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다크 나이트> 밤의 기사, 미치광이 살인마와 격돌하다
2008-07-31
글 : 황수진 (LA 통신원)
어둠의 포스를 품고 돌아온 <배트맨> 시리즈,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사기

<다크 나이트>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잡아낸 수직의 도시 고담을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시작된다. 그대로 빨려들어가 끝없이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 핑하니 현기증마저 도는 눈앞에 펼쳐진 고담시. 전작 <배트맨 비긴즈>(2005)를 통해 내상을 가진 영웅의 기원을 그린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 나이트>를 통해 영웅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다소 무겁게 그려나가고 있다. 배트맨은 다른 수퍼영웅들에 비해 확실히 좀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캐릭터다. 그의 특별한 능력은 유전자 변이 때문에 얻어진 초능력이라든가, 다른 행성 출신이란 점 등이 아니라 물려받은 막대한 부에 기반한다. 억만장자의 산업자본가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고담시의 정의를 되찾는다는 명분 아래 배트맨의 가면을 쓰지만 그의 선한 의도와 달리 그의 존재 자체는 오히려 악의 무리들이 더 결집하게 되는 계기가 될 뿐이다. 그리고 이런 배트맨 앞에 등장한 것은, 악한 의도를 가진 자가 아닌, 처음부터 의도나 규칙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은 혼란 그 자체로서의 조커(히스 레저)다.

기묘하게 닮은 배트맨과 조커

“네가 나를 완성시켜줘”라고 배트맨에게 내뱉는 조커.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팽팽한 대결 속에서 그 두 사람은 기묘하게도 닮아 있다. 흑과 백 사이. 50% 선하다는 것은, 또 50% 악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크 나이트>의 각각의 캐릭터들은 모두 이 경계가 불분명한 회색의 영역에서 각자 위태롭게 서 있다.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채,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이고 모두가 각자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세계다. 경찰 배지와 배트맨의 진실 사이의 경계를 걷고 있는 고든(게리 올드먼), 고담시를 법의 이름 아래 구해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함을 보였지만 결국 무너지고 마는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 배트맨의 지시와 자신의 지켜야 할 신념이 서로 부딪히자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폭스(모건 프리먼), 사랑하지만 같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브루스 웨인과 자신의 곁에서 같은 꿈을 꾸고 있는 하비 덴트 사이에서 방황하는 레이첼(메기 질렌홀).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고담시. 그것은 검은 빛이 도는 짙은 회색의 도시이다. <다크 나이트>는 올해 가득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슈퍼영웅물에서 가장 진하고 깊은 색을 띤 영화다.

지난 6월29일, 크리스천 베일과 메기 질렌홀, 아론 에크하트, 게리 올드먼, 감독을 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각본을 맡은 조너선 놀란과 스토리를 맡은 데이비드 고이어, 그리고 에마 토머스와 찰스 로벤 두명의 프로듀서가 참석한 가운데 총 7차례에 걸친 라운드테이블 형식의 인터뷰가 LA 베벌리 윌셔 호텔에서 오후 내내 이루어졌다. 떠난 빈자리가 컸던 것일까, 조커 역의 히스 레저에 대한 질문이 모든 테이블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섬뜩했던 영화 속 조커의 모습과 달리 그와 함께했던 이들의 기억 속에서 히스 레저는 순박하고 너무나 반짝이는 젊은 배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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