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속의 벨라는 텅 빈 캔버스다. "모든 소녀들이 자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던 원작자 스테파니 메이어의 의도였다. 영화는 소설과 다르다. 한 배우가 캐스팅되는 순간, 벨라는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로 관객을 대하게 된다. 캐서린 하드윅 감독은 오랜 오디션 도중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를 보고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벨라역에 낙점했다. 이유는 "강인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가진 드문 소녀 배우"였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처음 벨라역에 낙점됐을 때 인터넷의 고약한 소녀팬들은 악랄한 저주를 퍼부었다(사실 누군들 그녀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만족시켰으랴). 그러나 영화가 개봉된 지금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소녀팬들과 평단의 환심을 동시에 사로잡는데 성공한 듯 하다. 전형적인 할리퀸 로맨스의 주인공에 자기만의 개성을 덧씌운 스튜어트의 매력 덕분이다. 물론 역할의 한계는 뚜렷하다. 그녀의 대사들은 어쩔도리없이 여전히 낯간지럽다. 하지만 스튜어트가 매사 무관심한 듯한 얼굴과 허스키한 저음의 목소리로 할리퀸 로맨스의 대사들을 읊는 순간, 벨라는 피와 살을 얻는다. 역할과 배우의 기묘한 불일치가 도달한 경지라고 일컬어도 좋을것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처음으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데이비드 핀처의 <패닉룸>에서다. 관객들은 조디 포스터의 딸로 출연한 스튜어트에게서 그 나이 소녀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중성적인 매력을 감지해냈다. 스튜어트는 자신의 약간 비주류적인 특징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고, 소녀배우들이 성공을 위해 곧잘 출연하는 십대 취향의 코미디 영화를 이리저리 피해나갔다. 마이크 피기스의 <콜드크릭>, 데이비드 고든 그린의 <언더토우>,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 어린 나이에 이룩한 성과 치고는 썩 괜찮다.
<트와일라잇>은 스튜어트를 순식간에 주류 스타로 치솟아올렸다. 그러나 그녀가 부유하는 스타덤의 헬륨가스를 쉽게 들이삼키지는 않을것도 분명하다. 감독 캐서린 하드윅의 말을 한번 들어보라. “크리스틴은 말이 안되는 장면들을 그냥 묵인하고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그녀가 만족스러워하지 않아서 많은 장면들을 다시 찍어야 했다”. 이 고집센 여배우는 아직도 열여덟살이다. 믿을 수 없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