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과속스캔들> 흥행분석- 입소문과 대진운의 찰떡궁합
2009-02-24
글 : 강병진

<과속스캔들>은 블록버스터가 아닌데도 흥행한 게 놀랍다

놀랍다. 하지만 한국은 원래 코미디 장르가 강세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로맨틱코미디가 휩쓸고 조폭코미디가 휘저었던 나라가 아니던가. 물론 그럼에도 “재밌지만 TV드라마 같다”는 평가를 받기까지 한 코미디영화가 대박을 쳤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유감스러운 도시>는 좋은 비교대상이다. 조폭코미디 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의 배우들이 그대로 등장하는데다, 그들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명절 연휴에 개봉했지만 결국 한주가 지나자 <과속스캔들> 밑으로 순위가 하락했다. 이제 관객은 욕도 없고 뒤통수를 때리지도 않는 정극 코미디에도 호응한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영화의 이러한 장점은 20대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연령층 포섭도 가능케 했다. 여기에서 차태현의 강점은 다시 평가받는다. 만약 차태현이 아니었다면 한 남자의 성적 속도위반 행위를 편하게 받아들였을까라는 질문이다.

<과속스캔들>의 웃음코드가 2009년 초 현재의 관객에게 호응을 받은 것은 경기불황과 뒤숭숭한 사회분위기 덕분이라는 결과론적 분석을 낳기도 했다. 미국이 경제공황을 앓던 1930년대에 뮤지컬영화가 성공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역사적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이 <과속스캔들>의 흥행에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이진훈 한국영화팀 팀장은 “충분조건은 될 수 있지만, 필요조건이 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좀더 즐겁고 따뜻한 영화를 찾고 싶은 마음은 있겠지만 그것이 구매로 이어질 때는 또 다른 요인이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과속스캔들>은 가족영화이기 때문에 연말연시에 흥행할 수 있었다

글쎄, 이게 정말 가족영화인가?

아빠는 중3 때 과속했고, 과속으로 낳은 딸은 고1 때 과속했다. 설정만 보면 ‘막장’이다. 애초에 가족영화의 포지션으로 출전한 것도 아니었다. 마케팅을 담당한 영화인의 서경은 팀장은 “과속으로 구성된 가족 이야기라는 걸 숨긴 채 ‘유쾌한 해피 코미디’라는 컨셉을 밀었고 다른 영화들처럼 20대 초반 관객을 공략했다”고 말한다. 단지 <과속스캔들>은 전국 200만명을 넘어선 뒤부터 ‘과속패밀리’란 컨셉을 등장시켰고, 세 가족이 함께 눈을 감고 찍은 가족사진을 배포하면서 ‘가족영화’란 이미지를 강조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속스캔들>은 20대 초반에서 점점 가족관객으로 타깃을 넓혀간 마케팅의 힘으로 800만명을 달성한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맥스무비의 김형호 실장은 “2008년 연말과 2009년 초에 개봉한 애니메이션들이 모두 손익분기점을 채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경기침체로 당시 온천리조트의 매출이 30%나 감소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은 못 갈지라도 비교적 저렴한 영화는 보여준 것이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가 200만명 이상을 동원했고, <플라이 미 투 더 문>도 20만명이 넘었는데, 다들 이 정도의 성적을 예상하지 않았다. <과속스캔들> 또한 이 흐름을 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속스캔들> 같은 작품이 연말연시에 개봉하면 또다시 가족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대박을 터트릴까? 그것도 모르는 일이다. 이상규 CGV팀장은 “가능성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일반화의 사례가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과속스캔들>은 입소문 전략에 크게 기댄 영화다

그렇다면 <과속스캔들> 같은 입소문 전략은 항상 성공할까?

<과속스캔들>은 개봉 전 약 5만명을 대상으로 무료 시사회를 열었다. 인지도가 워낙 낮았던 터라 입소문을 퍼트리는 것만이 유일한 전략이었기 때문. 연말영화이면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인 12월18일이 아닌 12월3일에 개봉한 이유도 “초반에 자리를 잡고서 입소문을 확장시켜 밀고 가기 위해서”였다. 프린트 벌수를 280개로 한정시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진훈 팀장은 “스크린 수를 넓히기보다는 관객점유율을 높여서 웃음의 시너지를 높이려 했다”고 말했다.

입소문이 더 좋은 영화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20대 초반의 핵심 관객이 영화를 보고서는 포털사이트 평점을 마구 올려주는 경쟁작이 있었어도 <과속스캔들>이 800만명까지 올라섰을까? 관계자들은 <과속스캔들>의 입소문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던 중요한 원인으로 ‘대진운’을 꼽는다. <트와일라잇> <오스트레일리아> <지구가 멈추는 날> 등의 작품들이 기대 이하의 부진을 보였고, 초특급 스타와 노출 수위로 기대를 모은 <쌍화점>은 타깃층이 한정된 탓에 <과속스캔들>과 다른 길을 갔다. 맥스무비의 김형호 실장은 대진운과 입소문이 시너지를 이룬 상황을 설날 연휴로 꼽는다. “명절 연휴는 입소문이 나질 않는 시즌이다. 게다가 연휴에 맞춰 개봉한 영화들이 크게 활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이미 입소문을 탄 <과속스캔들>이 상위권을 지킬 수 있었다.” 입소문을 널리 퍼뜨리려는 시도는 모든 영화가 하지만, 이 또한 ‘운발’이 있어야 효과가 가능한 것이다.

<과속스캔들>은 스타배우 없이 성공한 영화다

맞다. 하지만 <과속스캔들>은 스타를 만들었다.

정남을 연기한 박보영은 제작진에도 모험이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시사회를 개최하면서 박보영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더니 급기야 개봉 때에는 “누나만 보영!”이란 팻말을 든 남자 중학생 관객이 줄을 이었고,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남자관객의 재관람률이 상승했다. 영화인의 서경은 팀장은 “<왕의 남자>의 이준기가 일으킨 팬덤만큼은 아니지만, 영화에 대한 호응을 폭발시킨 지점은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속스캔들>의 투자·배급을 진행한 이진훈 팀장은 “차태현의 고정팬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시사회를 많이 열었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맥스무비 김형호 실장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차태현이 지금까지 동원한 관객 수를 평균으로 따지면 약 170만명이다. 9편 중에서 100만명에 미치지 못한 게 3편뿐이다. 초특급 스타가 아니라고들 하지만, 이 정도 타율은 그의 고정팬층이 탄탄하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다.” 한 극장 관계자는 “그동안 차태현이 함께 출연한 여배우들을 스타덤에 올렸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 <연애소설>의 손예진과 이은주, 심지어 드라마 <줄리엣의 남자>에 함께 출연한 예지원도 그랬다. 말하자면 <과속스캔들>은 차태현이란 여성스타 제조기를 장착한 영화인 셈이다. 서경은 팀장은 “차태현이 초반 관객을 이끌었고, 이후에는 박보영과 기동이를 연기한 왕석현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박보영을 피임홍보대사로?

<과속스캔들>은 몇몇 과속방지턱을 의외의 ‘운발’로 넘겼다. 개봉 초기에 있었던 <트와일라잇>의 ‘알바논란’은 최고 9.7점에 달했던 <과속스캔들>의 평점에도 상처를 입혔다. “알바들 꺼져!”란 댓글과 함께 일부러 평점에 1점을 주는 네티즌이 늘어났고 <과속스캔들>의 평점은 9.06점까지 하락했다. 다행히 유료시사회를 통해 돈을 주고 영화를 본 네티즌이 “난 알바가 아니다”라는 댓글과 함께 평점 페이지에 등장하면서 논란은 사라졌다.

마케팅팀이 가장 노심초사했던 위기는 ‘박보영이 정말 직접 노래를 부른 건가’란 논란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4곡 중 박보영이 부른 노래는 1곡이다. 개봉 초기부터 이 사실을 숨긴 적은 없으나, 대부분의 기사가 “1곡은 직접 불렀고 나머지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식으로 보도하면서 “그래도 박보영이 다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박보영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사실을 밝혔다. 마케팅팀에서는 혹시나 박보영에 대한 호감이 안티로 돌아설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네티즌은 “솔직한 게 매력”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과속스캔들>의 홍보에 의외의 도움을 준 것은 속도위반 사실이 밝혀진 스타들의 결혼이었다. 권상우-손태영 커플과 오승은, 이수근 등의 결혼소식을 알리는 뉴스마다 ‘과속스캔들’이란 제목이 등장했기 때문. 심지어 “이렇게 피임하면 과속스캔들을 막을 수 있다”거나, “<과속스캔들> 흥행으로 본 피임의 중요성”이란 기사들도 등장했다. 산부인과의사협회는 박보영에게 ‘피임홍보대사’를 요청했을 정도. ‘과속스캔들’이란 제목이 하나의 ‘용어’가 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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