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는 눈으로 덮인 미국의 한적한 도로와 그 위를 헤드라이트를 켠 채 지나가는 자동차를 따라가며 시작한다. 텔레비전 시리즈의 분위기 그대로 조용하고, 스산하고, 불길하다. 자동차에서 내린 여인은 곧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쫓기기 시작하고 다음날 환영을 통해 여인이 공격당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신부를 따라 FBI 요원들이 그녀의 시체를 찾아 눈 위를 수색하는 장면이 교차편집된다. 그리고 신부가 가리키는 곳을 파서 발견하는 것은 잘린 누군가의 팔.
지난 2002년 시즌9를 마지막으로 시리즈의 막을 내린 <엑스파일>의 두 번째 극장판인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는 ‘그리고 그 이후, 멀더와 스컬리의 이야기’이다. 텔레비전 시리즈가 ‘저 너머에 있는 진실’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였다면 ‘나는 믿고 싶다’라고 이야기하는 이번 작품에서는 이제 외부가 아닌 두 캐릭터의 복잡한 내면에 집중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의 두 사람. 스컬리는 가톨릭 교회가 경영하는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고, 멀더는 세상과 격리되어 자신의 조그마한 방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 같은 침대에 누워 있지만 더이상 같이 일하지 않기 때문일까, 둘 사이는 오히려 더 소원해 보인다. 외계인에 납치된 여동생에게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멀더만큼이나 스컬리 역시 아들 윌리엄이 남기고 간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사라진 FBI 요원을 찾는 데 협조해 달라는 요청이 스컬리를 통해 멀더에게 들어온다. 사라진 요원을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환영을 본다는 조셉 신부 때문이다. 엑스파일이라는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스컬리와 여전히 그 어둠을 거부할 수 없는 멀더는 그렇게 한 발자국 더 멀어지기 시작한다.
엑스파일 특유의 외계 존재를 포함한 초자연적인 현상과 그를 둘러싼 음모론을 상당히 희석시킨 이번 극장판에서는 미스터리 그 자체보다는 그를 바라보는 해석의 문제,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는 언어의 다의성을 탄탄하게 드라마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믿음과 과학 사이의 서로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오랜 논쟁에서 결국 공감하고 동의하게 되는 부분은 무엇이 진실이냐가 아니라 결국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과정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한 것이다. 나는 믿는다가 아닌 나는 믿고 싶다라는 말은 참 가장 보편적인 바람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멀더는 왜 믿고 싶은 것일까. 스컬리는 왜 믿지 않은 것일까.
PS. 멀더와 스컬리 커플의 팬이라면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