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그녀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 <무방비>
2008-10-07
글 : 강병진

<무방비> Naked of Defenses
이치이 마사히데 | 일본 | 2007년 | 88분 | 컬러 | 뉴커런츠 | 17:00 메가박스2

<무방비>는 다른 일본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공장의 내부를 비추며 시작한다. 시골마을 한가운데 우뚝 선 플라스틱 공장 안에서는 거친 기계들이 바닥과 공중을 오가고 있다. <무방비>는 이곳에서 일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숙련공인 리츠코는 어느 날 신참동료인 치나츠를 맞이한다. 치나츠는 만삭에 가까운 임신부. 리츠코는 그녀에게 꼼꼼히 일을 가르치며 우정을 나누지만, 곧 치나츠의 부른 배에서 교통사고로 뱃속의 아이를 잃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사고 뒤, 남편과 함께 자지 않고 함께 먹지도 않으며 오로지 일만 하고 있는 리츠코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공장의 기계에 비유한다. <무방비>는 모성의 비극이 다시 모성으로 극복되는 과정을 꾸밈없는 연출로 묘사한다. 그녀들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 남성이 끼여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리츠코는 새로운 임신으로 상처를 극복하려 하지만, 무심한 남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치나츠가 만삭으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무능한 남편 때문이다. 치나츠의 행복한 표정을 질투한 리츠코는 급기야 그녀를 죽이고픈 욕망에 사로잡히지만, 치나츠의 진통이 시작되자 유산 뒤 한번도 잡지 않았던 운전대를 잡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간다. 이미 많이 본 듯한 이야기임에도 <무방비>가 흥미로운 이유는 매우 현실적인 배우들의 외모와 그들의 표정,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황량한 풍경이다. 특히 떨어지는 폭우를 무작정 맞으며 함께 걷는 두 여자의 표정을 잡아낸 짧은 순간이 강렬하다. 한국에 주로 수입되는 일본영화의 ‘깔끔을 떠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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