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는 춤을 추고 카메라는 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봉준호는 데뷔작부터 <마더>까지 첫숏을 모두 정면 구도로 찍었다. 이는 대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중요한 상징으로 해석하라는 요구다. 의미 맥락 없이 이런 구도를 쓰면 대상은 추상화된다. 김혜자가 풀밭에서 혼자 춤을 추면 현실에서는 미친 것이지만, 이를 카메라가 정면으로 응시하면 의도된 추상이 된다. 봉준호는 대상을 세워놓고 존재의 맥락을 제거한 뒤, 그에 관해 해석을 정면으로 요구한다. <괴물>의 CG는 사실감을 추구했지만 존재방식은 추상적이다. 괴물의 등장은 비논리적이다. 숨어서 커온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 공개적 사냥을 하는 이유는 삭제돼 있다. 이는 괴물을 ‘전시’해놓고 해석을 요구하는 추상일 경우에만 받아들일 수 있다. 존재방식이 추상적인 한, CG가 완벽했더라도 괴물은 ‘실재’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김혜자의 첫 장면은 괴물 등장의 추상성과 같은 방식으로 봉준호의 요구가 ‘디스플레이’된 것이다.
<플란다스의 개>가 숲에서 시작하듯 봉준호에게 식물은 정치적 상징이다. <마더>의 초반 세개 신은 ‘풀’에 의해 관통된다. 한국에서 풀은 김수영의 시 <풀>의 의미도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김혜자의 풀밭춤은 풀의 배치와 공간을 고려할 때 그 전형이다. 김수영의 문장이 ‘풀은 (바람에 저항하며) 눕는다’라면 봉준호의 문장은 ‘풀은 김혜자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춤춘다’이다. ‘눕는다’가 민초의 정치라면 ‘춤춘다’는 민초의 탈정치다. 라스트신의 ‘관광버스춤’은 이 도식을 완성한다. 역광으로 익명화되어 김혜자의 죄를 숨기는 승객들의 버스춤과 김혜자의 풀밭춤은 정확히 같은 것이다. 김혜자의 풀밭춤 신에 이어 김혜자의 손이 작두로 약초(풀)를 자른다. 이는 풀에 대한 거절, 민초에 대한 배신이다. 다음 신의 골프장 잔디는 앞에서 ‘풀->풀의 절단’의 연쇄에 의한 최종 결과다. 봉준호는 추상을 제시하기 위해 대상을 수직적으로 돌출시킨다. 골프장 잔디의 평면성은 수직성이 제거되어 존재가 삭제된 것이고, 정치적으로 완전히 제압된 민초를 시각화한 것이다. 민초의 연대는 그렇게 제압되고 붕괴됐다. 봉준호는 정치적 연대 붕괴의 제로섬게임을 항상 찍어왔다. <괴물>에서 강두가 딸을 잃는 것은 남의 딸을 대신 구했기 때문이다. 자기 딸을 잃고 남의 아들을 구하는 것은 그 연대의 회복이 제로섬게임의 정반대로 실현된 것이다. <마더>에서 미남 아들 도준의 자유는 남의 못생긴 아들 종팔이 구속됨으로써 회복된다.
제목 ‘마더’는 비판불가침의 정서적 기호인 ‘엄마’가 외국어의 소격효과로 객관화된 것이다. 봉준호 영화에서 ‘엄마’는 정치적으로 극복돼야 할 존재다. 원래 <괴물>은 엄마에 관한 이야기이며 <마더>는 거기서 예고되어 있었다. 봉준호 영화에는 도준의 방뇨처럼 배설물 도착에 관한 묘사가 많은데 항문기적 욕망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정치적 각성기인 남근기로 진입 실패를 돌려 말한 것이다. 그 실패의 원인이 ‘엄마’다. <괴물>에서 ‘모든 가족이 현서에게 밥을 주는’ 신은 육아가 엄마의 영역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정치적 진화를 한 것이다. 그 진화의 현장에서 엄마만이 부재하다. 괴물은 그 자리에 들어온다. 괴물은 더럽혀진 강(엄마)이고 히치콕의 <싸이코>에서와도 같은 광폭한 모성으로서 역사의 정치적 실패를 업은 숙주(host)다. 내 딸을 사산하고 남의 아들을 출산하는 괴물의 입은 여자 성기와 같고, 강두는 아들의 자리에서 그 입을 철봉으로 정확히 찌른다. 이 근친상간은 아버지가 아닌 엄마를 죽이고 자궁에서 탈출해 정치적 성장을 이룬 ‘돌연변이’ 오이디푸스의 탄생이다. 결국 <마더>에서 엄마는 우리의 정치적 성장이 멈춘 원인이 된다. 우리의 엄마는 다른 집 아이도 사랑할 수 있는가?
투명하고 유리 같은 평 쓰고 싶어
우수상 당선자 오세형
“그럼 최우수상은 어떤 작품이 됐나요?” 우수상 당선 소식을 전하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오세형(34)씨의 질문이다. 예상 질문과 답변을 뽑았는지 인터뷰 동안 종이 한장을 손에 꼭 쥐고 틈틈이 본다. 열정이 넘치고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리라. 연세대 사회학과를 나왔고 2006년 한겨레영화제작학교를 수료했으며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본어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응모하게 됐나.
=원래는 드라마 프로듀서 공부를 하다가 언론사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산업부에 1년 정도 수습으로 있었다. 그런데 나와 세상 사이의 관계를 못 잡겠더라. 관두고 영화연출을 해보겠다고 단편도 찍어봤는데 결과물은 애매했다. 영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그러다 홍상수 영화의 평들을 봤는데 납득이 잘 안되는 게 많았다. 그래서 인터넷 댓글이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진심어린 댓글을 단다는 기분으로 썼다.-어떤 게 납득이 안되던가.
=가령 줌의 경우, 어떤 의미로 사용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그걸 써서 어떤 결과를 얻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홍상수 영화가 관객 친화적이 됐다고 하는데 그것도 이해가 잘 안되고. 하지만 글을 쓰고 보니 그의 영화가 두꺼워서 아마 각자의 입장에서 다들 다르게 보게 된 게 아닌가 싶더라.-작품비평은 <마더>를 썼다.
=원래는 이론비평을 봉준호론으로 써볼까도 했다. <괴물>과 <마더>가 쌍둥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어떤 평론을 쓰고 싶나.
=실재를 왜곡하지 않고, 과도한 철학을 경유하지 않고, 해석적 평론에 의존하지 않는 투명하고 유리 같은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