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올해의 외국영화]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근사한 퇴장
2009-12-31
글 : 씨네21 취재팀

1위 <그랜토리노>

“이것이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방식이다.”(허문영) 압도적인 박수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토리노>가 올해의 영화 1위로 꼽혔다. 노장에게 바치는 예우의 결과가 아니다. 한 남자가 사람으로서,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살았던 인생이 어떻게 영화적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적 신화가 된 이스트우드 자신에 대한 감동적인 성찰”(홍성남), “노쇠한 자신의 육체를 주제로 삼아 만신창이가 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해찰에 이르는 영화”(장병원) 등의 평가도 그에게서 비롯됐다. “백인 보수주의자의 주인의식을 글자 그대로 행동에 옮겼을 때 나타나는 숭고한 결과”(이창우)란 평가처럼 정치적 입장 차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도 <그랜 토리노>의 영화적 성취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근사한 퇴장”(김도훈)이자, “가장 강렬하고 마음 찢어지며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올해의 엔딩”(남다은)이었다.

2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동참하지 않고는 못 견딜 쿠엔틴 타란티노의 새로운 장난질이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2위로 꼽힌 데에는 타란티노의 재치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에 대한 안도감이 있는 듯 보인다. “아직도 (타란티노가)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은 무한대다.”(김봉석)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소재를 막론하고 자신의 취향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타란티노의 강점이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세계사와 영화사까지 자기 방식대로 유희할 수 있는 타란티노의 경지”(이현경)란 평가는 그에 대한 찬사다. 물론 “영화광이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건 모든 관객에게 평등한 즐거움과 쾌감”(송경원)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보여준 타란티노 영화의 여전한 매력이었다.

공동3위 <디스트릭트9>

“2009년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김종철) <디스트릭트9>은 요하네스버그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그린 SF영화다. 지금껏 외계와의 조우를 그린 할리우드 SF가 보여준 모든 요소가 남아공이란 지역적 색채와 더해져 오락적인데다, 지적이기까지 한 SF영화를 창조해냈다. “인종문제나 신화, 혹은 성경에 대한 암시가 강해 뜯어보아도 재미있고 스토리라인을 그저 훑기만 해도 흥미롭다.”(이지현) 뿐만 아니라 <클로버필드>에 이어 “매스미디어의 자극에 마비된 관객의 감각에 충격요법이 필요하며 그것이 설득적이라는 걸 증명했다”(송경원)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공동 3위 <24시티>

지아장커의 <24시티>는 전작인 <스틸 라이프>처럼 사라져가는 공간과 그 때문에 소멸을 강요받는 인간의 기억을 다룬 작품이다. “토건국가 국민들의 머스트 시!”(김소영)란 평가는 <24시티>가 한국의 평자들에게도 잊혀지지 않을 잔상을 남긴 이유를 대변할 것이다. <씨네21> 필진들은 타란티노만큼이나(혹은 그보다 더) 영화란 매체 자체를 생각하는 지아장커의 고민 또한 높이 평가했다. “영화의 진실과 윤리에 관한 우리 시대의 가장 치열한 탐구 가운데 하나”(허문영)거나,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대와 그 시대를 사는 인간을 품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들었다”(남다은)는 평가는 지아장커가 겪었을 고뇌의 시간을 더듬고 있다.

4위 <퍼블릭 에너미>

<퍼블릭 에너미>와 <로나의 침묵>이 각축을 벌였다. 그 뒤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가 이었다. <퍼블릭 에너미>가 좀더 강점이 있다면, 193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갱스터 존 딜린저란 소재와 조니 뎁이란 배우, 그리고 감독 마이클 만이 모두 영화적인 성취를 지향하고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영화는 호방한데다 기품있는 갱스터의 반영웅적 행각과 사랑, 파멸을 한데 담는 한편, 마이클 만의 연출에 힘입어 “황홀하고 우아한 영화적 움직임”(남다은)을 그려냈다. 평론가 홍성남은 “마이클 만의 영화가 여전히 매혹을 빚어낸다”고 평했다. 디지털 기술로 투영한 어느 갱스터의 이야기는 그처럼 손으로 빚어낸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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