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워낭소리> 흥행분석- 22만을 향한 치밀한 전략전술
2009-02-24
글 : 이화정

입소문만으로 상영관을 늘리다니, 놀랍다

놀랍다. 하지만 <워낭소리> 흥행에는 상영관의 정교한 전략이 작용했다.

“원래 목표 관객 수가 22만명이었다.” <워낭소리>의 고영재 PD는 독립다큐멘터리로 전례없는 22만 관객을 예상했다. 작품에 대한 자신감은 이미 있는 상태. 그가 수립한 극장 확장 원칙만 잘 지켜진다면 꿈의 수치가 아니었다. 그러자면 초기 입소문을 토대로 한 장기상영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씨네큐브, 하이퍼텍나다, 씨너스 이수, 아트하우스 모모, CGV 무비꼴라쥬 등 7개 아트극장이 시작이었다. 와이드 릴리즈로 소구되는 기존 상업영화의 권력구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영으로 초기 관객의 집중도를 확인했다.

개봉 첫주 7500명의 관객을 동원, 15위로 좋은 반응을 이끌자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프린트 요구가 시작됐다. 그러나 무분별한 극장 늘리기 대신 개봉 첫주 7개관에서 유지했던 40~50%의 점유율을 그대로 유지, 입소문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디지털 방식이라 빠르게 상영관을 늘리기 좋은 반면 디지털 시스템이 갖추어진 극장이 아니면 상영할 수 없는 한계도 존재했다. 7개관이 13개관으로 다시 20개관으로 또 40개관으로 늘어 현재 <워낭소리>의 극장 수는 80개로 늘며 흥행 신드롬을 달구었다. <워낭소리>의 순차적 상영관 확장은 단순히 영화 한편의 흥행을 떠나 극장 배급문화에 대한 해소라는 긍정적 반응을 낳았다. 영화사 진진의 김난숙 대표는 “단 한개관에서 개봉해도 관객반응이 좋으면 개봉관을 늘리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소규모 개봉, 와이드 릴리즈로 이분화된 방식을 고수하는 한국의 극장가가 변화할 여지를 안겨준 케이스다”라고 의미를 전한다.

눈물이 있었기에 <워낭소리>의 신화도 가능했다

맞다. 하지만 처음부터 ‘감동’을 최고의 요소로 뽑은 건 아니다.

<워낭소리>는 너무 많은 요소로 마케팅에 혼선을 빚었다. 고향에 대한 순수, 할머니의 웃음, 소와 인간의 우정과 가족애, 그리고 눈물이 뒤섞였다. 어느 하나 솎아내기에 어려운 <워낭소리>의 장점이었다. 영화를 한눈에 설명하는 비주얼 포스터와 예고편 제작은 마케팅팀에 내려진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마케팅을 총괄한 인디스토리의 조계영 팀장은 “다른 걸 다 거르더라도 웃음과 눈물 중 어느 걸 택할지 혼선이 왔다. 그런데 TV 예능프로그램과 <과속스캔들>의 흥행으로 관객이 웃음은 어느 정도 충족했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예고편만 봐도 눈물이 나는’ <워낭소리>의 ‘감동’버전 예고편을 제작했다.

때마침 KBS <영화가 좋다>에서 5분 넘게 편집된 <워낭소리>를 소개해준 것도 순기능으로 작용했다. 내레이션과 함께 역시 감동버전으로 편집된 5분 영상물은 관객에게 예고편의 기능을 대신 해주었다. 개봉 전 영화 마니아가 비교적 많이 모인 부산영화제를 찾은 관객에게 손수건을 나눠주었을 때 효과가 없었던 반면, 개봉관을 찾은 관객에게 ‘감동’ 코드는 주효했다.

마케팅비가 부족한 영화라 별다른 홍보가 없었다

아니다. 작지만 알찬 홍보가 착착 진행됐다.

제작비 1억원의 <워낭소리> 홍보비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받은 4천만원과 PD의 대출금이 전부였다. 대대적인 마케팅은 불가능했다. 영화지와 무가지 광고가 전부. 적은 비용으로 입소문을 낼 소소한 아이템들이 필요했다. ‘소의 해’의 포문을 여는 작품을 적극 활용했다.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소이름 짓기’ 이벤트 등을 개최했고, 올해 소띠인 37살 관객의 경우 부모님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시기라 <워낭소리>의 가치가 손쉽게 전달됐다.

그러나 <워낭소리> 홍보팀이 분석하는 흥행의 비기는 따로 있다. 바로 개봉전 관객 시사였다. 영화에 대한 확신으로 <워낭소리>는 다른 독립영화보다 훨씬 많은 2천명 대상의 일반시사를 진행했다. 가장 큰 공로는 관객 700명을 동원한 ‘서울 메트로 시사’였다. 서울 메트로가 주최하는 ‘서울 메트로 시사’는 대관 비용 정도만 부담하면 극장상영회를 비롯해 지하철 1~4호선 역내에 2주간 4~5장의 포스터가 붙는 그야말로 횡재 홍보다. 보통 대작영화들이 선정 대상인데, 마침 하늘이 도왔는지, ‘서울시민 대상인데 너무 큰 상업영화만 상영한다’는 시민들의 항의가 일던 때였다. 소의 해와 농촌 등 여러 의미를 지닌 <워낭소리>가 수혜를 받게 됐다. 적은 비용으로 노출효과를 얻은 홍보팀은 이 기회를 적극 활용, <워낭소리>가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임을 착실히 알렸다.

이충렬 감독의 끈기와 노력이 없었다면 <워낭소리>도 없다

맞다. 그러나 고영재 PD의 노하우가 뒷받침되었기에 더 큰 결실을 낳았다.

고영재 PD는 <워낭소리> 이전 다큐멘터리로 최고 흥행을 기록한 <우리학교>의 제작을 총괄한 PD이기도 하다. <송환> 때부터 입소문이 중요한 다큐멘터리의 특징을 파악한 그는 <우리학교>에 공동체 대안상영을 도입, 새로운 관객동원 방식을 선보였다. 보통 감독 1인이 제작하는 다큐멘터리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상업영화에서나 제 몫을 하는 PD의 역할이 가미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는 감독과 PD의 신뢰가 전제된다면 좀더 좋은 결과물을 얻게 된다고 확신한다. 관객이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구분하지 않듯 독립영화 역시 최고의 퀄리티를 내기 위한 경험을 갖춘 시스템을 둬야 한다. 경험을 갖춘 PD들의 참여에 대해 그는 “서로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 각자의 전문 영역을 적용해야 한다. PD를 감독의 종속으로 여긴다면 바람직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전한다. 제작가 겸 프로듀서로 참여한 <농민가> 개봉을 앞두고 그는 <워낭소리>와 또 다른 상영방식을 염두에 둔다. 영화별 전략 수립 역시 그의 몫이다.

‘사생활 방해말라’ 블로그 일파만파

<워낭소리>는 끊임없는 이슈로 입소문을 확장해갔다. ‘소띠 해’라는 키워드로 8시 뉴스에 소개됐고, 5만명이 넘어가자, 방송사들은 소띠 해에 볼 만한 영화로 <워낭소리>를 소개했다. 10만 관객을 돌파하자 다큐멘터리의 신드롬, 이변으로 인식되며 각 매체의 인터뷰가 쇄도했다. 또 선댄스영화제 참가는 국제영화제의 호평이라는 측면에서 또 한번 이슈가 됐다.

그러나 제작진조차 예상 못한 이슈가 있었다. 다름 아닌 고영재 PD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게재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생활 방해를 자제해달라’는 호소문을 올린 것이다. 하루 평균 5천~6천명, 주말 1만명이었던 블로그 방문자는, 이 게시물의 포스팅한 날 방문자 2만명을 돌파했다. 언론은 일제히 호소문에 관한 기사를 실어 날랐고, 영화를 미처 보지 못한 관객의 <워낭소리>에 대한 관심은 또 한번 증폭됐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방해하지 말자’는 네티즌의 움직임까지 일 정도였다. 실제 이 호소문 기사를 보고 극장을 찾았다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홍보비가 적게 책정된 <워낭소리> 같은 경우 블로그의 효과는 막대했다. 일반 상업영화가 마케팅팀 주도 아래 의례적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워낭소리>는 영화의 처음과 끝을 아는 PD가 직접 참여, 관객과 소통하는 장으로 기능한 것이다. 관객의 허심탄회한 물음에 대한 진심어린 답글은 영화의 진정성과 함께 어우러졌다. 블로그뿐만 아니라 기존 커뮤니티도 <워낭소리>의 입소문에 한몫했다. 영화와 상관없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는 ‘간만에 다 같이 <워낭소리>나 보러 가자’는 번개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워낭소리> 100만 보기 운동 역시 다음의 아고라를 통해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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