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우리 의사선생님>은 일본의 평단이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수차례 애정을 표한 작품이다. 제33회 일본아카데미에서 10개 부문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블루리본상, 키네마준보상, 닛칸스포츠영화상, 호치영화상 등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의 자리에 올랐다. 한명의 시골 의사가 감춘 비밀을 추적하는 이 영화의 매력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전작인 <유레루>에 이어 또 어떤 비밀을 전하고 있는가. 오는 4월29일 한국에서 개봉하는 <우리 의사선생님>을 미리 살펴보았다. 때마침 한국을 방문한 니시카와 미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쇼후쿠테이 쓰루베의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우리, 의사선생님>이란 제목, 혹은 <Dear Doctor>란 원제는 몇몇 일본 만화 속 의사들에게도 대입이 가능하다. 비범한 의술을 갖고 있으나, 대학병원 대신 창녀촌에서 무료진료를 했던 ‘닥터 쿠마히케’가 있고, 찾아오는 의사마다 떠나기 바빴던 외진 섬마을에서 의사에 대한 신뢰 회복에 힘쓴 ‘닥터 고토’도 있다. 어렸을 때 읽은 위인전에도 ‘우리 의사 선생님’은 있다. 슈바이처 박사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이 제목은 그럴싸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모두 의학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아무도 뻗으려 하지 않는 곳에 헌신했다는 점에서 존경받는 의사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물어보자. 그들은 과연 존경받는 명의였는가. 쿠마히케는 비범한 능력을 감추고 있었고, 고토 역시 도시의 대학병원에서 촉망받는 엘리트였다. 하지만 슈바이처가 노벨생리의학상이 아닌 노벨평화상을 받았듯이 그들에 대한 존경은 뛰어난 의술이 아닌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도 다시 반문할 수 있다. 그들은 정말 명의가 아니었는가. 유일한 의사였을 그는 명의든 아니든, 그곳의 사람들에게는 명의로 불렸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가 진짜 의사가 아니었다면, 얄팍한 지식과 충동적인 욕망으로 가운을 입고 있었다면, 모든 게 그의 놀라운 연기였다면…. <유레루>를 연출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신작 <우리, 의사선생님>은 이때 그에게 갖고 있던 환자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을 담는 영화다.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 몸을 맡겼던 것인가. 무엇보다도, 그를 의사로 만들었던 건 누구인가.
모두가 사랑했던 어느 ‘가짜’
영화가 시작하면, 이미 누군가 사라진 상태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애타게 찾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운만 남긴 채 사라진 그 남자는 이 마을의 의사 이노(쇼후쿠테이 쓰루베)다. 그는 1500명의 인구 가운데 노인이 절반인데도 4년간 무의촌이었던 이 마을에 정착한 유일한 의사였다. 이야기는 2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도시에서 의대를 갓 졸업한 소마(에이타)는 이노의 밑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눈에 이노는 언제나 “환자의 눈을 보고, 환자의 형편을 생각하며, 환자의 입장에서 가장 최선인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의사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통해 “증상만 보고 환자는 보지 않는” 도시의 진료방식에 환멸을 느꼈던 소마는 이노야말로 진정한 의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이노는 마을 사람들의 열광 속에서 웃는 법이 없다. 보람찬 진료생활이 무르익어갈 때 즈음, 이노는 홀로 늙어가고 있는 여인 가츠코를 진료한다. 그의 위에는 궤양인지, 암인지 모를 무엇이 있다. 이노는 여전히 같은 태도다. “당신에게 최선인 방법을 따르도록 하지요.” 그러자 가츠코가 말한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함께 거짓말을 해주세요.” 지난 4년을 이 마을에서 존경받는 의사로 살았던 이노는 그 순간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환영에서 깨어난다.
언뜻 <우리, 의사선생님>은 앞서 설명한 일본의 몇몇 의학만화들의 특징을 따르고 있는 듯 보인다. 이노와 소마가 겪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흐뭇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활력을 갖고 있다. 진심을 다해 치료하는 의사와 그를 신뢰하는 환자의 관계는 그처럼 만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상적인 상황일 것이다. 도시인인 소마가 편의점도 없는 이곳에 결국 애정을 갖게 되는 이유 또한 진심을 다해 치료하면, 환자들이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현대 의료시스템의 현실을 꼬집는 가운데 휴머니즘적인 드라마를 드러내는 익숙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노의 정체를 추적하는 미스터리가 함께하면서 <우리, 의사선생님>은 의료시스템이나 인간에 대한 신뢰 이전의 본질적인 질문으로 달려간다. 이는 <우리, 의사선생님>이 익숙한 제목과 달리 여타의 의학드라마와 전혀 다른 흥미를 일으키는 부분이다.
극중에서 형사들은 이노의 정체를 탐문하고 그가 가짜 의사였다는 걸 밝혀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의 정체는 그리 중요치 않다. 영화의 미스터리가 환기시키는 것은 이노의 정체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이 4년 동안 함께했던 이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사랑하는 그 남자에 대해 그들은 어떻게 아무것도 모를 수 있었을까. 영화의 첫 장면은 이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얀색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어두운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관객은 그의 뒷모습만을 보고 있다. 그는 의사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잠시 뒤 그가 마을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선생님이 왔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는 의사가 아니었고, 그저 한명의 주민이다.
이 장면은 ‘하얀색 가운’이 갖는 일반적인 기호와 그로 인한 오해를 보여주고 있다. 하얀색 가운은 의사를 뜻하고, 그 때문에 이 마을에서는 이노를 상징하는 강력한 기호다. 즉, 하얀색 가운이 있다면 이 마을에서는 누구나 의사로, 즉 이노로 오해받을 수 있다. 마을 이장은 이노와의 첫 만남을 설명하면서 “면사무소에서 건강검진을 할 때, 검진 트레일러 안에 있던 이노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때 이노는 하얀색 가운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한낱 기호로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이 마을에서 이노는 가는 곳마다 명의로서의 존경과 환호를 받았다. 영화는 그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밝은 에피소드 속에서 그에 대한 믿음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슬쩍 내비친다. 웃음에 가려져 있지만 이노가 이 마을의 신처럼 떠받들어진 이유는 사실상 환자를 이해해주는 의사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운이 좋았던 몇몇 순간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진짜 모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더 알 필요가 없었거나, 알면서도 필요에 의해 묵인했거나, 알면서도 믿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노를 진짜 의사로 만들었던 건, 그의 뛰어난 메소드 연기가 아니라 진짜 의사를 갖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열망과 그로 인한 오해된 믿음이었던 셈이다.
맹목적인 믿음의 양면성이란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지만, <우리, 의사선생님>은 그처럼 유머와 함께 조응한 오해의 게임을 통해 미스터리적인 재미를 담아낸 영화다. 특히 이노를 연기한 쇼후쿠테이 쓰루베는 관객을 이 오해에 동참시키려 할 때, 절대적인 존재감을 갖는다. 일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남자로 통하는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약 7, 8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본의 국민엔터테이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일본 사람은 그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쉽게 친해지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쇼후쿠테이는 일본에서 선의와 즐거움의 기호인 셈이다. 그런데 과연 일본 사람들은 그를 잘 알고 있는 것일까? 니시카와 미와는 “남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냉철하고 비뚤어진 면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그를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주인공 이노와 100%의 싱크로율을 갖고 있는 그는 다른 나라보다도 일본 관객에게 더 깊은 오해를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 의사선생님>은 그처럼 이야기와 별개로 배우와 영화의 관계를 고찰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텍스트이기도 하다.
절대적인 믿음이 만들어낸 오해를 다룬다는 점에서 <우리, 의사선생님>은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전작인 <유레루> 와도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유레루>는 믿음의 변화가 기억의 변화를 일으키면서 초래한 형제의 비극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타케루(오다기리 조)는 형의 범죄현장을 직접 목격하고도 형에 대한 믿음의 변화에 따라 다른 증언을 내놓았다. <우리, 의사선생님>은 전작과 비교할 때 좀더 여유로운 태도를 갖고 있지만, 가족의 테두리가 아닌 한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믿음의 관계를 고찰하면서 더 넓은 오해의 파장을 묘사하고 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유머러스한 에피소드와 미스터리의 대비를 통해 “이 마을의 밤과 낮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곧 맹목적인 믿음이 가진 양면적인 특징을 뜻한다. 믿음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행복과 믿음이 초래한 오해의 비극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명의 의사를 둘러싼 이 마을의 행복은 과연 현실에서도 가능할 것인가. 그건 정말 영화나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는 아닌가. 다시 말하자면, 믿음으로 만들어낸 행복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 의사선생님>은 한 인간의 휴머니즘적인 갈등을 통해 사회의 한 단면을 비추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무서운 이면을 드러내는 영화로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