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현실을 소설적으로 파고들면 그 끝에 범죄소설이 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미국의 급소에 대해 쓰고 싶다면, 아무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 미국의 다른 얼굴에 대해 쓰고 싶다면, 범죄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어 있다.” 데니스 루헤인은 <살인자들의 섬> 출간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범죄소설 작가로 한정지어 나를 표현하는 데 불만은 없다. 하지만 나는 도시의 현실에 관한 소설을 쓴다. 챈들러와 해밋의 전통을 따르는 동시에 윌리엄 케네디(<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로 1984년 퓰리처상 수상)나 피트 덱스터(<멀홀랜드 폴스>)의 전통도 따르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마틴 스코시즈가 데니스 루헤인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충격적인 범죄, 아찔한 속도감, 눈이 번쩍 뜨이는 식의 반전이 다가 아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정신적 외상을 키운 사회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언뜻’ 보면 배우 에이단 퀸을 닮은 데니스 루헤인이 범죄소설에 매혹된 터닝포인트는 제임스 크럼리의 <라스트 굿 키스>(1978)였다. 이후 80년대 후반 대학 재학 중에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달리아>와 제임스 리 버크를 읽으면서 장르 안에 있지만 장르를 넘어서는 힘을 가진, 이전과 다른 범죄소설에 빠져들었다(그들의 후예가 마이클 코넬리, 조지 펠레카노스, 데니스 루헤인이다). 그러다 문예창작으로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던 중 3주 동안 쓴 뒤 처박아두었던 소설이 4년 뒤에 빛을 보았다. 데뷔작 <전쟁 전 한잔>(1994)이었다. 보스턴의 남녀 사립탐정 콤비 패트릭 켄지와 앤지 제나로를 주인공으로 한 ‘켄지&제나로’시리즈의 시작이기도 했던 이 책은 셰이머스상을 수상했고, 이후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신성한 관계> <가라, 아이야, 가라> <비를 바라는 기도>를 비롯한 속편으로 이어졌다.
시리즈 밖 첫 소설이었던 <미스틱 리버>와 차기작 <살인자들의 섬>은 비평, 흥행, 그리고 영화화의 모든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미스틱 리버>가 비장르적인 매력으로 호평을 받은 직후 그 반대의 소설을 쓰고자 했던 그에게 <살인자들의 섬>의 지향점은 분명했다. 고딕물과 B급영화, 펄프소설들에 오마주를 바치는, “브론테 자매의 소설과 돈 시겔의 <신체 강탈자의 침입>이 뒤섞인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이후 그는 희곡인 <코로나도>를 써 2005년 뉴욕 무대에 올렸고, 하버드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서 문예창작 강의를 지도하기도 했으며, <HBO>의 TV드라마 <더 와이어>의 각본을 몇번 쓰고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소설을 시나리오화하는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내가 낳은 자식을 수술하고 싶지는 않다”는 이유였다. 올 2월에 가진 인터뷰에서 데니스 루헤인의 차기작은 ‘켄지&제나로’ 시리즈가 될 것임을 밝혔다. 켄지와 제나로가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억지로 불러내지 않겠다던 루헤인이 11년 만에 쓰는 시리즈 복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