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여기는 야오이 전문 상담데스크입니다. 동인녀가 되고 싶으시다고요? 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잠깐, 용어를 틀리게 사용하셨네요.
동인? 동인계? 야오이? 야오이녀?
동인(同人)이란 말은 아마추어 만화계에서 생겨난 말이다. 만화 그리기 및 감상에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한 가지 주제로 만화를 그리고 그것을 회지 형태의 결과물로 내놓았는데 이 회지를 동인지, 이러한 동호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동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만화 동호회들의 ‘주제’가 점차 여성향(女性向: 일본식 한자어로서, ‘여성 취향’이란 뜻을 지녔다) 남성동성애물 즉 야오이물에 집중되면서 동인은 야오이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워낙 음성적으로 발달해온 문화라 정확한 사전적 정의는 찾기 어렵다. 다만 야오이계와 (본래적 의미의) 동인계에서 ‘여성향 남성동성애물=동인’의 등식을 깨고 정확한 말을 쓸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계속 되고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여성향 남성동성애물 또는 남성동성성애물을 즐기는 여자들’은 동인녀가 아니라 야오이녀라고 불러야만 옳다(그러나 이 기사에서는 편의상 혼용하였다).
그럼 백합물은 뭔가요?
일반적으로 여성동성애물 또는 여성동성성애물을 지칭하는 말인데, 수위 높은 남성동성성애물을 지칭하는 ‘장미물’에 대한 반대적 개념으로 나온 조어라고 알려져 있다. 백합물은 주로 <카드캡터 체리> <소녀혁명 우테나> 등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여성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만들어진다.
야오이란 무슨 뜻?
야마나시(やまなし: 주제 없음), 오치나시(おちなし: 소재 없음), 이미나시(いみなし: 클라이맥스 없음)의 앞 글자들을 따서 이어붙인 조어다. 본래 일본 동인지가 저러한 속성을 가졌다는 뜻에서 그 동인지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의미가 변했다. 우리나라 야오이녀들 사이에서는 ‘야한 오빠들의 이야기’의 준말이라고 농담 같은 해석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종류는 어떻게 되나요?
종류를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가장 넓은 기준으로 볼 때 야오이는 창작물과 패러디물로 나뉜다. 창작물은 말 그대로 작가가 캐릭터들을 완전히 새롭게 창조해 이야기를 전개해간 것이고, 패러디물은 기존의 창작물에서 캐릭터들을 일부 차용해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해간 것이다. 따라서 창작물의 경우 독립적인 작품으로 봐도 무관하다. 패러디물은 1차 창작물에 대한 정보를 안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다. 요시나가 후미가 그렸다는 <슬램덩크> 동인 만화도 패러디물이고, <놈놈놈>의 팬픽과 만화들 역시 패러디물에 속한다.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팬픽도 넓은 의미에서 패러디물이다. 팬픽을 제외한 패러디물은 주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1차 창작물로 삼기 때문에 만화 형태가 압도적으로 많고, 창작물은 소설 형태가 주를 이룬다.
팬픽이란?
팬픽(fan-fic)은 팬픽션(fan-fiction)의 줄임말에서 비롯됐다. 팬픽션은 모 포털 사이트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만화·소설·영화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작품을 대상으로 팬들이 자신의 뜻대로 비틀기하거나 재창작한 작품”에 의미를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팬픽의 의미는 이렇게 넓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아이돌 가수를 비롯해 일부 꽃미남 스타로 분류되는 연예인들을 주인공으로 쓴 허구의 이야기’의 뜻을 지닌다. <놈놈놈>의 팬픽은 사전적 정의에 가까운 경우이고, 동방신기 팬픽은 후자의 정의에 가까운 경우라고 하겠다.
공(功)·수(受)가 뭔가요?
말하자면 두 남자가 성관계를 맺을 때 주로 성기를 삽입하는 쪽이 공, 받아들이는 쪽이 수다. 이성애 관계로 치환한다면 남성적 역할에 해당하는 캐릭터를 공, 여성적 역할에 해당하는 캐릭터를 수라고 보기도 한다. 둘 다 아주 정확하진 않다. 이는 정확한 용어 사용이 야오이 문화 안에서 정리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야오이 문화의 성격 자체가 이 역할 관계를 인정하는 동시에 스스로 역전시킴으로 전복의 쾌감을 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두 역할 모두 삽입과 흡입이 가능한 존재이기에 벌어지는 복잡한 현상이다. 이때 텍스트를 창작·수용하는 여성은 자신을 공에 이입하기도 하고 수에 이입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야오이의 공-수 개념과 이들 위치를 오가며 유동적으로 반응하는 여성의 욕망은 매우 다층적이다. 이에 대한 분석과 논의가 여성주의 진영에서 계속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드’한 작품만 있나요?
당연히 하드한 작품들과 ‘소프트한’ 작품들이 공존한다. 야오이를 어렴풋이 아는 사람들의 가장 고집스러운 편견 중 하나는 야오이가 남자 둘을 벗겨놓고 ‘응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징그러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눈쌀 찌푸릴 만큼 수용 장벽이 높은 장르가 물론 있다. 이른바 장미물이라고 하는 것인데, 여기 속하는 야오이물들은 그야말로 포르노, 오직 삽입 중심의 섹스를 지향한다. 그러나 장미물은 야오이 내에서 대세는 아니다. 야오이가 남성들간의 성애 관계를 묘사하기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되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창작자의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야오이는 철저히 개개인의 취향을 바탕으로 한 문화이고, 그 취향을 존중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당신에게 야오이를 향한 욕구가 생겼는데 이를 딱 맞게 충족시켜주는 작품이 없다면, 스스로 창작하면 된다. 동인녀들이 가장 사랑하는 구절이 있다면 이것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야오이 만화는 야오이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하기가 쉽다. 각종 만화 관련 행사를 기웃거려볼 수도 있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아가 그곳에서 발행하는 책을 구매할 수도 있다. 중고 시장도 매우 활성화돼 있다. 제일 빠른 길은 서점을 가는 것. 반면 야오이 소설은 만화만큼 흔하게 구하기 어렵다. 유명한 대형 작가들이 개인 출판한 책들은 판매 시기가 지나면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고 시장이나 관련 커뮤니티, 개인 블로그들에서 양도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인터넷에서 소설이 연재 중인 곳들은 대부분 엄격한 가입 절차를 거쳐야 하는 비공개 사이트이므로 접근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주소조차 알기 어렵다. 일부 서점을 통하면 정식 출판된 국내 소설들이나(그러나 극히 적다) 일본에서 정식 출간된 야오이 소설들이 국내 번역출간된 경우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