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뒤에 남겨지는 모든 존재를 위하여
2010-08-05
글 : 김혜리
<토이 스토리> 3부작을 추억하다
<토이스토리 3>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잊혀진 곰 푸우는 영원히 침묵했을까? 이젠 놀러오지 않는 소년 재키를 그리워하다 동굴에 칩거한 마법의 용 퍼프는 다시는 다른 친구를 사귀지 못했을까? 마침내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들에게도 이 물음에 맞서야 할 날이 왔다. 실상 선택은 이미 11년 전에 이뤄졌다. 카우보이 인형 우디는 <토이 스토리2>에서 박물관 전시실에서 보내는 영생을 거절했다. 앤디와 어울려 놀다가 성장의 뒤안길에 덩그러니 남겨지는 장난감의 숙명을 택했다. 그러나 막상 작별이 닥쳤을 때 우디는 추억의 온기만으로 어두컴컴하고 기나긴 에필로그를 감당할 수 있을까?

11년 만에 영화가 방문한 엘름 거리 앤디네 집에는 종말의 기운이 가득하다. 우디의 여자친구였던 양치기 아가씨 인형을 포함한 많은 장난감들이 이미 벼룩시장과 대청소를 거치며 사라졌다. 일순위로 처분될 게 뻔한 플라스틱 병정들은 낙하산을 펴고 스스로 장렬히 퇴장한다.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앤디가 선물받았던 강아지 버스터가 어느새 노쇠해 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모습은 가슴 저리다. 대학으로 떠나는 열일곱살 앤디는 우디만 데려가기로 마음먹고 나머지 인형들을 다락에 보관하려 하지만, 몇번의 오해를 거쳐 장난감들은 동네 탁아소에 기증되고 만다. 앤디를 잊고 탁아소에서 새 삶을 살자는 제시에게 우디는 “넌 참 이기적이구나”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우디만큼 특별한 애정을 받지 못했던 동료 장난감들은 우디처럼 명료하게 판단할 수가 없다. 어차피 다락에 처박히거나 버려져야 한다면 차라리 다른 아이들과 놀면서 행복한 소임을 다하고 싶다는 욕망을 비난할 수 있을까? 이는 일이냐 사랑이냐의 문제처럼 들리기도 한다. 계약 당사자의 한쪽이 계약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를 때 계약은 유효한 것일까. 사랑에 대한 성실성은 한쪽이 등을 돌린 뒤에도 지켜져야 하는 규범일까. 그건 그냥, 노예의 자세가 아닐까. <토이 스토리3>의 관객은 전편에서 그랬듯 다시 당황한다. 알록달록한 장난감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토록 복잡한 갈등을 겪어야 하다니!

부모들이 장난감에 감정이입한 까닭

<토이 스토리> 3부작이 어린이를 넘어 넓은 연령층을 끌어당기는 까닭은 일과 사랑, 신의에 관한 보편적 주제를 놓지 않기 때문이다. 3편에 이르면 심지어 죽음의 문제까지 슬쩍 건드린다. 이는 <토이 스토리> 연작의 장난감들이 본질적으로 성인이기에 가능하다. 그들은 어린이와 놀아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직장인이다. 1편의 관객은 장난감들이 벌이는 진지한 직원회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어른이기에 그들은 아이를 염려하는 보호자의 입장에 서 있다. 때론 서로 “내 대신 앤디를 돌봐줘”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토이 스토리>의 원형 격인 존 래세터의 단편 <틴 토이>의 북치는 병정 장난감은 갓난아기의 손에 망가질 위험을 무릅쓰고 아기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 용감히 몸을 던진다. 2편의 결말부에서, 장난감들이 겪은 모험을 까맣게 모르는 앤디가 “우디를 캠프에 안 데려가길 잘했어”라고 말하고 방을 나서자 우디가 “그래, 네가 뭘 알겠니”라고 애정어린 목소리로 독백하는 장면은 <토이 스토리>가 그리는 장난감과 주인의 관계를 함축한다.

자녀를 데리고 극장에 온 부모들이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에게 동일시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우디와 버즈가 천신만고 끝에 앤디의 품에 돌아오는 1편은 부모의 부재를 겁내는 어린아이의 감정과 아이들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는 부모의 감정을 감싸안았다. 장난감 박물관과 앤디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디를 보여주는 2편에는 언젠가 자라서 슬하를 떠날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불안한 시선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3편은 평생 예감해온 이별을 어떻게 아름답고 현명하게 치를 것인가를 말한다. 3편 말미에서 카메라가 앤디의 텅 빈 방을 둘러볼 때, 관객은 처음에는 장난감들을 위해 눈물을 떨구지만 앤디의 엄마가 그 자리에 들어서는 순간 뒤에 남겨지는 것은 비단 장난감만이 아님을, 모든 부모와 누군가에게 대체 불가능한 사랑을 기울인 세상 모든 존재의 일임을 깨닫게 된다.

20년 뒤에도 있을 법한 장난감들

“<토이 스토리>가 최초였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로봇>과 <아이스 에이지>의 감독 크리스 웨지는 안도를 표한 바 있다. 우선 애니메이션 장르로 범주를 한정해도 <토이 스토리>의 의의는 중하다. 90년대 초반을 지배한 디즈니의 뮤지컬 장편애니메이션들이 부속 장르로서 일정한 성취를 이루는 동시에 반복을 통해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정의를 협소하게 만들었다면, <토이 스토리>는 정반대의 경로로 장르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오리지널 캐릭터를 창조했으며 그들에게 굳이 노래를 시키지 않았다. 주인공은 바람직하지만 지루한 인물이고, 웃기는 연기는 조연이 도맡는 관습을 깨고 주연을 가장 재미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었다.

100% CGI로 이뤄진 역사상 최초의 영화인 <토이 스토리>는 선발 주자가 휘말리기 쉬운 테크놀로지 현시의 유혹을 외면하고 고전적인 주제, 고전적 드라마 기법과 정면승부를 벌임으로써 탁월한 전범을 세웠다. 라이벌 드림웍스의 후발작품과 비교해도 확연하지만 <토이 스토리> 연작은 속도와 스펙터클 강박에 안달하지 않는 픽사 스타일을 일찌감치 천명했다. <토이 스토리>에서 스펙터클은 피자 레스토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 있다. 광활한 공간이 아니라 캐릭터들이 겪는 감정적 낙차로부터 에픽(epic)이 발생하는 것이다. 평원을 달리고 우주를 날아다니는 비일상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펙터클은 3부작의 도입부를 공히 장식하는 가상의 놀이/게임 장면에 들어가는 게 고작인데, 제작진이 그 정도의 서곡이면 족하다고 여기는 투가 역력하다. 픽사 애니메이터들은 나날이 발전하는 CG기술을 갖고 장난감들에게 더 번쩍이는 옷과 장비를 주는 대신, 1편의 외양을 유지한 채 세월의 때를 타고 보다 정교한 연기를 하도록 힘쓴다. 3편이 처음 도입한 3D 촬영기술도 그리 티가 나지 않는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명장면은 다른 데에 있다. 2편에서 장난감 의사인 제리 할아버지가 면봉과 헝겊으로 우디를 닦고 고치는 정밀한 장면, 현실을 각성하고 허탈해진 버즈의 말없는 눈동자 연기, 주유소에 버려진 두 인형의 롱숏이 몇 가지 예다. 요컨대 픽사는 라이브 액션영화처럼 애니메이션을 연출하되, 애니메이션이기에 창조 가능한 영화적(cinematic) 아름다움을 기어코 찾아낸다.

존 래세터와 동료들은 <토이 스토리>를 캐스팅할 때 20년 전에도 존재했고 20년 뒤에도 아이들 곁에 남아 있을 장난감을 골랐다고 한다. 유행을 타지 않겠다는 정신은 코미디 연출에서 확연하다. <토이 스토리>의 유머는, 열살 미만을 위한 분비물 우스개, 청소년을 위한 인터넷 조크, 어른을 위한 패러디의 적당한 배합이 아니다. 캐릭터의 상황을 공감할 때 살며시 흘러나오는,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생뚱맞아지지 않는 웃음이다. 픽사는 속편 제작에도 엄격하다. 픽사가 <토이 스토리> 3편을 제작할 아이디어가 숙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때, 디즈니는 별도의 팀을 꾸려 3편을 추진한 적이 있다. 버즈에게 결함이 발견돼 제조국가인 대만으로 리콜된다는 설정이었다고 한다. 이국적 환경을 무대로 삼는 전형적인 속편이 되었을 법하다. 2006년 디즈니-픽사 합병으로 양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의 크리에이티브 총괄권을 잡은 존 래세터는, 취임 24시간이 되기 전에 이 기획을 중단시켰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현재까지는 픽사가 속편을 내놓은 유일한 작품이지만 통념상 할리우드 속편의 구조와 차별성을 보인다. <반지의 제왕>3부작이 가장 중요한 영감이었다는 3편 감독 리 엉크리치의 말대로 <토이 스토리>는 ‘그리고’나 ‘한편’이 아니라 ‘그래서’로 연결된 3부작이다. 15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세 영화의 서사는 상당히 밀착돼 있다. 별개의 이야기라기보다 한 이야기가 싹이 트고 자라나 완전한 서클을 그리는 인상이다. 이리하여 1995년 시작된 기념할 만한 모험은 끝났다. 아니, 다음 세대의 손으로 넘어갔다. <토이 스토리>를 만들 때 20대 초·중반이었던 픽사의 창립 멤버들은 실제로도, 애니메이션 세계에서도 ‘부모’가 되었다.

모든 관계는 상호적이다

사족 하나. 시리즈를 통틀어 우디는 장난감헌장 제1조라고 할 만한 “인간 앞에서 살아 있는 티를 내지 않는다(인간에게 먼저 작용하지 않는다).”의 규율을 두번 어긴다. 처음은 장난감을 학대하는 옆집 소년 시드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두 번째는 주인 앤디에게 모종의 요구를 전하기 위해서다. 여기에는 이상한 발견의 느낌이 있다. 소유자는 물건을 지배하지만 피소유물도 소유자에게 영향을 준다. 관계는, 어떤 것이든 상호적이다. 사물과 미디어에 내밀한 감정을 투여하고 나아가 의존하는 시대의 관객에게 <토이 스토리> 3부작은 쉽사리 벽장에 넣고 망각할 수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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