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아일랜드>의 첫 공포는 섬을 벗어날 수 없다는 설정으로부터 온다. 마틴 스코시즈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셔터 아일랜드>와 마찬가지로 고립된 공간이 배경인 여러 고전영화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그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셔터 아일랜드>의 어떤 장면과 겹치는지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있을, 고전 호러영화 4편.
<혐오> Repulsion, 1965
감독 로만 폴란스키, 출연 카트린 드뇌브
<악마의 씨> <테넌트>로 이어지는 ‘로만 폴란스키 아파트 3부작’의 첫 작품. 정신분열증으로 서서히 미쳐가는 여자의 모습을 폐쇄된 공간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소 성적 결벽증을 가지고 있던 캐롤(카트린 드뇌브)은 함께 살던 언니가 여행을 떠난 사이 아파트에 칩거한다.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녀의 강박증은 정신분열로 이어지고, 캐롤은 아파트에 찾아온 집주인과 남자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 영화에서 두번의 살인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캐롤이 환상으로 보는 아파트 내부의 변화다. 갈라진 벽, 그로부터 뻗어나오는 손들, 부패한 토끼의 이미지는 분열하고 있는 캐롤의 내면을 상징한다. <혐오>의 이같은 기괴한 환상성은 <셔터 아일랜드>에서 테디가 보는 비현실적인 장면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충격의 복도> Shock Corridor, 1963
감독 새뮤얼 풀러, 출연 피터 브렉, 콘스탄스 타워스
<셔터 아일랜드>의 줄거리와 가장 닮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살인사건의 전말을 밝혀 특종을 잡아내고 싶은 기자 자니 배릿(피터 브렉)이 정신병자로 위장해 병원에 잠입한다. 그는 결국 살인자를 밝혀내나, 진짜로 미친 사람이 되어 정신병원에 머물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갇힌 공간의 공포가 드러나는 순간은 카메라가 정신병원의 복도를 길게 잡아낼 때다. 병원 속 정신병자들을 훑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그곳의 긴 복도를 비추는 <충격의 복도> 속 시퀀스는 악몽 같은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특히 소나기가 내리는 복도에서 자니가 홀로 오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박찬욱 감독이 “<벤허> 10편을 줘도 <충격의 복도> 한편과 안 바꾼다”라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명장면이다.
<죽은 자들의 섬> Isle of the Dead, 1945
감독 마크 롭슨, 출연 보리스 칼로프, 엘렌 드루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한 섬에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발 류튼 제작의 공포영화다. 섬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화들이 그렇듯 이방인이 주인공이다. 발칸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인 장군 니콜라스(보리스 칼로프)는 종군기자 올리버와 함께 아내의 무덤이 있는 섬으로 향한다. 하지만 섬에 퍼진 정체불명의 전염병 때문에 그들은 전쟁터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곳에 머무른다. 니콜라스는 곧 섬의 간호사인 테아가 흡혈귀의 일종인 보르볼라카가 아닐까 의심하고, 그 가설에 점점 집착하게 된다. 감독 마크 롭슨은 단지 그림자와 비명소리, 어둠을 활용해 관객의 두려움을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죽지 않은 사람을 생매장한다는 설정에선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가 엿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후반부, 테아가 노랫소리에 이끌려 어두컴컴한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은 <셔터 아일랜드>에서 테디가 목소리에 이끌려 정신병동을 헤매는 장면과 겹친다.
<베들램> Bedlam, 1946
감독 마크 롭슨, 출연 보리스 칼로프, 안나 리
<베들램>은 발 류튼-마크 롭슨-보리스 칼로프 조합의 또 다른 RKO(발 류튼이 제작자로 소속돼 있던 영화사) 영화다. 학대로 유명했던 런던의 동명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환자들을 자신의 노리갯감으로 삼는 악독 병원장 심즈(실제 병원장 존 먼로를 토대로 보리스 칼로프가 연기했다)와 그에 맞서는 여주인공 넬 보웬(안나 리)에 대한 이야기다. B급 호러영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길 원했던 발 류튼은 이 영화가 좀더 대중적인 영화로 보이길 원한 듯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베들램>은 RKO가 제작한 여느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고풍스러운 영국 시대극 느낌으로 완성됐다. 하지만 심즈 원장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병원에 갇힌 넬의 정신병원 장면에서는 발 류튼의 장기인 명암의 근사한 조화가 여지없이 발휘된다. 어둠 속에서 뻗어나오는 손이나 병원 안으로 짙게 드리운 쇠창살의 그림자, 갑작스러운 광인의 등장은 적절한 순간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이와 유사한 장면들을 <셔터 아일랜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