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 나이트>에서 무엇을 성취했나
2008-08-14
글 : 안시환 (영화평론가)
묵시론에 담긴 강력한 악몽

처음이다. 영화를 보며 이토록 무력감에 사로잡힌 건. 크리스토퍼 놀란은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카오스의 세상을 보여주지만, 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망연자실 바라보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게 <다크 나이트>는 관객에게 ‘정신적 탈진’을 강요한다. 인물의 경험을 관객에게 전이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던 크리스토퍼 놀란은 신작 <다크 나이트>에서 고담시를 짓누르는 절망의 심연을 관객에게 체험할 것을, 그 아찔한 현기증을 함께 느낄 것을 요구한다. 물론 이는 어두운 도시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이맥스 촬영의 효과이기도 하지만, 부패로 만연한 고담시가 단지 영화 속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그 자체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성취된 것이기도 하다. 내게 이 영화를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걸작’이라는 것 외에는 없다. <다크 나이트>, 한마디로 걸작이다.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는 만족할 만한 작품이긴 했지만, <배트맨>은 여전히 팀 버튼의 것이었다. 누아르풍의 폐쇄적 공간과 히스테리컬한 배트맨 등의 <배트맨>의 전형이 팀 버튼 손에서 빚어진 이상,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했다. 데뷔작인 <미행>에서부터 누아르적 세계에 대한 애정을 선보였던 놀란이 팀 버튼에 가까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놀란이 버튼처럼 누아르적 세계를 표방한다 하더라도, 놀란의 고담은 버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버튼이 시공간의 물리적 좌표가 지워진 표현주의적인 고담을 창조하려 했다면, 놀란은 버튼이 삭제했던 리얼리티를 최대한 복원하려 한다. 놀란이 원하는 것은 누아르 특유의 폐쇄적 공간에 리얼리티가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버튼의 잔영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던 놀란은 자신만의 고담을 창조하기 위해 마이클 만을 경유한다. <히트>의 낮으로 시작해 <콜래트럴>의 밤으로 치닫는 <다크 나이트>는 화려하면서도 음산한 도시의 비극적 운명론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다.

놀란이 <메멘토>에서 시간의 뒤틀린 구조를 활용했던 것은 이러한 플롯이야말로 레너드의 심리적 경험과 유사한 관객의 체험을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썸니아>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정신이 혼미해진 도머의 시점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관객이 그의 황폐해진 내면에 가까이 가도록 유도한다. 놀란이 마이클 만의 도시를 참조한 것 역시 관객의 영화적 체험이 허구적 세계 속에 휘발되지 않고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다크 나이트>가 기존의 놀란 영화와, 그리고 놀란표 배트맨의 시작을 알린 <배트맨 비긴즈>와도 궁극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지금까지 놀란의 영화는 인물의 내면으로 관객의 관심을 이끄는 구심력으로 유지되었고, 그럼으로써 그의 영화는 한 인물에 관한 영화로 제한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전작이었던 <프레스티지>는 놀란이 개인의 서사에서 사회적 서사로 관심을 이동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전망을 가능케 한 작품이었다. <프레스티지>는 근대 기술문명의 여명기를 배경으로 두 마술사의 ‘마술-트릭’ 대결 속에 근대적 합리성에 드리운 불길한 그림자를 포착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개인의 서사와 사회적 서사가 불편하게 동거하는 것으로 머물고 말았다. 하지만 그 실패는 <다크 나이트>를 통해 완전한 보상을 받는다. <다크 나이트>는 허구적 공간의 대명사인 고담을 너무도 현실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킴으로써 개인의 서사에서 벗어나 완전한 ‘바로 지금 여기’의 (미국의) 사회적 알레고리로 완성된다. 우리가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하지만 우리가 창조한 세상임에 분명한.

경계의 혼돈과 결합된 인물의 죄의식

그렇다고 놀란을 단순한 의미의 리얼리스트로 규정해서는 곤란하다. <메멘토>는 레너드의 몸에 빼곡히 적힌 메모만큼이나 치밀하고 사실적인 미장센을 보여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효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이 그 뿌리를 잃고 진공의 세계에서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는 팩트에 집착하면서도 현실 감각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레너드 ‘내면의 리얼리티’와 닮은꼴이다. 실제로 놀란은 흥미로운 사건을 설정하지만, 사건 자체보다는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 방점을 찍곤 했다. 여기서 우리는 놀란이 복잡한 플롯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는 데 귀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그는 A로 나아가던 서사의 진행 방향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B로 전환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인썸니아>가 여고생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이야기에서 불면증 혹은 죄의식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노형사의 내면을 향해 치닫는 것처럼,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은 어느 순간 ‘하비 투 페이스’(한때는 영웅이었던 그는 사고로 한쪽 얼굴을 잃은 뒤 정의의 이름으로 악의 복수를 자행하는 인물이다)에 관한 영화로 넘어간다. 결국 그의 영화에서 사건은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하나의 맥거핀처럼 작동하는데, 이는 그가 궁극적으로 묘사하려는 것이 사건 자체가 아니라 선과 악,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지워져 혼돈으로 가득한 회색지대의 암울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놀란은 경계가 흐릿해진 혼돈에 죄의식을 결합시키곤 하는데, 그의 영화에서 인물의 대결 상대가 바로 자기 자신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메멘토>에서 레너드가 복수의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다닐 때, 이는 자신의 실수로 아내를 죽였다는 죄의식을 회피하려는 욕망의 결과였다. <인썸니아>에서 놀란은 도머가 의도적으로 동료를 살해한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가 동료를 의도적으로 살해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동료의 죽음과 함께 자신이 그러한 욕망을 품고 있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즉, 도머가 견딜 수 없이 괴로운 건 욕망에 있어서는 자신이 분명한 유죄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창가를 비집고 들어오는 빛을 미친듯 막아서는 도머의 모습은 죄의식을 회피하기 위해 가상의 적을 만드는 레너드의 또 다른 모습이다. 놀란은 배트맨의 기원서사마저 죄의식과 연관시킨다. 웨인/배트맨의 고담의 범죄를 척결하겠다는 사명감은 그러했을 때만이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웨인/배트맨의 이러한 태도는 놀란의 이전 인물들과 구별되는데, 레너드나 도머가 죄를 인정하기보다는 또 다른 복수의 대상을 찾아 그것을 회피하거나 자살적 몸짓을 보여주는 반면에, 웨인은 자신의 죄의식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그 회색지대의 혼돈에서 벗어난다. <배트맨 비긴즈>의 웨인/배트맨이 놀란의 다른 인물보다 단선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단, 조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메멘토>의 레너드와 새미, <인썸니아>의 도머와 월터 핀치, <프레스티지>의 쌍둥이 형제, 이들은 일종의 거울로서 서로를 비춘다. 놀란이 곧잘 반전 속에 드러내는 진실은 대체로 얼터에고(alter ego)라 부를 수 있는 이들 분신 인물 속에 감춰져 있다.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배트맨의 가면 뒤에 웨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반쯤만 사실이다. 왜냐하면 배트맨의 가면 뒤에 웨인이 감춘 것은 자신을 짓누르는 공포와 불안, 그리고 폭력적 충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조커는 배트맨이 가면으로 억압한 폭력적 충동의 구현물이자 배트맨의 얼터에고이다. 고담에 정의를 구현하려는 배트맨의 행동이 조커의 파국적 행동으로 응답받는 것은 조커가 배트맨을 거꾸로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면을 벗어라’, 라는 조커의 요구는 네가 결코 나와 다르지 않은 카오스적 충동으로 가득한 인물임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응답은 배트맨이 아니라 ‘하비 투 페이스’에게서 이뤄지는데, 이는 웨인이 배트맨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됐을 수도 있는’ 잠재태 중 하나가 바로 하비 투 페이스이기 때문이다.

놀란은 조커, 하비 투 페이스, 배트맨을 서로의 거울상으로 위치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의 제목이 ‘배트맨이 삭제된’ <다크 나이트>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물론 ‘다크 나이트’(Dark knight)는 배트맨의 애칭 중 하나이지만, 조커가 배트맨의 얼터에고이고, 그리고 하비 투 페이스가 배트맨의 정의와 조커의 카오스 모두를 구현하는 인물이라면, 이들 모두가 ‘다크 나이트’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들 세명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고, 관객이 그 거울방에서 체험하는 것은 인물 내면의 악몽 같은 혼돈만이 아니라 암담하다 못해 처참한 현실의 묵시론이다. 이러한 면에서 <다크 나이트>는 놀란 영화의 집대성이자, 새로운 놀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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