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페드로 코스타, 리처드 포튼, 임재철, 세 시네필의 난담
2001-12-21
“스탠리 큐브릭은 사기꾼이다”

제1회 광주영상축제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지만, 장 르누아르, 미조구치 겐지, 장 뤽 고다르, 장 비고 등의 상영작들이 시네필들에게는 즐거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손님으로 영화제를 찾은 포르투갈의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와 미국의 영화학자이자 언론인 리처드 포튼, 그리고 폴리티컬 시네마 등 일부 프로그램을 담당한 한국의 영화평론가 임재철, 세 사람이 만나 쉽게 말문을 틀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시네필의 과거를 공유한 덕분이다. 영화적 유산에 대한 재평가와 누벨바그와 같은 실험에 거름이 된 영화문화의 흐름과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없는 영화에 대한 사적인 체험과 취향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4시간이 넘도록 그칠 줄 몰랐다.

페드로 코스타(이하 코스타) 이 영화제는 내게 아주 기묘한 인상이었다. 처음에 난 임재철이 영화제 상영작 리스트를 보내준 걸 보자마자 이 사람도 나만큼이나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뭘 꿈꾸면서 이런 프로그래밍을 했지? 나이브한 사람 아닌가 하고. 이런 페스티벌에서 정치영화나 이런 영화사적인 고전들이 요즘도 통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영화들이 통하길 바라지만, 글쎄….(웃음)

임재철(이하 임) 내가 바란 게 있다면 시네필들의 커뮤니티를 위해 좀더 확실한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나도 내가 하는 일이 일종의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실패가 확실시되면 아르헨티나로나 이민 갈 생각이다.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웃음) 그렇지 않아도 어제 페드로와 한참 얘기를 했는데, 시네필로서의 과거에 대해 아주 열정적이었다. 로베르 브레송의 촬영감독이었고, <뼈>를 촬영한 에마뉘엘에게 들어서 아는데 브레송이 젊은 시절에 몸을 파는 남창이었다는 뒷얘기부터 시작해서…. (웃음) 그래서 각자의 과거에 대해 얘기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코스타 난 사실 시네필이라 자처한 적은 없는데…. 그저 영화를 보고 싶어했던 거지. 물론 내가 본 영화들에 대해서는 자랑스럽다. 채플린의 영화를 거의 다 본 것. 난 포르투갈 국립영화학교를 다녔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시네마테크에 드나들었다. 맨 앞줄 가운데가 내 자리였고, 누가 앉아 있으면 내 자리라고 싸우곤 했다. 거기서 이따금 회고전을 해줬는데 찰리 채플린, 스턴버그, 하워드 혹스,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의 전작을 틀곤 했다. 그럴 때 거기에 가서, 마치 토마스 만의 전집을 읽듯 영화를 봤다. 클래식영화들, 미국영화들.사랑하는 감독과 영화

임 스와 노부히로와 얘기했을 때 그는 나와 거의 같은 세대였다. 그 역시 70년대 미국영화로 영화에 빠져들게 됐다고 했다. 페킨파, 알트먼, 스코시즈. 거기다 몬테 헬만 같은 사람을 추가할 수 있겠지. 하지만 영화를 더 많이 보게 되면서 그들이 그렇게 대단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알트먼 같은 경우 방법에 대한 의식의 결여 같은 것은 확실히 치명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 영화들을 별볼일 없는 것들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일종의 센티멘털한 집착이 여전히 있다.

코스타 알트먼에 대해 장 마리 스타라우프는 아마 동의 안 할걸? 그는 <닥터 T와 여인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도 아니라고 했었다. 돈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영화라고.

포튼 하긴 자크 리베트도 <쇼걸>이 최고의 영화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니까.

임 그래서 페드로가 좋아하는 영화 언급할 때 70년대 감독이나 영화를 하나도 언급 안 한 게 놀라웠다. 70년대 포르투갈에서는 미국영화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나?

코스타 70년대 작가들을 만나기 이전에 나는 존 포드, 하워드 혹스등의 전작을 볼 수 있었다. 나한테 특히 존 포드는 최고 중 하나다. 그는 기능적으로도 뛰어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자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70년대 하면 내게 떠오르는 것은 그 많은 형편없는 프랑스영화들이다. 10대 시절 나는 주변의 것들을 모두 싫어했는데 70년대 영화들도 그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브누아 자코 같은 감독들은 정말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영화를 만들었다.

임 존 포드의 경우는 어렸을 적에 극장에서 <샤이안>을 본 기억이 있고 그의 대표작들을 나중에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그러다보니 그가 얼마나 걸출한 작가인가를 이해하는 데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에서 <일곱 여인>에 이르는 포드의 만년 괴작들의 진가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페드로는 영화체험 측면에서 나보다 훨씬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포튼 나에게 영화는 빌리 와일더가 거의 시작이다. 영화광인 부모님이 극장 가길 즐겼는데, 아마 <뜨거운 것이 좋아>가 내가 처음 반한 와일더 영화였을 거다. 그리고는 뉴욕대학(NYU)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면서 레퍼토리 극장들에서 많은 영화들을 봤다. <잔다르크의 열정> 같은 클래식들, 할리우드영화들, 독서와 평론으로부터도 많은 걸 배웠고, 나아가 영화를 발견하는 식이었다. 제임스 애지나 마니 파버 같은 사람들의 리뷰, 그들의 의견에 다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그걸 읽고, 영화를 보러 가고. 레퍼토리 시네마에서 많은 걸 봤다. 고다르, 펠리니, 이후 2∼3달 동안의 스케줄을 체크해가면서. 시네필의 관점은 고유하고 사적이라 어떤 기준을 넘어서 감독의 감각이 나와 맞아야 하는 것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 감각에 맞는 감독은 브뉘엘이다. 한편을 꼽긴 어렵고 그의 작품 전체.

코스타 그건 한 감독이 다른 감독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존 포드가 어떤 감독이 좋냐는 질문에 르누아르, 어떤 영화가 좋냐는 질문에 그의 전 작품이라고 답했다니까. 미조구치 겐지도 아주 아름다운 말을 한 적이 있다. 감독이 감독에게 할 수 있는 최상급의 찬사라고 생각하는데, 오즈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하면서, 그가 한 작업이 자신이 한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 미조구치도 훌륭한 감독임에 틀림없지만, 오즈가 자신의 소우주, 아버지, 어머니, 아이, 사촌, 아이, 집, 도시, 시골 등에 대한 영화를 스무편 이상 힘있게, 에너지를 갖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임 어제 코스타와도 애기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르누아르가 대단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는 독자적인 스타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 잘 포착되지 않지만 유동체로서의 현실을 포착해내는 대단한 능력이 있다. 사실 현실의 모난 부분을 포착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능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거기서 현장에 입회해 있는 듯한 질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수준이 다른 문제가 된다.

코스타 이를테면 브레송을 처음 보게 되면 당연히 경악하게 된다. 영화제의 카탈로그에 의하면 내가 브레송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으로 되어 있는데(웃음)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는 걸 숨기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는 <몽상가의 4일밤> 같은 스타일밖에 남는 것이 없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르누아르는 어떤 작품도 몇개의 형식적인 측면으로 환원될 수 있는 작품은 한편도 없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작품이 흥미롭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있다.

포튼 난 늘 브뉘엘의 영화로 돌아가는 것 같다. 장 비고도 그런 감독이지만 4편밖에 안 만들었으니까…. 최근 감독 중에는 잔니 아멜리오도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옛날 이탈리아영화들의 재탕이라고 하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뭔가 남겨줬으니까. 뭐, 로랑 캉테 영화도 괜찮았다.

코스타 난 그의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그와 얘기는 많이 나눴다. 그리고 그의 관심사가 노동자들, 거리의 사람들, 고통받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나와 맞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같은 사람도 지금의 이 상황에서 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는 게 나한테는 악몽이다. 무수한 인터뷰에, 프레젠테이션에, 일종의 자본주의적인 과잉 속에서도 말이다. 그 과정을 받아들인다는 데에서 약간의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게 내 문제라는 것도 알지만, 나한테는 아주 유서깊은 문제다.

현재의 영화비평에 관한 근심

포튼 요즘 학생들에게 단편을 만들어오라고 하면 스코시즈나 타란티노의 페스티시를 만들어온다. 아니면 현재 주목받는 감독들. 그리고 시나리오 코스가 훨씬 많은 지금에 나온 각본들이 예전보다 훨씬 못하다. 그 책과 강의들이 어떤 공식을 가르치기 때문일 것이다. 잘만 만들어진다면 상업영화라고 해서 꺼릴 것은 없지만, 요즘의 할리우드는 그것조차 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로맨틱코미디 하나 못 만든다. 30, 40년대에는 하워드 혹스와 프랭크 카프라처럼 셰익스피어를 코미디에서 살려내는 전통이 있었다. 스튜디오 시스템하에서 오히려 더 좋은 영화들이 나왔다.

코스타 왜냐하면 지금은 영화의 일부였던 것들을 영원히 죽이려 드니까. 그동안 영화가 보여준 테크닉이 숏을 운용하는 방식이 있는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점점 영화를 영화사의 관계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과 이론이 영화에 관여하면서 모든 게 엉망이 됐다. 시네필, 독립영화 등등 모든 것들이 이론에 의해 훈련된다. 예전의 시네필들은 부지런히 토론을 했다. 영화 안에서는 고다르 같은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에 동시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하지만 크리스티앙 메츠와 함께 시작된 것 같은데, 대학에서 갖가지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영화로 흘러들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서울이든, 뉴욕이든, 파리든 젊은이들은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모른다. 실제 영화에 접근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이론에 의존하니까. 그 이론 중 일부는 잘못 조작된 것이기도 하다. 60년대의 모든 위대한 것들이 지나가고, 70년대를 거치면서 아주 나쁘게 변했다. 그때가 내가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였다고 말했지만, 영화학교에서 선생들이 권해준 영화들은 모두 끔찍했다. 한두 가지 예외는 있지만. 바타이유를 읽지 않으면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얘기는 정말, 18살의 소년에게는 엿 같은 일이다.

포튼 내 경우 영화학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애증관계가 있다. 원래는 시네필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학생들도 논문이나 책을 쓰지 않는 한 채플린의 모든 영화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게 특화되고, 마케팅의 문제가 되고, 학계는 물론 영화 자체가 산업이 되고 있다. 출판물과 책으로 산업화되는 경향…. 몇몇 감독들도, 민족영화에도 패션의 사이클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아마 한국영화가 다음 유행이 되겠지? 평론가들도 뭔가 전문분야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의 영화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요즘의 영화연구자에게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60년대 후반 대학에서 처음 영화를 가르칠 무렵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지금처럼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도 없었다. 가령 가장 일찍 영화과가 생긴 뉴욕대학의 초창기 교수진을 보자. 에이젠슈테인과 일하기도 했고 영화도 만든 한 제이 레다 같은 사람은 내가 알기에 대학에 가지 않았다. 윌리엄 에버슨도 아마 대학은 안 갔던 것 같고. 아네트 마이클슨은 고작 학사학위밖에 없었다.

페드로 많은 학교들과 비평, 이론과 함께 개인의 판타지는 점점 더 불명료해지는 것 같다. 고독에 대한 욕구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방에 갇혀 있을 뿐 더이상 그룹을 이루지 못한다. 난 그런 사람들의 지식을 믿지 않는다. 3∼4편을 보고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식. 영화를 보면서 배우가 누구고, 엑스트라였던 배우가 나중에는 주연이 되는 변화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 과거의 거장들은 영화를 만들고 공유했다. 그들은 혼자 있을 때와 함께할 때를 잘 구분할 줄 알았다. 왕가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함께도 혼자도 아니다. 내 유일한 스승은 포르투갈 감독인 안토니오 레이스였는데, 그는 많은 영화를 만들진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얘기를 했다. 그 세대는 서로의 영화를 다 봤다. 서로를 좋아하지 않아도, 설사 극렬하게 싸우더라도 서로의 영화를 보러 가고 권한다. 스트라우프는 자크 리베트 영화를 보러 가라고 권하고, 리베트는 스트라우프 영화를 보러 가라고 권한다. 난 영화를 하려는 젊은이들을 보면 왕가위나 라스 폰 트리에가 아니라 항상 찰리 채플린 얘기로 돌아간다. 10분짜리 단편을 비롯해 그의 무성영화들.

포튼 미국에서 비평은 더이상 시네필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소비자 가이드가 되고 있달까. 영화에 별을 매기고,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소비자주의가 대세인 한은 그런 식의 가치평가가 계속 있을 것이다. 시네필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특유한 창조, 프로그램된 시선이 아니라 독창적인 어젠다를 포함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지만 현재의 비평은 더이상 사적인 취향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어떤 영화가 중요하고 뭘 생각해야 할지를 말해주는 가이드북을 만드는 것과 같다. 많은 나라에서는 영화비평이 이런 소비자 가이드가 돼가고 있다고 본다. 그동안 <시네아스트>도 미묘한 변화를 겪었다. 67년에 만들어질 때에야 기본적으로는 학생운동세대에 의해 만들어져 좌파, 미국의 급진적인 영화와 뉴스 릴, 로버트 크레이머의 영화 같은 전투적인 영화가 화두였다면 지금은 그 시대와 또 다르다. 그때는 정치적인 문제와 분리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할리우드영화들에 대한 리뷰를 싣는 일이 더 많아졌다. 상업영화들, 대중적인 취향도 반영되고.

코스타 내 생각에 오늘날의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어떨 때는 광고고, 비디오 클립이고, 정치적이거나 전투적이라 해도 쇼비즈니스일는지 모르지만 영화는 아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전혀 세계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시네필들, 아마도 스코시즈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영화에 대한 배타적인 지식에서 출발한다. 이때부터 그들은 영화 이외의 다른 걸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스트로하임 같은 영화가 있었나, 왕가위면 됐지라고 생각한다. 왜 포르노그라피가 필요하냐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항상 포르노그라피가 존재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난 세상이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거장들에 대한 재평가

임 정말 갱스터같이 말하지 않나. (웃음) 근데 예전 영화들 중에서도 다시 보면 평가가 달라지는 영화들도 있다.

포튼 고백하자면 난 더이상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를 보면서 많은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물론 그를 존중은 하지만, 죽어라 얘기하고, 쓰고, 그래선지 오데사 계단신을 보면 아무래도 지겹다. 이제는 그것도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렸으니까.

코스타 난 파졸리니에게 아무래도 위화감을 느낀다. 물론 그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의 시대와 사회에 반응하고 저항했던 사람이고, 영화에서도 그게 보이니까.

포튼 음… 이젠 고다르도 뭔가 좌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그의 영화에서도 열정도 줄어들고

코스타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나, 누벨바그는 정말 대단한 에너지가 있었는데….<사랑의 찬가>를 보면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세계의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감독인데…. 하지만 그는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고 숏을 만든다. 난 이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풍부한 장면을 만들 줄 안다고 과시라도 하듯. 수백만의 사람들이 고다르에게, 누벨바그에 영향을 받았는데 아쉬운 일이다.

임 스탠리 큐브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큐브릭은 유난히 한국에서 존경받는 감독 중 하나다. 젊은 친구들이 큐브릭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을 때 솔직히 짜증이 난다.

코스타 큐브릭에 대해 얘기하겠다고? 퇴장할 시간이군. (웃음)

포튼 큐브릭의 초기 영화들은 좋다. 난 그를 만신전에 올려놓을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내버리고 싶지도 않다. 기교의 거장이란 점에서는 존경할 만하다.

코스타 아무래도 나를 화나게 하려는 것 아닌가. 큐브릭이 기교의 거장이라니. 나라면 카메라 뒤에서 요술을 부린다고 해서 거장이라고 하진 않겠다. 새로운 광대 하나가 나타났다고 하지. 난 큐브릭에게 거장이란 표현을 쓰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그를 좋아한다면 상관없지만, 그는 분명 거장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보아도 타티가 훨씬 뛰어나고, 존 포드는 그에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여주지만, 큐브릭은 마치 자신이 수백개의 시선을 갖고 있는 것처럼 꾸민다. 그들은 적어도 이렇게 찍는 게 더 멋있기 때문에 숏을 바꾸진 않는다. 큐브릭의 방식은 분명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숏에서 속이기 시작하면 그건 영화가 아니다.

포튼 물론 큐브릭에게는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르누아르와 달리 스펙터클에 대한 집착 같은 게 분명히 있고…. 물론 큐브릭 영화의 정치학은 분명 다른 문제다. <시계태엽 장치 오렌지>는 파시스트적인 영화에 가까우니까.

코스타 그런 게 그의 아주 의심스러운 점이다. 는 좀 낫지만 내게, 큐브릭의 영화를 본 것, 특히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를 본 것은 아주 나쁜 경험이었다. 후진 디스코텍에 가서, 아주 사악한 사람들과 엉망진창인 밤을 보내는 것과 같은. 그의 영화에는 공간도 없다.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이나 무르나우는 거리를 찍으려고 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카메라를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건 그들이 세상을 보는 식이다. 여배우의 얼굴이 이쪽에서 찍으면 더 나아보이기 때문에 시선을 옮겨가진 않았다.

현재의 시네필, 무엇을 할 것인가?

임 내가 현재 시네필들에게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커뮤니티 내에서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이다. 오래 전에 고다르는,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힘이 있었다면, 그들이 항상 영화에 대해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의 영화가 안 좋은 게 더이상 사람들이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게 현재 시네필들의 주요한 양상인 것 같다.

포튼 음. 더이상 커뮤니티가 없다는 것….

임 커뮤니티가 있다 해도 아주 적고, 나쁜 의미에서 익명성에 빠져 있다.

포튼 집에 틀어박혀 비디오를 보고,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람들…. 확실히 요즘은 모든 게 아주 사적이다. 하지만 그래도 뉴욕에서 영화에 미친 소집단, 영화광들을 관찰하는 것은 매력적이다. MOMA에서 영화 한편을 보고, 링컨센터로 갔다가 필름아카이브로 옮겨다니며 영화를 보러 다니는 이들. 대부분은 보통 앞줄에 앉아서 거의 스크린에 이미지에 녹아들길 바라기라도 하는 듯 영화를 보고, 우체국 유니폼을 입은 채 퇴근하자마자 오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난 반대로 대부분 뒤편에 앉는다. 뭘 봤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영화를 봤냐, 서로의 리스트를 대조해보기 바쁜…. 그들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얘기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다른 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네필이라기보다는 ‘시네매니악’인 이들에게도 어떤 성실성은 있다.

임 그런 사람들에게도 옛 시네필들의 유산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포튼 아마도. 그들은 때로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 놀랄 만한 지식을 갖고 있다. 저 촬영감독이 누군지, 에드가 울머나 윌리엄 K. 하워드가 감독한 전작 등등. 그런 점에서는 옛 시네필들과 비교할 만하다. 물론 직접 영화를 논하고 만든 옛 시네필들과는 다르지만.

임 현재 한국의 경우는 그런 커뮤니티 자체가 없다. 시네필이 아니라 일본애니메니션이나 홍콩 무술영화 마니아들처럼 한 장르나 감독에 집중하는 영화마니아들은 있지만. 이들은 물론 영화를 보는 방식에서나 얘기하는 방식에서 모두 기존 시네필들과 완전히 다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격심해짐에 따라 고전적인 시네필이 더이상 존재할 지점이 없게 된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거창한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저 예전의 시네필이 가지고 있었던 취향의 완전무결함(integrity) 혹은 성실성을 어떻게 오늘날 살아남게 하는가 하는 정도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나마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정리 황혜림 blauex@hani.co.kr페드로 코스타(Pedro Costa)

마뇰 드 올리베이라에 이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포르투갈의 영화감독. 리스본의 영화학교 출신이지만, 시네마테크에서 할리우드의 고전영화들과 로베르 브레송의 작품들을 접하며 영화를 배웠다고 말한다. 80년대부터 단편영화 작업과 호앙 보텔로 등의 조감독을 거친 뒤, 89년에 <피>로 데뷔했다. 아버지의 빚을 떠안은 형제들의 이야기인 흑백영화 <피>부터 그의 카메라는 줄곧 빈곤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향해 있다.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된 세 번째 영화 <뼈>에서는 궁핍한 삶의 무게에 짓눌린 채 희망없이 살아가는 여자와 남자, 리스본의 슬럼가를 극도로 절제된 영상에 담았으며, 마약과 가난에 절어 살며 <뼈>에 출연했던 여성의 실제 생활을 좇는 최근작 <반다의 방>도 함께 소개됐다.

리처드 포튼(Richard Porton)

1967년 창간 이래 영화산업 및 학계와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영화의 예술과 정치를 다루는 전방위 잡지”를 표방해온 미국의 영화계간지 <시네아스트>의 편집위원. 80년대에 <시네아스트>에 합류했으며, 현재 편집장 개리 크라우더스 휘하에서 신시아 루시아와 함께 공동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빌리 와일더를 비롯한 할리우드 고전영화로 시작해 뉴욕의 시네마테크를 드나들며 고다르, 루이스 브뉘엘과 장 비고의 전복적인 상상력,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사회참여적인 다큐멘터리 등으로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뉴욕대(NYU) 영화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뉴욕시립대(CUNY) 등 대학 강단에서도 활동해온 영화학자이자 언론인이다. 저서로는 내년에 국내에도 출간될 예정인 <영화와 아나키즘적 상상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