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카와 미와는 한국에 꽤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일본 감독이다. 전작인 <유레루>를 사랑해준 한국 관객이 많기도 했지만, 봉준호 감독의 팬이라는 이유도 있다. <유레루>가 한국에 개봉했을 당시에는 <씨네21>을 통해 봉준호 감독과 서신을 교환하며 서로의 영화에 대해 묻고 답한 적도 있었다. “그때의 파일을 아직도 가끔 열어본다. 지금도 나에게 많은 걸 느끼게 만드는 대화였다. (웃음)” 인터뷰 전날에도 그는 개인적인 스케줄을 비워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했다. 한국 관객을 만난 소감을 묻자, 그는 “한국영화의 퀄리티는 수준 높은 관객의 힘이 뒷받침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유레루>는 자신이 꾸었던 꿈이 모티브가 됐다고 했다. <우리, 의사선생님>도 혹시 꿈에서 계시를 받았나.
=<유레루> 때처럼 좋은 꿈을 꾸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웃음) 사실 차기작을 고민하면서 많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유레루>가 좋은 평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이 사랑해주었기 때문이다. 난 이제 겨우 2편을 찍은 감독인데, 이런 평가를 받는 게 맞는 건가 싶더라. 내가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와중에 내가 오해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영화감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가짜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주인공을 영화감독으로 설정할 생각은 안 했나? 의사란 직업을 떠올린 계기는 무엇이었나.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한다면 일반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할 것 같더라. 사실 주인공의 직업을 고민하던 도중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 2주 동안 환자와 의사간의 간극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의료 불신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던 터라 ‘가짜’라는 모티브와 접목시키기에 적합해 보였다.
-평소 의사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은 어떤 건가. 한국에서 의사는 영화에서처럼 전적으로 신뢰받는 직업은 아니다. 사람들은 수술을 준비할 때도 몇 군데의 병원을 다녀보고 결정한다.
=사실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의사를 의술과 인격을 갖춘 선생님으로 인식했다. 지금도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의사를 신뢰할 수 있는 직업으로 꼽는다. 다만,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사회 구조가 다양화하면서 지금은 조금 다른 인식을 하고 있다.
-쇼후쿠테이 쓰루베에 평소 가졌던 당신의 생각은 무엇이었나. 보다 보면 이 영화가 쇼후쿠테이에 대한 당신의 스타론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쓰루베가 가지고 있는 친화적인 이미지가 이노와 딱 맞을 것 같았다. 사실 나로서는 그를 기용하는 게 부담이었다. 관객이 이노가 아닌 쓰루베로만 보는 건 아닐까, 혹시 내 영화가 그에게 묻혀버리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노와 쓰루베 사이에 인격적인 갭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감독인 나로서는 이노가 펼치는 인술을 그를 통해 더욱 사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보았나. 믿음의 실체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유하는 점이 많아 보이는데….
=보고 나니 내가 할 일이 없어진 느낌이더라. 특정 요소가 비슷하다기보다는 나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이 봉준호 감독의 그것과 비슷하게 겹쳐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누명이란 모티브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 했었다. 그런데 <마더>는 제발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겠지 했던 쪽으로 전개되면서 내가 했던 상상보다 더 깊은 통찰을 보여주더라. 이제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누명에 대한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마더>가 조금의 여지도 남겨주지 않았다. (웃음)
-다음 작품을 계획 중인가? 네 번째 작품도 혹시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지 궁금하다.
=시골에서 촬영하는 걸 좋아하기는 한다. (웃음) 스탭, 배우들과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니까. 하지만 다음 영화는 도쿄가 배경이다. 그리지 않았던 도시에서 내가 다뤄본 적 없었던 여자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다. 사실 남자 캐릭터를 그리는 게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에서는 더 편하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여자란 생물에 대해 탐구해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