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함께 울고 웃은 친구들…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1
2010-08-05
글 : 김용언
1편부터 3편까지 한결같이 사랑받은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마법, 그 비밀의 문을 열다

<토이 스토리3>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6월18일 미국에서 개봉한 이래 거의 모든 평론가들은 앞다투어 걸작 탄생이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시카고 선타임스>의 로저 에버트나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오언 글라이버먼은 “나 자신도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성인 남자도 애니메이션을 보고 울 수 있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다”며 <토이 스토리3>의 웃음과 눈물의 향연에 상찬을 바쳤다. 대체 이 시리즈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그래서 이 특집을 마련했다. 픽사라는 괴짜 집단이 만들어낸 <토이 스토리>의 역사를 더듬어보고, 이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어떤 점에서 획기적이었는지를 살펴본다. 시리즈로서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고별사로서의 3편의 감동분석기, 주요 캐릭터 사전도 모았다.(물론 제작진은 <토이 스토리> 4편이 절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는 단언하지 않았다. 인터뷰마다 모호한 여지를 남겨두며 관객을 안달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솔직하게 고백해보자. 1995년 <토이 스토리> 1편이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던 사람들이 더 많았다. 당시 애니메이션 시장은 <인어공주>를 필두로 한 디즈니 셀애니메이션의 승승장구 부활(<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에 사로잡혀 있었다. 매 프레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전부 손으로만 그리던 시대에서 벗어나 컴퓨터그래픽의 조력을 받아 훨씬 더 아름답고 자유로운 이미지를 선보일 수 있었던, 그야말로 셀애니메이션의 전성시대였다. 그 와중에 컴퓨터그래픽으로만 이뤄진 3D애니메이션이라니? 그게 과연 이 시점에 필요할까? 사람이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을 그 부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어떻게 한 시간 이상 참고 볼 수 있을까?

문제는 이같은 편견이 일반 관객뿐 아니라 당시 할리우드 대다수의 의견이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픽사와 처음 손을 잡고 제작한 디즈니에서도 <토이 스토리> 1편이 완성되기까지 의혹과 불안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했다. <토이 스토리> 1편의 가능성을 확신한 것은 이 작품을 직접 만들고 있던 픽사의 제작진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겨울 <토이 스토리> 1편이 공개됐을 때 전세계는 열광했다. 이후 애니메이션계의 향방을 완전히 바꿔버렸고 동시에 새로운 전통을 확립시킨 픽사의 무시무시한 첫걸음,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역사를 돌이켜본다.

100%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에의 첫 도전

모든 위대한 모험의 시작에는 순진하다고 할 만큼의 열정과 오타쿠적인 너디함(nerdy)이 필요하다. 픽사만큼 그 정신에 잘 부합되는 조직도 없을 것이다. 픽사의 시작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유타대학을 다니면서 컴퓨터그래픽 테크닉의 가능성을 처음 맛본 뒤 이 기술을 응용하여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미친’ 생각에 사로잡힌 컴퓨터 과학자 에드 캣멀(현재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사장)이 루카스필름에 입사하면서부터 모든 전설이 시작됐다. 캣멀이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이상주의자들을 하나씩 규합하여 자신만의 팀을 만들었고(<토이 스토리>의 창조자 존 래세터는 1983년 픽사에 입사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컴퓨터그래픽을 실사영화 속 일부로만 활용하고자 했던 조지 루카스의 속셈(실제로 이들은 <스타트렉2: 칸의 역습>과 <피라미드의 공포>에서 컴퓨터그래픽과 실사의 근사한 결합을 성공시켰다)에서 벗어나 ‘픽사’라는 이름의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이때 막 애플 컴퓨터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여 절치부심 중이던 스티브 잡스가 1986년 이 팀을 사들였다.

픽사는 3D 그래픽 시스템 ‘픽사 이미지 컴퓨터’와, 컴퓨터그래픽으로 창출한 3차원 이미지를 하나로 규합하는 렌더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툴 ‘렌더맨’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을 활용하여 오랜 꿈이었던 애니메이션 작업에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1986년에 단편 <룩소 주니어>(픽사의 로고에 등장하는 탁상 전등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를, 1988년에 단편 <틴 토이>를 발표함으로써 픽사 스튜디오는 처음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렸다. 흔하디흔한 탁상 전등이나 양철 장난감에 인간적 감정을 부여하는 솜씨, 그러니까 대사 한마디 없이 표정과 제스처만으로 관객에게도 일종의 서스펜스와 희로애락을 전달하는 무성영화적 재치, 동시에 그것을 온전히 구현한 100% 컴퓨터그래픽은 상당한 충격을 던졌다(이 작품들은 유튜브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은 ‘신기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소수의 마니아들과 전문가들이 감탄했지만, 그 누구도 이것이 장편 분량으로 가능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픽사가 첫 번째 장편 풀 CG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만들게 된 것은 1990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80년대 내내 픽사의 애절한 구애를 냉담하게 뿌리치던 디즈니가 90년대 들어 달라졌기 때문이다. ‘픽사 이미지 컴퓨터’를 활용한 CAPS 시스템, 즉 디지털 컬러링을 가능케 함으로써 셀애니메이션의 제작비를 획기적으로 줄인 이 시스템을 통해 <미녀와 야수>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디즈니는 점차 진지하게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고려하게 됐다(이 눈물나는 전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최근 국내 출간된 데이비드 프라이스의 책 <픽사 이야기>에서 읽을 수 있다).

<토이스토리>
<토이스토리 2>

영화광적 감수성의 <토이 스토리> 관객을 사로잡다

감독으로 선정된 존 래세터는 처음부터 <토이 스토리>에서 새로운 기술만을 과시할 생각은 없었다. <아기 코끼리 덤보>를 ‘내 인생의 영화’로 꼽는 그는 <밤비>나 <백설공주>처럼, 몇 십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사랑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시각적인 기술은 어느 시점에 이르면 낡아 보인다. 테크닉과 테크놀로지는 그저 이야기를 잘 보여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일부러 <토이 스토리>에도 그 당시 유행하던 유머를 넣지 않았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1988년작 단편 <틴 토이>의 시나리오부터 연출까지 도맡은 존 래세터는 인간과 장난감이 맺는 관계에 관해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줬다. 인간이 자신을 망가뜨릴까봐 두려워하면서도, 막상 인간 앞에 서면 그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주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 없는 게 장난감의 숙명인 것이다! 그 자신이 열렬한 장난감 수집가인 래세터는 주저하지 않고 장난감을 첫 장편의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1991년만 해도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리는 모든 존재들은 플라스틱 표면을 닮아 있었다. 당시 기술로 인간을 구현하는 건 불가능했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건 당연했다.” 이 아이디어를 떠올리자마자 존 래세터는 각본을 쓸 앤드루 스탠튼과 피트 닥터 등과 함께 모여앉아 <틴 토이>를 장편화할 방안을 브레인스토이밍했다. “우리는 각자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존은 장난감을 아끼고 돌보는 앤디 같았고, 앤드루는 이웃집 악동 시드에 가까웠다. 앤드루는 M-80에 초록색 병정인 G.I.조 피겨를 묶어놓은 다음 불을 붙이고는 ‘도망가, 조!’라고 외치는 장난을 쳤다고 고백했다. (웃음)”(피트 닥터)

꼬마 주인의 실수로 고속도로 휴게소에 남겨진 다음 홀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양철 군인, 꼬마 주인의 관심을 독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다소 사악한 카우보이 인형 등이 주인공으로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단독 주인공만으로 풍부한 이야기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픽사팀은 곧 <48시간> 같은 버디 무비의 전통을 따르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주인공이 처음엔 서로를 싫어하다가 어떤 사건을 겪으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 친구가 된다.’ 고전적인 버디 무비의 이같은 줄거리는 갈등과 유머와 감동, 동시에 주인공의 성장 과정 모두를 골고루 담을 수 있었다. 제작진은 극적인 대비를 이루기 위해 카우보이와 우주 비행사라는 신구 세대의 대립을 차용했고, 예전 웨스턴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배우 우디 스트로드와 달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은 우주인 버즈 앨드린의 이름을 빌려왔다. <토이 스토리>의 두 주인공은 그렇게 우디와 버즈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토이 스토리> 1편을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았을 때 놀라운 점은, <토이 스토리>가 당시 유행하던 디즈니식 애니메이션, 즉 아름답고 귀여운 것만을 강조하는 ‘뮤지컬’ 전통을 조심스럽게 거부했다는 데 있다. 랜디 뉴먼의 주제가 <You've Got a Friend in Me>가 뮤지컬의 전통을 살짝 이어가는 듯하지만, 작품 전반은 오히려 할리우드 고전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의 영화광적 감수성에 더 걸맞은 톤을 갖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우디와 버즈로 대표되는 웨스턴과 SF에 바치는 열광은 말할 것도 없고, 두 주인공이 옆집 악동 시드의 집에서 맞닥뜨리는 ‘괴물 인형들’은 <프랑켄슈타인>이라든가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 같은 영화에 오마주를 바치는 터치로 충만하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올바로 지적했듯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1편에서부터 어느 정도 ‘고딕적인 전통’의 뿌리를 보여준 셈이다. 전반적으로 화사하고 명랑하고 재미있음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내치비는 정서는 지극히 어둡고 비극적이다. 어린이들이 어렴풋하게 인지하지만 확실하게 표현할 수 없는, 오히려 성인이 된 다음 돌이켜 생각할 때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공포와 불안, 경이의 감정이 중간중간 끼여듦으로써 <토이 스토리> 1편은 이후 픽사 애니메이션이 성인 팬들에게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중요한 요소를 갖출 수 있었다. 그렇게 <토이 스토리> 1편은 감동을 주는 기술,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존재를 잠시 망각할 만큼 관객을 몰입시키는 빼어난 스토리와 정서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완벽하게 결합시켜 나갔다. 아무도 성공을 점칠 수 없던, 제작진들만이 “흠, 이 장면이 그리 썩 만족스럽게 만들어지진 못했지만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법한 기세만큼은 보이는 것 같아”라며 뿌듯해하던 <토이 스토리> 1편은 1995년 11월 미국 극장가에 선보였고,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센세이션이었다. 개봉 첫주 2914만617달러라는 경이적인 스코어를 기록한 것이다. 관객과 평론가 모두 <토이 스토리>에 경악했고 사랑과 경배를 바쳤다. 당시 언론들은 앞다투어 “아이들이 침실 불을 끈 다음 한참을 꼼짝 않다가 다시 불을 켜고 장난감이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걸 매일 되풀이하는 통에 부모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토이 스토리>가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기 전까지 회사 돈만 까먹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고 당시 회장이었던 스티브 잡스 역시 호시탐탐 다른 회사에 팔아버릴 궁리만 했던 픽사 스튜디오는 단숨에 할리우드의 총아 집단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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