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겨울에서 2011년 초봄에 이르기까지, 극장가는 유례없이 화려하게 들끓어오를 것이다.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부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히어애프터>까지, 혹은 스웨덴에서 날아온 끝내주는 미스터리 스릴러 <밀레니엄> 시리즈부터 충격적인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해리 포터: 죽음의 성물>까지. 어쩌면 영화팬 입장에서는 지난 여름 시즌보다 이번 겨울 시즌을 더욱 안달복달 고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1. 세상을 뒤바뀐 SNS, 그 이면 속으로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감독 데이비드 핀처/ 출연 제시 아이젠버그, 앤드루 가필드, 저스틴 팀버레이크 / 개봉 11월18일하버드 재학생 마크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홧김에 대학 컴퓨터를 해킹한다. 그는 캠퍼스 내 모든 여학생의 데이터베이스를 빼낸 다음 ‘누가 더 섹시한가’를 묻는 ‘페이스매쉬’ 프로그램을 만든다. 이 프로그램은 순식간에 하버드대 전체에 퍼져나갔고, 마크는 여기서 어떤 아이디어를 얻는다. 또한 교내 라이벌이었던 윈클보스 형제가 제작 의뢰한 ‘하버드 커넥션’ 사이트 역시 그 아이디어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마크는 이제 하버드 재학생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인맥을 교류할 수 있는 ‘페이스북’을 구상하게 된다. 페이스북은 순식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만, 윈클보스 형제뿐 아니라 페이스북 공동창립자 에두아르도(앤드루 가필드)마저 마크에게 소송을 건다. 누가 진정한 창조자인지를 가려야만 하는, 그 누구도 쉽게 해명할 수 없는 그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
2003년 10월 하버드대학 내 사이트에서 처음 출몰한 페이스북은, 하나의 인터넷 브랜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속도와 영향력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가증식하는 하나의 생명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 누가 이 거대한 창조 과정의 진정한 소유권자인지를 두고 벌어지는 소송은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데이비드 핀처와 각본가 아론 소킨(<웨스트 윙>)은 전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이자 고독한 공학 천재 마크 주커버그와 그의 친구들을 둘러싼, 현재진행형의 투쟁과 성공에 대해 용감하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환상에는 파괴와 투쟁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의도적으로 시점을 옮겨다니며 다층적으로 대립하는 여러 내러티브를 차용한다. 모든 주인공들에게는 각자의 내러티브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합쳐지며 ‘21세기형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이라 불리는 페이스북의 원리와 몹시 닮아 있는 어떤 영화적인 다층적 진실이 튀어나온다.
글 김용언
2. 아이언맨? 어쩌면 그 이상일수도
그린 호넷 The Green Hornet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세스 로건, 주걸륜, 카메론 디아즈, 크리스토프 월츠, 에드워드 펄롱/개봉 2011년 1월자고 나면 새로운 슈퍼히어로가 쏟아져나온다. 하지만 이중 말 그대로 ‘새로운’ 슈퍼히어로는 사실 별로 없다. 20세기 중반의 펄프 픽션에서 시작된 유명한 캐릭터들의 재해석이 대부분이다. 미셸 공드리의 ‘의외의’ 블록버스터 신작 <그린 호넷> 역시 그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린 호넷, 조로 같은 마스크를 쓴 이 슈퍼히어로는 1930~40년대를 평정했던 미국의 인기 라디오 시리즈이자 60년대에는 이소룡이 출연해 큰 인기를 모았던 TV시리즈, 그리고 다채로운 코믹북 시리즈로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한 캐릭터다. 낮에는 바람둥이 미디어 재벌 브릿 레이드로, 밤에는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슈퍼카 ‘블랙 뷰티’를 타고 악당을 소탕하는 자경단 ‘그린 호넷’으로 이중생활하는 그는, 일종의 밝은 배트맨이거나 아이언맨의 배다른 형제처럼 보인다.
미디어 재벌의 외아들 브릿 레이드(세스 로건)는 존경받는 아버지 제임스와 달리 매일 파티와 여자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한량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뒤, 그는 부친의 뜻을 따라 처음으로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자 한다. 아버지 회사의 직원 가토(주걸륜)는 겉으로는 과묵한 청년이지만, 알고 보면 비밀스럽게 지하실에 온갖 무기와 장비들을 수집하는 무술 전문가다. 브릿은 가토와 “손을 잡고 나아가” 도시의 범죄집단을 소탕하는 자경단 ‘그린 호넷’으로 재탄생한다(브릿이 이 결심을 처음 밝힐 때, 가토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싸우는 건 상관없지만 내 손은 안 잡았으면 좋겠는데”라고 쐐기를 박는다). <CSI>류 드라마의 열렬한 팬인 비서 케이시(카메론 디아즈)와 가토의 도움으로, 브릿은 지하 범죄세계의 제왕 추노프스키(크리스토프 월츠)와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준비한다.
애당초 계획대로 주성치가 연출과 주연(가토 역)까지 겸했더라면 어떤 영화가 나왔을까라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오래된 TV시리즈에 열렬한 애정을 품고 있는 몽상가 미셸 공드리는 꽤 신선한 선택이다. 무엇보다 주드 애파토우와의 협업(<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사고친 후에>)으로 유명한 코미디언 세스 로건이 각본과 주연을 도맡음으로써 원작에선 부족했던 날선 개그 감각까지 가미되었으니, <그린 호넷>은 어쩌면 <아이언맨> 1편을 뛰어넘는 상쾌한 엔터테인먼트로 등극할지도 모른다.
글 김용언