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영화가 돌아왔다. 종적을 감췄던 영화 대국의 귀환이다. 작년의 <일 디보>, 올해 부산에서 공개되는 <아이 엠 러브>는 젊은이들이 선배의 명성에 짓눌리지 않고 새로운 영화 언어를 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산나 니키아렐리의 데뷔작 <우주비행사>도 새로운 물결에 훌륭하게 한 몫을 차지할 영화다. <우주비행사>는 소련과 미국의 우주 경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를 배경으로 15살 공산당원 소녀 루치아나의 성장을 다루는 경쾌한 소극이다. 루치아나는 소련의 우주 진출에 열광하며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영웅시한다. 하지만 엄마는 우파 부르주아와 결혼해 신경을 벅벅 긁고, 로마청년공산당에도 성차별적인 망나니들이 득시글하다.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니키아렐리는 “소련과 미국의 우주 경쟁에 대한 개인적 매혹으로부터 시작된 영화”라고 말한다. 그녀는 최초로 우주비행을 마치고 생환한 두 마리의 개, 쥐, 스무 마리 생쥐에 관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군사적인 경쟁이긴 했지만 우주를 향한 이상의 실현에는 분명 로맨틱한 구석이 있지 않나.” 확실히 캐나다에서 발굴한 60년대 소련의 영상들과 몽상가적 음악이 어우러지는 장면은 고전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듯 로맨틱한 데가 있다. 동시에 <우주비행사>는 지상에도 단단하게 발을 딛고 있는 작품이다. 루치아나는 이상적인 소녀상이 아니라 인간적인 약점으로 가득한 당돌한 꼬맹이로, 망나니와 사귀기 위해 같은 여자를 배신하는 일도 별 무리 없다. “진보적인 단체에서도 영화계에서도 여자들은 웬일인지 서로 등을 돌린다. 솔직히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다.(웃음) 그런 현실을 영화에 담아내고 싶었다.” 남성적인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경쟁하는 건 그렇게나 힘든 일이다. <우주비행사>는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꿈을 꾸는 여자들에게 바치는 애틋한 연서 같다.
덧붙이자면,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의 이름은 최초의 우주인 이름을 딴 ‘가가린’이다. 루치아나가 고양이를 입양했다면 무릇 지어줬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