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에 이변이 도래했다. 톱스타, 메이저 영화사, 대형 제작비 어느 하나도 갖추지 않은 <과속스캔들>이 800만명 고지를 눈앞에 두고 흥행 기록을 다시 쓰는데다, 아트 상영관 위주에서 상영됐던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스크린 수를 확장하며 30만 관객을 코앞에 두고 있다. 두 영화 모두 영화 자체의 힘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예상했지만, 지금의 과속 흥행은 어느 누구도 예상 못한 신세계다.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는 각각 다른 의도로 기획된 다른 영역의 영화지만, 이 두 영화가 같은 시기에 흥행을 한 데는 일정 부분 공통점이 존재한다. 먼저, 콘텐츠적인 요소에서 두 영화는 불황의 시기를 극복해 나가는 코드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만약 이 영화의 개봉 시기가 지금이 아니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으리라고 조심스럽게 분석한다. 또 하나는 이들 영화가 이른바 스타파워와 대형 제작, 메이저 배급이라는 관행에 굳어진 기존의 충무로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과속스캔들>은 중저예산영화로 거품을 뺀 다이어트 영화이며, <워낭소리>는 배급 방식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며 관객에게 영화 이상의 의미를 안겨준다. 분명한 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흥행 추이에 영화계도 관객도 아직 입을 다물지 못한다는 점이다. 두 영화의 흥행 원인과, 이 진귀한 흥행이 한국영화계에 남길 영향을 짚어본다.
“어제 극장을 두 군데나 들렀는데 매진돼서 오늘 다시 보러왔다.”
지난 2월7일 토요일, <워낭소리>를 보러 노모와 함께 왕십리CGV를 찾은 장연희(40대·여)씨는 <워낭소리>에 대한 호평을 이미 주변에서 귀가 닳도록 들었다고 한다. “원래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없었는데 주변에서 본 친구들이 다들 좋다고 꼭 보라더라. 이미 <과속스캔들>도 추천으로 보고 만족했던 터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매표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이상운(27·남)씨도 “<워낭소리>와 <과속스캔들> 중 한편을 보러 왔다. 모두 흥행작이고 인터넷과 주위 친구들의 추천도 있었다”며 두 영화의 인기도를 실감케 해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민아, 김태우, 주지훈과 같이 스타가 대거 포진한 <키친>이나 중국 블록버스터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이 여전히 여유있는 좌석 수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같은 시간, <워낭소리>는 매진, <과속스캔들>도 매진 임박을 알리고 있었다.
자매가 극장을 찾은 정순안(59·여)씨는 “자식들이 보고 나서 예매를 해줬다. 언니와 함께 보며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고 전했다. 토요일, 황금주말을 극장에 투자한 이들 중 정순안씨와 같이 가족을 동반한 관객은 적지 않았다. 초등학생 아이들 셋과 함께 극장을 찾은 주부 심예희(38·여)씨 역시 <워낭소리>의 미덕으로 선뜻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을 꼽았다. “아이들과 함께 <쌍화점>을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영화가 많지 않은데 농촌과 동물이 나오니 아이들이 봐도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고 전했다. <과속스캔들> 관람에 이어 <워낭소리>를 보러왔다는 50대 부부는 “<과속스캔들>의 가식적이지 않은 웃음이 좋았다”며 “<워낭소리> 역시 억지스럽지 않은 웃음과 눈물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남자친구와 극장을 찾은 윤선희(26·여)씨는 “요즘 뉴스도 흉흉한데 영화까지 굳이 심각한 내용을 보고 싶지 않다”며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의 관람 이유를 들었다.
20~30대에서 시작해 60대까지로 옮겨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워낭소리>와 <과속스캔들>의 위력은 엄청났다. 1월15일 개봉한 <워낭소리>와 지난 12월3일 개봉해 벌써 두달이 넘은 <과속스캔들> 모두 저녁 시간대 매진을 기록했다. 주말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놀라운 흥행 수치다. 급기야 이날 왕십리CGV는 몰려든 관객의 요구를 반영해 <워낭소리>의 이날 상영회차를 원래 계획된 3회차에서 2회차 늘린 5회차로 수정했다. 왕십리CGV의 임유진 매니저는 “평일 객석 점유율이 보통 20~30%인 반면, <워낭소리>는 목요일부터 70~80%의 객석 점유율을 보였다. 아직 본사로부터의 지침은 없지만 이 정도 추세라면 이번주 지나 <워낭소리>의 상영관을 확대할 것 같다”고 전했다. 임유진 매니저는 또 “<워낭소리>의 관객이 연령대와 상관없이 다양하다”며, 지난해 개봉, 800만 동원을 앞두고 여전히 흥행세를 유지하는 <과속스캔들>과의 유사점을 말한다. “두 영화 모두 초반 관객층은 극장의 주관객층인 20~30대였다. 그러나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층이 40~50대, 심지어 60대로 점차 넓어지고 있다. 설 연휴, 방학 같은 특수가 겹치면서 가족과 함께 볼 영화를 찾다보니 두 영화에 관객이 크게 반응하는 것 같다.”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의 흥행이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영화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과속 흥행의 선두주자는 <과속스캔들>이었다. <과속스캔들>은 톱스타와 메이저 영화사, 대형 제작비 등 이른바 ‘대박영화’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단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한 작품이었다. 기획단계에서 투자사들의 외면으로 제작이 3년이나 늦추어진 건 이제 유명한 제작 후일담이다.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마저 순제작비 25억원이라는 중저예산영화의 크기에 맞게 <과속스캔들>의 흥행을 손익분기점인 130만~150만명으로 잡았으며 최대치를 300만명으로 설정해놓았을 정도다. 그러나 <과속스캔들>은 개봉 첫쨋주 40만명을 동원 1위로 등극해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이후 <쌍화점> 개봉 당시 한주 주춤했지만 다시 1위 자리를 탈환하는 뒷심을 보이더니 지난 2월9일까지 787만6709명을 모으며 곧 <웰컴 투 동막골>(801만명)을 제치고 한국영화 역대 개봉 순위 7위에 오를 예정이다.
예술영화 전용관을 중심으로 소비되는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 역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과속 흥행의 주연이 됐다. 농촌과 할아버지, 할머니, 소가 전부인 이 영화 역시 흥행을 기대할 만한 코드는 전무했다. 게다가 다큐멘터리 하면 으레 기대하는 사회·정치적인 이슈가 전무한 다큐멘터리의 이단아였다. 다큐멘터리 흥행작인 <송환>이 장기수라는 사회적 문제를 건드렸으며,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가 소재의 특별함을 내세우며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거나 <우리학교>가 재일동포라는 정치적인 소재를 차용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다.
그러나 <워낭소리>는 개봉 20일 만에 전국 관객 10만명을 돌파했고 독립다큐멘터리 최고 흥행작인 <우리학교>의 10만 관객 동원(공동체 상영 포함) 기록을 깼으며 지난 주말 26만5천명의 관객을 동원, 독립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된 <원스>의 22만5천명의 기록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지방의 한 극장은 <워낭소리>로 연일 매진인 사례에 대해 ‘3년 동안 벌 극장 수입을 <워낭소리> 한편으로 모두 벌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맥스무비의 김형호 실장은 두 영화의 잇단 흥행에 대해 “<워낭소리>는 독립 변인이 아니다. <과속스캔들>의 흥행은 관객에게 기록경신의 어떤 의지를 낳게 했다. 과거 <태극기 휘날리며>의 1천만 관객이 <실미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처럼 <워낭소리> 역시 <과속스캔들>로 늘어난 관객을 바통 터치 받은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명료한 스토리와 기획으로 승부수
마땅히 볼 영화가 없었다는 게으른 분석으로는 영화의 흥행을 짚을 수 없다. 실제로 두 영화가 철저하게 영화 자체의 힘으로 승부를 뒀다는 점이다. MK픽쳐스의 심재명 대표는 <과속스캔들>이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이야기하는 명료한 스토리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깔끔한 완성도를 평가한다. 여기에 <과속스캔들>이 관객이 보기에 무리없는 소박한 웃음을 전달한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흥행의 보증수표였던 조폭코미디가 폭력과 욕설을 코믹의 주재료로 삼는다면, <과속스캔들>의 설정은 파격적이지만 따뜻한 웃음을 사용해 관객의 지지를 받았다. 철이 덜 든 아버지 차태현, 여성스러움과 터프함을 동시에 갖춘 딸 박보영, 어른보다 어른스런 손자 왕석현의 삼각구도는 별다른 장치 없이도 큰웃음을 유발하는 재료가 됐다. 빅스타와 조폭코미디라는 흥행코드를 등에 업고 설 연휴 개봉한 조폭코미디 <유감스러운 도시>가 기존의 소재와 스토리를 답습, 관객의 외면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워낭소리> 역시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없었던 방식을 차용해 콘텐츠의 차별화를 꾀한다. <워낭소리>는 인터뷰로 구성된 기존 다큐멘터리와 달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라는 캐릭터를 확실히 세우고 나갔다. 묵묵부답의 할아버지가 극의 중심이라면, 땅만 보고 걷는 소는 할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다. 여기에 사사건건 관계를 긴장시켜주는 할머니의 언어가 첨가된다. 영화의 변수로 작용한 할머니의 추임새는 기존 다큐멘터리의 정갈한 내레이션을 대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에 기반한 다큐멘터리에서 벗어나 따로 대본을 주거나 연출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충렬 감독은 이같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만한 할아버지와 소를 전국 방방곡곡에 수소문했다고 한다. 탄탄한 캐릭터 덕분에 관객은 <워낭소리>를 더이상 기존의 도덕적 설명이 중점이 되는 다큐멘터리로 인식하지 않았다. 형식은 다큐멘터리지만 <워낭소리>에서 관객은 TV에서 보던 그 옛날 <전원일기>, 혹은 극영화에 버금가는 재미와 감동을 얻는다. ‘독립영화치고 잘된 영화’가 아닌, 영화 자체로 파급력을 가지는 이유다.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진진의 김난숙 대표는 “저예산으로 제작하는 독립영화는 음질, 화질, 포커스 등에 약점이 수반된다. 그러나 <워낭소리>처럼 하려는 이야기가 분명하다면 상업영화만큼의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전했다. 두 영화의 성공은 기획과 스토리만 확실하다면 안되는 영화가 없다는 또 하나의 전례를 만든 것이다.
‘가족’이란 코드로 웃기고 울리고
상업영화 진영, 독립영화 진영이라는 태생은 다르지만, 관객이 두 영화를 받아들이는 코드는 다름 아닌 ‘가족’이다. <과속스캔들>은 30대의 아버지, 20대의 딸, 6살 손자라는 기이한 가족이 일으키는 해프닝으로 회자되며, <워낭소리>는 할아버지와 소, 할머니라는 동물과 인간 가족이 펼치는 감동 가족물로 각광받는다. 10년 전 IMF의 외환위기 당시 자신을 믿어주는 것은 결국 가족이었다는 믿음이 경제불황을 맞은 지금의 대한민국 소비자의 심리에 그대로 재현된 셈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불황의 시기에는 준거집단을 위한 위로가 필요하다. 할리우드에서 최근 블록버스터 <작전명 발키리>보다 가족영화 <말리와 나>가 흥행한 것이 좋은 예다. 가족영화의 역할은 거기 있다. IMF 때 흥행한 <주유소 습격사건> 같은 코믹영화가 웃음으로, <약속> <편지> 같은 멜로영화가 울음으로 가족을 위로해줬다면, 지금의 경제위기에서는 <과속스캔들>이 코믹의 역할을 <워낭소리>가 멜로의 울음으로 각각 그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라고 전한다.
즉 두 영화 모두 가족영화를 가족영화로 표방하지 않는 충무로의 변화가 수반되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읽힌다. MK픽쳐스의 심재명 대표는 두 영화가 모두 가족 코드를 지녔지만 가족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영화스러운 영화를 표방해주는 수식이었다. 가족영화를 표방하는 순간, 뻔한 감동을 주는 영화라는 공식이 성립하고 성인관객에게서 벗어나게 된다”며 “두 영화 모두 내면은 변형된 가족영화지만, <과속스캔들>은 파격적인 설정으로 또 <워낭소리>는 <집으로…> 같은 (젊은 관객층에게) 신기한 볼거리로, (중·장년층 관객에게) 추억과 향수로 다가갔다”는 점이 흥행의 돌풍을 일으킬 요소로 작용했음을 강조한다.
물론 가족애를 찾는 영화에 대한 편식은 불황코드를 떠나 관객의 끊임없는 필수선택사항이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2000년대 들어서 이른바 흥행 기록을 한 영화는 모두 가족을 소재로 하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는 비극적 역사에 희생된 가족사를, <괴물>은 괴물에게 뺏긴 딸을 찾는 가족의 사투를, <왕의 남자> 역시 유사가족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족영화다.” 동물과 인간이라는 변칙적인 가족형태, 보수적인 관점으로 볼 때 비틀어진 <과속스캔들>의 가족이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은 위의 흥행작들이 보여준 ‘가족의 사투’와 같은 맥락이다. <과속스캔들>은 가족구성원에게 일부러 근친상간적인 스캔들을 삽입했으며, <워낭소리>는 우울한 가족이지만 동물과 연대하면서 또 다른 유토피아를 제시해줄 것처럼 포장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가족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가 있다. 두 영화 모두 내러티브 전개 과정에서 위기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가족이라는 주제로 봉합과 화해가 전제된다면, 그 사이의 우여곡절은 오히려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소비위축기의 구매패턴 변화도 한몫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유입은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의 흥행 신드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또 한 가지의 원인이다. CGV 이상규 홍보팀장은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로 인해 평소 극장에 안 보이던 40대 관객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극장에서 체감한 분위기를 전한다. 실제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CJ CGV에서 조사한 두 영화의 관객 점유율에 따르면 <과속스캔들>은 개봉 초 20대 관객이 우세했던 반면, 입소문이 퍼진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30~60대 관객의 점유율이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개봉 첫주 40대가 9.8%, 50대가 1.3%의 관객 점유율을 나타낸 반면, 1월26일부터 2월1일 사이에는 40대가 24%, 50대가 3.5%로 부쩍 늘었다. 이는 일반적인 평균 점유율(40대 17%, 50대 2.5%)보다 월등히 높다.
이미 초반부터 40대 관객의 수요를 확인한 <워낭소리>의 경우, 같은 기간 20대 관객은 33.7%로 평균(42.6%)보다 낮지만 40대 22.1%, 50대 4.4%의 점유율로 중장년층 관객을 확보하고 있다. 이상규 홍보팀장은 중·장년층 관객의 확산에 대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웃음과 감동 코드”를 든다. “개봉 2주차부터 <워낭소리>가 CGV 예매 1위를 한 것은 이 영화의 관객층 중 유독 중·장년층을 포함한 가족이 많기 때문이다. ‘효도 한번 해볼까’ 하는 동기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데 영화표가 없으면 낭패니 철저히 예매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예매율이 곧 흥행과 직결되는 만큼 이는 하나의 실타래처럼 흥행의 원인으로 엮인 셈이다.
중·장년층 관객의 유입뿐 아니라 전체 영화 관객의 증가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설 연휴라는 특수가 겹치긴 했지만,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10일 발표한 ‘2009년 1월 한국영화산업 통계 자료’에 따르면 1월 전체 관객 수가 지난해에 비해 무려 27.6%나 성장했다고 한다. 불황으로 인한 불안심리에 이어 소비심리 위축도 두 영화의 흥행에 한몫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특집기획 ‘세계 금융위기 파장과 전망’에 따르면 ‘경제불황기에는 시간과 비용에 대한 가치를 따지는 합리적인 구매 패턴이 나타난다’. 여가 활동 역시 이 원칙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경우다. 적은 돈으로 심리적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분출해야 하니, 지난해까지 강세를 보였던 해외여행과 같은 값비싼 여가보다는 영화와 드라마 같은 저렴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수요가 몰리는 것이다. 쇼핑가와 함께 형성된 멀티플렉스의 확장은 그야말로 가족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가속으로 심어주었다. 롯데 임성규 과장은 “멀티플렉스의 초기 모델이 주로 젊은층의 공간이었다면, 2차 모델은 편한 차림으로 갈 수 있는 주거공간이었다. 노원, 일산 등 주거지역에 설립한 2차 모델이 자리를 잡은 만큼, <과속스캔들>이나 <워낭소리>같은 영화들을 선호하는 관객도 늘었다는 건 어느 정도 타당한 결과다”라고 전한다.
분석요소를 모아 체에 거르면 결국 남는 것은 신드롬이다.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가 각자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이 영화의 흥행 이면에는 누구도 저지할 수 없는 사회적인 신드롬이 뒷받침된다. <과속스캔들>의 경우 관객 동원을 위해 물량공세로 밀어붙이는 영화들에 대한 반발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관객은 이 영화를 거품을 뺀 한국영화의 모범으로 인식하고, 요란한 마케팅의 영향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영화에 대한 확신을 더한다. 낡은 것은 가차없이 버리는 MB정권 아래, 잃어버린 가치에 대한 소중한 일깨움을 준다는 의미에서 <워낭소리> 역시 관객이 소중히 지켜야 할 영화로 인식된다. 지금도 수많은 커뮤니티를 통해 ‘<워낭소리> 보기’ 운동이 진행되며, 다음의 아고라를 통한 ‘<워낭소리> 100만 보기’ 운동으로 흥행을 멈추지 않는 점은 이같은 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신드롬은 거품이 아니다. 관객의 요구가 폭발하는 지점이 충족되는 순간, 신드롬은 흥행의 제1법칙으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