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과의 인터뷰는 2007년 8월14일 촬영을 마친 뒤 숙소인 호텔 로비에서 이뤄졌다. 당시에는 올해 구정이 개봉 목표 시점이었던 터라 김지운 감독은 거대한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는 듯했다. 그 때문에 인터뷰를 꺼리던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시작했지만, 흥분과 긴장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중국 촬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중국에는 자위관에 7월16일에 넘어와서 17일부터 촬영을 하려 했다. 자위관이란 곳에 이틀 연속 비가 내리는 게 1년에 1번 정도라는데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 연속으로 비가 왔다. 그리고는 황사가 몰려왔는데 하도 세서 몸이 휘청거리고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여기 온 지도 한달이 돼가는데 중국 대륙이라는 곳이 쉽게 외지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고사를 지냈다. 한번은 한국식으로, 한번은 중국식으로 지냈는데 거짓말같이 그 다음부터 날씨가 좋아졌다.
-더위가 가장 큰 적 중 하나일 것 같다.
=기온이 섭씨 40도를 웃돌고 높은 고도 때문에 공기가 적어 힘든 상황인데, 모니터야 그늘에 있으니까 남들이 느끼는 만큼 더위는 모른다. (웃음) 점심 먹고 충분히 쉰 다음에 촬영을 하는 것도 장거리 레이스에 걸맞은 페이스 조절을 위해서다.
-여건이 어려운데도 굳이 중국에서 촬영을 하게 된 이유는 뭔가.
=만주가 배경이니 중국 대륙을 찾은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탁 트인 벌판을 볼 때 뭔가 회복시켜주는 게 있지 않나. 어떤 에너지를 받는 것인데, 그런 벌판과 광야라는 배경이 욕망과 희망과 꿈을 찾아 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안에서 영화를 찍으며 쏟아야 할 힘이 엄청나지만 그 공간이 우리를 회복시켜주는 게 크니까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여기 와서는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대자연 앞에서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라고. 그리고 그 자연과 함부로 부딪혀보고 싶은 느낌도 갖게 됐다. 당시 만주라는 대자연을 누비던 사람들의 기백과 기상과 활력을 영화에 옮기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졌다.
-배우들의 옷이나 차림이 독특하다. 구성원도 다국적이고.
=실제 당시 만주에는 마적단이 있었다. 전체가 수천명이 되는 곳까지 있었다. 거기에는 조선인, 러시아인, 몽골인, 조선인, 중국인 등이 있었고. 그들의 전통의상 자체가 다국적이니까 그런 것을 바탕으로 무국적, 무시대적, SF적인 느낌을 부여했다. 당시 사진 보면 사람들의 패션은 꽤 스타일리시했다. 그런 기록을 토대로 상상력을 가미했다.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컷도 굉장히 많은 것 같고 다양한 앵글을 시도하더라.
=서부극이라고 하면,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처럼 스탠더드한 앵글과 프레임, 커팅으로 이뤄진 영화가 있고, 느리지만 순간적으로 휘발성있는 극단적 클로즈업을 보여주는 마카로니 웨스턴도 있고, 폭력의 순수 오락적이고 순수 미학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샘 페킨파의 영화도 있다. 이것을 모두 포함한 게 ‘오리엔탈 웨스턴’이 아닌가 싶다. 총과 칼 등 여러 가지가 나오는. 컷을 많이 나누는 건 세명의 주인공을 내세우기 때문이기도 하다. 카메라를 송강호에게 주는데 이병헌을 안 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정우성을 안 줄 수 없잖냐. (웃음) 한 사람씩 힘있는 모습을 보여주려니까 컷이 많다. 속도감도 중요하다. 아마도 내 영화 중 가장 속도감있는 작품이 될 것 같은데, 대륙을 향해서, 꿈을 향해서 끝없이 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속도가 필요하다. 하여간 새로운 소재와 비주얼을 시도한다는 점 때문에 힘들지만 행복하다.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계속 고치고 있다던데.
=내게 시나리오는 이런 얘기하겠다는 정도의 밑그림이다. 특히 이 공간에 와서 아이디어와 생각이 바뀌고 새로 생긴다. 주변에 의견을 많이 물어봐. 이게 더 재밌냐, 저게 더 재밌냐. 끊임없이 편집해서 배우들도 보여주면서 반응을 듣는다. 그렇게 하려니 나는 더 힘들다. 밤 9시쯤 숙소에 들어가서 밥 먹으면 10시고, 편집을 하면 2시간, 길면 4시간까지 걸린다. 하긴 딱히 할 일도 없다. 한국에선 몰랐는데 중국에서는 내가 왕따더라. (웃음) 일이나 해야지.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이라는 세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건 어떤가.
=대개의 영화는 주인공이 2명이잖나. 주인공 1명을 더 넣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3편을 동시에 찍는 기분이라니까. 사실 국보급 배우들인데, 너무 큰 배우들이라 함께 작업하는 게 행복하지만도 않더라. (웃음) 그래도 다들 작품에 대한 애정이 워낙 커서 상대를 많이 신경 안 쓰는 것 같더라. 주연 세명과 수많은 조연들이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3명인 덕에 ‘화면이 이렇게 풍요로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A 대 B의 대립항에 C를 어디에 두고 밸런스를 맞추냐에 따라 굉장히 재미가 생긴다. 어찌보면 그 밸런스는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세 사람과 공간, 소재, 스타일, 내용과 주제, 참여하는 스탭들이 서로 퍼즐처럼 짝이 맞아들어가면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평소 에스프레소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데 갈증은 없나.
=아, 가장 불편한 게 그거다. (웃음) 아닌 게 아니라 중국에서 오면서 난생처음으로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가방을 싸는 마음이 홀가분하고 상쾌했는데 이번에는 무겁더라. (웃음) 나도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여자는 없는데 내년(2008년)에는 결혼할 거다. (웃음) 그래서 <놈놈놈>이 잘돼야 하는데… 킥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