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설경구] “요새 다 힘든데 강철중이라고 살기 편하겠나”
2008-06-13
글 : 문석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강철중: 공공의 적1-1>의 배우 설경구 인터뷰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축 늘어지는 품새가 여간 피곤한 모양이 아니다. 하룻동안에 이미 15건의 인터뷰를 시간차공격처럼 척척 해치웠다는 말을 들으니 살짝 겁이 난다. 이 배우 설경구, 까칠할 때는 꽤 까칠한 인간인데 피곤에 절어 비협조적으로 나올까 걱정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어휴, 힘들어. 나 그냥 갈게. 당신 마음대로 써줘”라고 말한다. 약간 부아가 나 “그럼 가시든가”라고 농을 던지니 자세를 곧추세우며 “일하자, 일!” 한다. 빈둥대다가 결국 사건에 임하면 악다구니로 밀어붙이는 강철중처럼 그는 자연스레 감기는 눈꺼풀을 치뜨며 대화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설경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 중 하나라고 평가했던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를 다시 입는 소감부터 물어봤다.

-<공공의 적>의 형사 강철중을 다시 연기하는 건 어땠나.
=나쁘진 않았다. 검사 강철중보다는 좀더 비어 보이는 형사가 나았다. 권력을 가진 자가 공공의 적을 잡는다는 건 매력이 없지 않나. 경찰이란 조직에서 계급이 높지 않은 사람들은 실제로 굉장히 힘들다. 인원도 부족하지, 사건은 터지지….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꽂혀서 공공의 적을 잡으러 나선다는 게 굉장히 통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철중이란 캐릭터를 다시 접하니 반가웠나. 같은 캐릭터를 다시 연기하는 건 처음인데.
=음… 반갑기도 하고 썩 반갑지만은 않은 것도 있고. 감독님은 <공공의 적>에 미련이 많으셨다. 주변으로부터 <공공의 적> 다시 안 하냐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아주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많이 좋아해주더라. 내가 아는 50대 남성분이 있는데 그 부인은 거짓말 좀 보태서 99번 봤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게 굉장히 다양한 부류에 통쾌한 맛을 줬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세상 사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나보다 하는 생각도 했다.

-강철중이란 캐릭터에 대해 각별한 매력을 느낄 것도 같은데.
=매력이 있다. 실은 굉장하다, 이런 정도는 아니고. 주위에서는 나를 아예 강철중이란 캐릭터로 생각하더라. ‘강철중=설경구’ 이런 식으로. 나이트클럽에 촬영을 섭외하러 갔는데 <공공의 적>을 찍는다고 하니까 강철중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더라. 1천만 관객 든 <실미도>에서 내가 맡은 역할 이름도 모르는데. (웃음) 그만큼 강철중 이름이 강렬했나보다. TV 재연 프로그램의 형사 이름 중에도 강철중이 있더라. (웃음) <공공의 적>을 할 때는 스트레스를 풀면서 연기했다는 느낌이 있다. 강철중은 천하무적 아니냐. 다 풀면서, 뱉으면서 했던 느낌이 있다. 역도산도 겉모습만 화려했지 본질적으로는 못 뱉고 살았던 사람인데 강철중은 후련하다. 그러고 보면 강우석 감독님 같다. (웃음) 할 말 다 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그래서 관객이 그 캐릭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자기는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못하는데 얘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니까.

-그렇게 풀고 뱉었던 강철중이 이번에는 조금 순화됐달까 하는 느낌이 있다.
=내 나름대로 합리화하는 것은 생활고다. 돈에 대한 쪼들림 말이다. 강철중은 원래 대출받으러 간다는 건 고민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위축되고, 산수에게도 돈 때문에 위축되지 않나. 생활고가 사람을 위축시키는 게 있는 것 같다. 요새 다 힘들잖나. 강철중이라고 살기 편하겠어. 최후에 필요한 돈이기 때문에 호기를 부리기 어려웠을 거다. 식솔이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니까. 어쨌거나 나는 이것은 오락영화라고 생각한다. 너무 그악스럽게 가면 관객이 버거워하기도 하니까 전반적으로 순화시켜서 재미 위주로 가려고 했던 것 같다. 칼 나오는 장면도 원래 더 디테일하게 찍었는데 다 뺐더라. 1편의 강철중은 논리가 없었다. 성재(가 맡은 캐릭터)를 잡으러 중지도로 가면서 반장에게 무식한 말도 많이 내뱉지 않나. ‘기계공고 야간 누구도 알고 누구도 알고…’ 이러면서. 그런 논리없음이 1편의 백미이기도 한데 지금은 논리가 많이 생긴 것 같다. 근데 이번엔 계산도 하잖나. 연이자 이런 데도 관심을 갖고.

-연기하면서 답답한 점은 없었나.
=가족농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원술이 담배 뽑아주잖나. 그때 피워야 했을 것 같다. 욕도 마음껏 질렀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감독님은 욕이 너무 많이 나오면 듣기 안 좋다고 하더라. 1편 때는 내버려두셨는데. 1편 때 강철중은 굉장히 장난기가 있으면서도 그악스런 캐릭터 아니었나.

-1편에 비해 코믹한 요소는 좀 약해진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난 이번 영화가 굉장한 코미디라고 보는데. 물론 1편에서 이문식, 유해진, 성지루와 함께 큰 웃음을 만들어냈지만. 그때 경찰대에서 시사하는데 사람들이 앞뒤로 넘어가면서 웃는데 그런 건 처음 봤다. 스탭 중 동시녹음 라인맨은 웃지 않으려고 자기 팔뚝을 깨물어서 이빨자국이 나기도 했다. (웃음) 그에 비하면 웃음이 작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 코믹하잖나.

-그동안의 상대역에 비해 이원술 캐릭터는 많이 강조된 것 같다.
=(정)재영이 역할이 재밌었다. 사람다운 면이 있다. 성재는 극악했지. 부모 죽이고, 시체에 밀가루 뿌리고. 그에 비해 재영이는 사람들이 필요한 거 해결해주고, 그러려면 애들도 필요하고 키우는 거지. 자기가 봤을 땐 정당한 것이지만, 물론 우리가 봤을 땐 나쁜 놈이지. 실제로 평택에서 160명 넘는 중·고등학생들 훈련시킨 조직이 있었는데 검거됐다더라.

-1편이 설경구의 원맨쇼였다면, 이번에는 무게중심이 나뉘는 느낌이다. 강신일이 맡은 엄 반장도 비중이 커졌고 김 형사도 그렇다. 아쉽지는 않았나.
=거기에 이원술이 있고, 그 변호사까지 있잖나. 다 나눠가진 거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모든 영화가 다 아쉬운 것 아니냐. 영화만 잘되면 다 같이 갈 수도 있는 거다. 내가 나이를 먹기도 해서 그런지 욕심 부리고 싶지도 않고 아쉽지도 않다. 관객이 재밌게 보면 됐지. 내 것 찾아야 돼, 뭐 이런 생각은 없다.

-이번에 강철중은 정의감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1편에서는 개인적 원한에서 시작해서 어슴푸레한 정의감으로 발전하는데.
=여기서도 개인적인 원한으로 시작하면 1편과 다를 게 뭐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두 영화를 비교하면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1편과 비슷한 점이 많거든. 반장과 티격태격하고, 얻어터지고, 그만둔다고 하고, 집에 가고. 이번에는 색깔만 입힌 거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유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해봤는데. 생각은 감독님이 하는 거다. (웃음) 하긴 재영이가 조금만 괜찮았으면 형사가 될 수도, 내가 조금만 삐딱했으면 행동대장이 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강철중이 순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어쩌면 인간 설경구도 비슷하게 바뀐 것 아니냐. 운동도 열심히 하고, 배우로서의 이미지도 신경쓰고.
=그거야 인간이 바뀐 게 아니라 영화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징글징글한 역할을 할 때면 내 생활을 거기에 맞춰간다. 감독님에 따라서도 다르다. 이창동 감독이랑 작업할 때는 같이 자학하고, 강 감독님과 할 때는 같이 파이팅하고. 운동은 하도 살을 뺐다 찌웠다 하니까 트레이너나 한의사에게 경고도 들었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거다. 배우로서의 이미지? 내 나이가 있잖나.

-당신도 나이를 체감하고 있나.
=음… 몇년 있으면 잘 내려와야 하는 나이인데.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놓고 난 다음에도 뭐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지금은 조연이 들어온다면 안 할지도 모른다. 서서히 자연스럽게 바뀌고 싶다. 물론 그런 시기가 늦춰졌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왜 없겠나.

-그래도 <공공의 적> 1편 찍고나서 우연히 봤을 때는 굉장히 사나운 야수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그게 아마 <공공의 적> 끝나고 <오아시스>를 준비할 때여서 그랬을 거다. 22kg을 빼고 <오아시스>의 홍종두가 되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종두처럼 입고 종두처럼 표정짓고 다녔다. 당시에 우리 앞집이 공사를 하게 돼서 미안하다면서 음료수를 주러 우리집에 왔는데 집에 나밖에 없어서 현관에 나갔는데 그 집 주인이 날 보더니 얼른 피하더라. (웃음)

-또 다른 <공공의 적>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
=관객이 재밌어하고 내가 나가길 바란다면야…. 근데 핸디캡은 있다. 몇년 지나면 후배가 반장을 할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주위에는 “그거 왜 또 해?”라는 반응도 있다. 그런데 내가 6년 동안 아무 일도 안 하다가 하는 것도 아니잖아. 한국에 시리즈로 3편까지 간 영화가 별로 없잖나.

-정재영과는 <실미도> 때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이번에는 어땠나.
=재영이는 잘하는 배우다. 게다가 이것은 정재영의 장점이 다 나오는 영화다. 우직한 것도 있으면서 그 자체로 코믹한 게 있다. <실미도> 때도 그랬고. 재영이가 공공의 적이 된다고 해서 반가웠다.

-강신일은 몸이 안 좋은데도 열심히 연기했다던데.
=신일이 형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까봐 영화에서 빠지겠다고 했는데 강 감독님이 워낙 신임하니까 기다리겠다고 한 거다. 감독님은 신일이 형에게 “내가 15편 만들면 강형은 15편 다 나와야 합니다”라고 진담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물론 신일이 형 자신이 모두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다.

-<싸움>의 흥행이 잘 안 된 데 따른 후유증은 없었나.
=없었다. 난 오히려 태희가 걱정됐다. 열심히 했는데 또 상처가 된 것 같아서. 당시에 악플이 많았다. 솔직히 때려주고 싶더라.

-아까 촛불을 든 사진도 기꺼이 찍었는데, 촛불집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이 시대의 공공의 적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나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상황이 되면 촛불집회에 나갈 수도 있겠지. 어떻게 생각하냐고?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주인인 국가다’, ‘머슴이 주인 노릇을 하면 안 된다’, 일단 이 정도로만 얘기하겠다. 공공의 적? 개인적 차원도 있고 국가적 차원도 있겠지만 아까 말로 설명되지 않나.

헤어&메이크업 박승택(김활란 뮤제네뜨)·스타일리스트 정윤기(인트렌드)·의상협찬 최범석, D&G, 클럽 모나코, DKNY, 지오송지오, 소다 옴므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