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인생의 묘미 알려준 음악
2008-08-14
글 : 강병진
노인 합창단부터 소년 밴드까지 음악으로 삶의 의미 되찾는 이들 그린 영화

음악을 좋아하는 데 큰 뜻이 있을 리 없다. <스윙걸즈>의 소녀들이 여름방학 내내 색소폰을 불었던 이유는 방학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린다 린다 린다>의 소녀들은 함께 음악을 하며 서로 토닥거리는 순간들을 사랑했다. 지금 소개할 3편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들 또한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음악을 향한 야망과 열정보다는 삶에 대한 의지가 더 큰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앳하트: 로큰롤 인생>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을 알릴 다큐멘터리 <영앳하트: 로큰롤 인생>은 주책맞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열창을 담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노스햄튼에 사는 합창단 영앳하트 단원들의 평균 나이는 대략 80살. 그런데 고희를 지나 팔순을 넘긴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찬송가가 아니라 아웃캐스트, 라디오 헤드, 지미핸드릭스, 소닉유스 등의 노래들이다. 영화는 이들이 7주 뒤의 공연을 앞두고 연습하는 과정을 담는 데,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나이를 잊어도 어쩔 수 없이 노인들인 탓에 리듬과 음색을 가다듬기가 쉽지 않다. 소리를 지를 힘도 부족하고 소닉유스의 <Schizophrenia>(정신분열증)을 연습하자는 말에 다소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연습과정에서 병을 앓던 동료 2명이 사망하면서, 그나마 갖고 있던 의욕도 꺾인다. 카메라는 ‘그럼에도’ 이들이 왜 부르기 힘든 록음악을 선택했을지를 짚어간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사는 할아버지는 음악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주었다고 하고, 또 다른 할아버지는 음악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았는지 자신의 망가진 몸을 보여주며 ‘아직 섹시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들에게 록의 현란한 코드 진행과 내지르는 창법에 대한 분석적인 답변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이를 잊을 정도로 신나는 음악이라는 설명만으로도 충분하다.

<로큰롤과 트랙터>

슬로베니아에서 날아온 <로큰롤과 트랙터>도 음악을 좋아하는 데, 1만 가지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말하는 영화다. 로큰롤이 이제 막 태동하던 시절의 어느 시골 마을. 로큰롤에 심취한 농부 브레자는 창고에 쌓인 건초 더미를 무대삼고, 닭들을 관객삼아 로큰롤을 연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브레자는 마을 축제의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다. 손가락이 찾아가는 기타 리프에 심취한 그는 분명 모든 사람이 함께 흥분해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춤추던 사람들은 스텝을 잃고 수다를 떨던 사람들은 말을 잃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흥겨워하는 음악은 전통 집시밴드가 연주하는 민속음악이다. 하지만 브레자의 공연에 몸을 흔들며 격하게 반응하던 여자 실비야가 브레자의 눈에 들어온다. 로큰롤을 노동요삼아 즐겼던 브레자는 이때부터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타줄을 튕긴다. 역시나 브레자에게도 어떻게 로큰롤을 발견했느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로큰롤에 심취했을 것이고, 신나는 리듬에 몸을 흔들다 소를 팔아 기타를 샀을 것이다. 그리고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음악을 찾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로큰롤 사랑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영앳하트…>의 노인들이 나이를 잊기 위해, <로큰롤과 트랙터>의 농부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음악에 미쳤다면 <사랑과 진실의 로큰롤>의 소년들에게 음악은 그들의 삶에서 유일한 목적이다. 이팡과 누기는 낮에는 학교에서 놀고, 밤에는 환락가를 전전하는 불량 소년들. 공부에 대한 그들의 지론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물리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어. 여자를 만나면 지구의 중력은 바뀌게 되어 있는 거야”라는 식이다. 학교보다는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이팡과 누기는 뮤지션을 꿈꾸며 밴드를 결성,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이들은 각각 애인이 생긴 어머니, 공부만을 강요하는 아버지 때문에 그 나이 소년들이 겪을 법한 성장통을 앓지만, 연습실에 모여 있을 때 만큼은 그런 고민들에 괘념치 않는다. 어쩌면 굳이 그들이 뮤지션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별 다른 상처가 없을 것이다. 인생에 얹힌 아이싱 혹은 토핑으로서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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