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장쯔이] 선녀가 아닌 나 자신을 찾겠다
2009-04-03
글 : 이화정
사진 : 이혜정
남장배우 맹소동 역의 장쯔이

자로 잰 듯 빈틈이 없다. <매란방>의 장쯔이는 몸에 꼭 맞는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로 그녀의 여성성을 한껏 드러낸다. <화양연화>에서 장만옥의 목선을 강조했던 우아한 치파오도 장쯔이가 <2046>에서 입었던 섹시함을 발산하는 치파오도 아니다. 짧은 소매, 무릎 아래를 살짝 덮는 단조로운 패턴의 치파오는 그 자체로 캐주얼하며 생동감있다. <연인>과 <야연> 등 무협물의 신비로운 여성에게서 오는 위화감도 <게이샤의 추억>의 게이샤가 풍기는 평범하지 않은 색깔도 이 평상복에선 찾아볼 수 없다. <매란방>의 치파오는 장쯔이를 위해 특별히 재단된 특별한 선이 아닌, 이미 있는 기성복에 그녀 스스로 몸을 맞춘 듯 편안한 선에 가깝다. 그리고 이 평범한 치파오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태세를 한 ‘세계의 배우’ 장쯔이를 단단하게 맨땅에 고정시켜준다.

청나라 최고의 경극배우이자 중국 전 인민의 가슴속 스타 매란방. <매란방>은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이 연기했던 ‘데이’의 실제 모델인 경극배우 ‘매란방’의 일대기를 되짚는 작품이다. 장쯔이는 경극을 위해 평생을 바쳐야 했던 매란방이 일생 다시 올 수 없는 찰나의 사랑에 빠진 경극배우 ‘맹소동’을 연기한다. 한 남자에게 지울 수 없는 운명이자 상처로 남은 여자지만 작품 속 그녀의 비중은 전체 시나리오 한권에서 고작 몇십 페이지에 불과하다. 첸카이거 감독은 둘 사이에 손을 잡는 짧은 제스처조차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의 사랑을 영원과 불변의 중간 지점에 박제해버린다. 그리고 데뷔 때부터 어느 작품에서나 늘 ‘꽃’이 되었던 배우는 이 영화에서 매란방을 연기하는 여명에게 선뜻 그 아름다움의 자리를 내준다. 단단하고 야무졌던 표정은 풀어지고, 한층 여유로운 미소로 그녀는 상대를 조용히 지켜본다.

“맹소동을 연기한 건 운명이었다.” 모든 캐릭터는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는 지론을 가진 그녀에게조차 맹소동은 특별했다. “영화화되기 전 맹소동에 관한 전기를 읽고 있었다. 이걸 영화화하면 좋을 것 같다 생각했는데 마침 첸카이거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맹소동의 발자취 모든 것이 장쯔이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매란방의 연인으로서 지녔던 슬픈 로맨스뿐만 아니라 남장을 한 경극배우로 살아가는 배우로서 그녀의 모습 또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한 배우의 삶에서 그녀는 같은 연기자로서 강한 연결지점을 찾았다. “연기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 예술가의 삶을 얼마만큼 표현해줄 수 있을까, 그게 이번 작품의 숙제였다.”

매 작품, 과연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과제로 자신의 몸을 괴롭혀온 장쯔이다. 대작을 짊어지기에 가녀린 몸. 그녀는 자신의 몸을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시켜왔고, 쉽지 않은 역할을 자신의 체질인 양 소화해왔다. <매란방>에서도 그녀에게 내려진 특훈은 가혹했다. 촬영 두달 전부터 첸카이거 감독과 경극배우에게 경극 가수의 기술을 탄탄히 배웠다. “사실 영화 안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은 얼마 없다. 그런데 세세한 동작 하나 허투루 한 게 없을 정도로 진짜 경극배우가 되려고 했다.” 부채를 든 손의 움직임, 손동작 하나까지 철저히 계산된 연기였다. 맹소동의 연기는 어려운 과제였지만 촬영 전 단단히 준비해 둔 덕에 그 결과는 배우로서 그녀의 존재를 자신있게 해줄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작은 역할이지만 맹소동은 그래서 장쯔이에게 소중하다.

장이모 감독의 발탁으로 <집으로 가는 길>에서 신데렐라의 신고식을 치른 이후, 믿기지 않지만 그녀의 연기 경력도 어느덧 10년이 돼간다. 그간 그녀는 잇단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 오리엔탈리즘으로 점철된 할리우드의 캐스팅 방식을 탈피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코믹과 멜로, 액션 어느 하나 선을 긋지 않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연기뿐만 아니라 8월 개봉을 앞둔 한·중 합작 로맨틱 코믹 드라마 <소피의 복수>에서는 PD 역할까지 도전했다. 트레일러가 필요한 배우 입장에서 제작비 절감을 위해 트레일러를 줄이자는 제안을 해야 하는 PD로 역할을 바꾸면서 이제 영화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도 한뼘쯤 유연해졌다. 곧 톰 크루즈와 호흡을 맞출 로맨틱코미디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녀는 최근 자신이 누리는 여유로움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누가 그러더라. 내가 선녀처럼 손을 잡기 힘들다고. 그런데 가발도 특별한 의상도 준비하지 않으면서 이젠 나 자신을 찾아가는 것 같다. 나도 평소 편안하고 재밌는 사람이라는 원래 모습을 말이다.”

최근 그녀에게 따라붙는 잇단 열애설과 파파라치의 시선은 그래서 그녀의 안중에는 없다. “배우지만 내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살고 싶진 않다. 그런 외부적인 상황들이 나를 옭아맨다면 그땐 나도 맞서 싸우겠다.” 한편으로 그건 지금 그녀를 중국 최고의 여배우로, 또 일등으로 치켜세워주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그녀의 자각이다. “지금은 정점이라고 다들 나를 치켜세워주지만, 그 최상의 자리가 영원할 수는 없다. 일에 있어서의 가치만큼 스타가 아닌 내 삶도 지켜야 할 내 몫이다.” 배우로서의 가치와 자연인으로서의 삶. 이 어려운 균형잡기는 그녀의 숙명이다. 매란방의 연인으로 분했지만, 그녀 역시 매란방의 고뇌를 가슴 깊이 이해하는 배우이자 스타이기 때문이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권혜미·의상협찬 엘리타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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