스탭들과의 기술시사를 5월30일에 했고, 6월1일에는 점검 차원에서 혼자 영화를 봤는데 관객과의 정면승부에서 질 것 같지는 않더라. 코미디를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놓았는데 내가 의도했던 데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썰렁한 반응이 나오면 나는 죽는 건데 말이다. 혼자 마지막으로 점검하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사실상 <공공의 적>의 2편인 셈인데 어떤 점에 염두를 뒀나.
=<공공의 적>은 내가 만들었지만 이성재가 연기했던 악당 캐릭터가 좀 불편했다.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는 좋은데 그에 비해 적은 너무 단순했다. <공공의 적2>의 정준호도 가진 자라 자신이 나쁜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악당이었다. 반면 <투캅스> 1편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웃음이 있었다. 웃지만 그냥 막 웃어넘기는 그런 영화는 또 아니었다. 그래서 <공공의 적>의 캐릭터가 좋으니까 그 캐릭터에 <투캅스> 스타일을 얹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중요한 것은 강철중의 적이다. 진짜 나쁜 놈이지만 멋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측면을 부여했다. 결국 정재영이 연기한 이원술이 승부처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조연급 캐릭터들을 다 마무리지어주자는 생각이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걔는 어디 갔어?’라는 말이 나올 사람이 하나도 없게. 조연이 빛나는 영화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원술이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굉장히 비열한 인간이었는데 영화가 전개되면서 입체적인 매력을 풍긴다.
=만약 처음에는 별것 아닌 듯 보였던 사람이 나중에 가서 진짜 나쁜 놈이라고 하면 관객이 이 영화를 놓아버릴 것 같았다. 그런 캐릭터는 정말 많이 보지 않았나. 처음에 진짜 나쁜 놈인 것을 보여준 뒤 점차 가정에서의 모습이나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면 좀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장진과 이야기한 것도 적을 멋있는 놈으로 만들자, 입체적으로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어, 이새끼 진짜 나쁜 놈이었네, 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시나리오에는 “깡패영화 만든 감독 새끼들부터 다 잡아들여야 돼”라는 대사가 있을 정도인데, 혹시 스스로 깡패를 미화한 것은 아닌가.
=그게 무슨 미화냐. 그러지 마라. 정말 나쁜 놈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게 했다고 본다.

-그런 이원술 캐릭터에 비하면 이번에는 강철중 캐릭터가 덜 입체적인 느낌이 들었다.
=재영이 장면은 기가 다 세다. 반면에 경구는 수사를 진행해나가면서 서서히 분위기를 몰아간다. 그런데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는 1편의 영향으로 각인이 돼서 그런지 크게 다르지 않게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다이하드2>를 보면서 ‘브루스 윌리스 정말 잘한다’ 이런 얘기 안 하잖나. <투캅스2>를 보고 박중훈보다 김보성이 잘했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중훈이는 1편에서 워낙 웃겼기 때문에 2편에서 아무리 웃겨도 그런 반응이 나온 것 같다. 그런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

-반면 강철중은 조금 순해진 것 같다.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던 것은 정의감이나 사명감과 아무 관련없을 뿐더러 오히려 나쁜 놈인데 놀라운 의지나 근력으로 모든 상황을 때우는 면이었다. 심지어 이 영화의 제목이 <강철중>인데 그의 매력은 좀 줄어든 것 같다.
=그런 나쁜 놈의 느낌을 부여하는 것을 고민하긴 했다. 그런데 전편에서 좋았던 점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은 답습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정재영쪽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둘이 붙게 되는 것만 정확하게 그려내면 된다고 봤다. 그러니까 강철중은 그 시간 동안 사회적으로 성장한, 그래서 좀 어른이 돼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 나이에도 좌충우돌하는 인간은 아닌 것 같다.

-딸아이가 꽤 비중있게 나오는 것도 그런 성숙한 면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가.
=그렇다. 가족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공의 적>에서는 오로지 자기 혼자의 삶을 꾸리는 것을 보여줬는데, 여기서는 아이도 막 크고 있고, 이사도 가야 하고 그렇다. 한국영화를 보면 가족에 대한 묘사가 적은 것 같다. 많은 영화가 건조하고, 웃음도 너무 억지로 내려고 한다. 이번에는 좀 사람 사는 이야기도 하고 훈훈한 느낌도 담고 싶었다.

-코미디 또한 중요한 승부처였을 것 같다.
=그렇다. 과거에 내가 했던 코미디는 상황이 주는 재미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는데, 내가 과연 이것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이걸로 안 되면 나는 끝이다. <공공의 적2>나 <한반도>에서는 소리 지른다고 욕 먹다가 이것을 손댔는데 ‘코미디도 맛이 갔어’ 이런 얘기를 들으면 뭘 만들어. (웃음)

-코미디가 좀 뜻밖의 순간에서 튀어나온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를테면 이원술이 태산 보스와 멋있게 맞장을 뜬 다음에 겁먹은 듯 차에 올라타는 장면이라든가.
=아주 급박하거나 심각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그것과 기묘하게 맞물리는 코미디를 구사하려 했다. <공공의 적>에서는 강철중이 이문식이나 유해진 같은 범인들을 상대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냈는데, 이번에는 적인 이원술과 상대하면서 코미디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1편에서 그런 코미디를 집어넣은 것은 적인 이성재가 존속살해범에다 엽기적인 범죄를 계속 저지르다보니 끝까지 이 분위기로 가다보면 관객이 지쳐버릴 것 같아서 웃음을 계속 집어넣었던 것이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늘 머릿속에 들어 있던 것은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이 봤을 때 ‘저새끼 아직 머리는 안 식었구나. 끊임없이 영화공부하고 있구나’ 이 소리는 듣고 싶었다.

-강철중과 이원술의 맞대결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강우석 대 장진의 대결 같은 느낌도 받았다.
=우리 조감독이 장진 조감독 출신이다. 8년간 장진 아래 있었는데 그놈이 그러는 거다. 장 감독님과 강 감독님이 합치니까 이런 장면들이 나와서 놀랐다고. 사실 진이와 나는 감정적으로 무지하게 싸웠다. 진이가 써놓은 시나리오를 놓고 내가 무지하게 들이댔다고. 진이 시나리오는 비틀 때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을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만들어버린다고. 그런데 나는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싸움에서 포기할 수 없었다. 촬영 중간에 1시간10분짜리 편집본을 보여줬더니 진이는 ‘알아서 하세요. 몰라요’ 이러더라. (웃음) 그러면서도 진이가 내게 고마워하는 것은 자기 대사를 내 스타일대로 조금씩 만졌는데도 그 본질을 손상시킨 건 하나도 없다는 거지. 어쨌거나 내 입장에서도 이 영화의 일등공신은 무조건 장진이다. 걔가 설계도를 이렇게 그리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광우병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흥미로웠다. 미리 이런 상황을 예견했나.
=그 장면은 1월 말엔가 찍었는데, 애초 시나리오에는 강철중이 이원술 패거리의 고깃집에 가서 행패를 부리면서 불판만 계속 바꾸는 것만 나온다. 그런데 이왕에 하는 것, 국민들에게 한우 좀 드셔라, 하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입소에 광우병 있을 수 있잖아” 이런 대사를 넣었다. 촛불시위 이후에 찍어서 넣은 줄 아는 사람도 있을 텐데 사회적 맥락을 좀 강조하려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고등학생 역할로 등장했던 신인급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이 없더라.
=하이틴 스타가 나오면 재미가 하나도 없다. 실제로 쟤들 깡패야 뭐야 하는 느낌을 주는 애들을 써야지. 그래서 떴다 하는 애들은 아예 받지 않았는데 조감독이 500명 이상 봐서 올린 배우들을 내가 만나보고 결정했다. 하여간 고등학생들의 비중이 꽤 되는데 얘들이 성인 배우들에게 밀리면 영화가 우스워진다고 봤기 때문에 얘들 분량을 찍을 때는 항상 초긴장 상태였다. 하도 화를 많이 내고 그러니까 내 옆에는 오지도 않더라. (웃음)

-흥행은 어떻게 예상하나.
=1편보다는 잘될 것 같다. 1편이 320만명 정도 들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한 500만명 된다. 1편은 잔인한 영화라는 소문이 나서 흥행을 좀더 못한 게 아쉽다. 부모님 죽이는 이야기라는 점도 그랬던 요소이고. 심지어 야구선수 이승엽이 장진에게 그랬단다. 강우석 감독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아무리 영화지만 자기 부모를 어떻게 죽이냐면서. 주변에도 1편 흥행 기록만 잡으면 된다고 얘기한다.

-네 번째 <공공의 적>도 만들 계획인가.
=이번 영화가 흔히 대박이라고 말하는 400만~500만명 정도 흥행이 된다면 언제 만들어질지는 몰라도 당연히 시리즈는 이어진다.

-차기작은 결정했나.
=아이템이 있는데 시놉시스가 곧 나온다. 지금 시대의 우리 얘기다. 지금 지도자를 선출했고 광우병 문제 때문에 촛불집회도 하잖나. 그런 이야기를 좀 작은 단위 안에서 풍자적으로 녹여볼까 한다.

-코미디처럼 들린다.
=이번에는 이야기는 작지만 코미디 감각이라는 것을 녹여내는 영화를 해보려고 한다. <강철중>은 사실 내가 <신기전>이니 <모던보이>니 큰 영화를 준비하느라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기도 했고, 어쨌거나 악을 처단하는 이야기라는 선이 분명한 영화 아닌가. 그런데 다음에는 작은 얘기 같은데도 끊임없이 낄낄 대고 웃을 수 있는 영화를 해보려고 한다.

-정재영이 출연하고 이해준 감독이 연출하는 <김씨 표류기>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나.
=일전에 CJ한테서 빌린 돈이 있잖나. 그게 일부 회수된다. 그리고 몇 군데에서 파이낸싱을 하면 된다. 일단 시나리오를 잘 봤고 게다가 정재영이 출연하잖나. 그 캐릭터가 아주 잘 맞는다. 이해준은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면서 재능있다고 생각했던 감독이고 제작자 김무령은 워낙 마케팅을 잘하니까 이 정도 조합이면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한섭 신임 영진위원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선임된 뒤에 통화도 했는데, 지금 영화인들이 불안해하고 반발도 하기 때문에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 위원장 친구들 중에 영화인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막 욕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스스로가 자신을 안 좋게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어려운 시기에는 영진위의 역할이 정말 크다. 각종 지원금도 굉장히 귀중하고. 그때 내가 부탁한 것은 함부로 돈 뿌리지 말고 엉뚱한 데 쓰지 말라, 정말 도움이 되게 쓰라는 것이었다.

-강철중이 고등학생 애들에게 “이게 내 은퇴작인데…”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이상하게 감독 자신의 각오처럼 들리기도 하더라.
=그건 장진이 쓴 대사인데, 나도 찍을 때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이거 내 은퇴작 같다고. 실제로 시장 논리상 나는 이거 망하면 자동 아웃이다. 내가 이런 말 안 해도 자연히 은퇴하게 된다. 자본이 날 밀어낼 텐데 그걸 무슨 방법으로 막아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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